어릴 때는 시간이 너무 안 가는 것 같았고, 매일이 무료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고, 노인이 되었을 때 “나는 이런 일들을 하며 살았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양한 직업에 대해 알아보던 중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회복지사의 활동을 보게 됐다. 중학생인 나에게 ‘돈도 벌면서 누군가를 도우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너무 이상적으로 보였다. 나의 진로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고 1학년을 마친 후 군 입대를 하게 됐다. 군복무 중 입대 전부터 정신질환이 있었거나 복무 중 정신질환이 발병한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기간이 있었다. 정신질환이 있는 동료들과의 생활은 안 그래도 힘든 군 생활을 더 힘들게 했으나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정신장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이러한 경험으로 전역 후 정신장애인 클럽하우스, 정신보건센터 등에서 실습과 봉사활동을 했다. 클럽하우스 모델에서는 ‘일 중심의 일과’를 중요시하고, 일은 의미가 있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미있는 일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회복을 지원하는 일이 내 인생 목표와 같다는 생각에 정신건강사회복지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김기호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회복지사
김기호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세 곳의 직장을 거치며 직업재활, 취업지원, 사회재활 등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정신질환자 지역사회 초기적응 지원사업’을 통해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에서 정신장애인의 탈원화와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많은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원에서 수십 년간 장기입원·입소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분들 대부분이 치료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지역사회에서 살 곳이 없어서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원에서 무의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분들이 탈원화해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의미 있는 일상을 살아가기 바라는 마음은 정착지원사업에 더 애착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정착지원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정착지원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평범한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일상

의미 있는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어릴 때는 무언가 중요하고 바쁜 일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으나 지금은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취미활동을 하든, 휴식을 취하든,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일과를 보내고, 자신의 집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상이 아닐까?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거나, 시키는 활동에만 참여하고, 누군가 정해주는 일정대로 먹고 자며, 무의미한 나날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가끔은 이러한 쉼도 필요하지만)!

정신병원, 정신요양시설에 장기입원·입소해 생활하는 정신장애인에게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을 동등하게 누리며 살아갈 기회와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의미있는 일상, 가장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정착지원 업무에 임하고 있다.

몇 년 전 유행한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말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 내 개인의 목표와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착지원 업무. 아쉽게도 지원사업은 종료되었으나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고자 하여 계속 정착지원 업무를 맡게 될 것 같다. 덕분에 개인적 목표와 일이 일치되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덕업일치’의 즐거움을 당분간 더 누릴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즐거움을 바탕으로, 더 많은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정착해 의미 있는 일상, 가장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노력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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