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봉 법무부 범죄예방기획과 서기관
윤현봉 법무부 범죄예방기획과 서기관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이 깊어지면 교통체증 속에서 겪는 수고를 무릅쓰고 깊은 산을 찾아가곤 한다.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는 숲 속에 들어가면 바쁜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고민이 있을 때 태고의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와 야생의 소리, 형형색색의 생명들과 잠시나마 함께하면 괴로움이 가라앉고,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숲을 이루는 수많은 나무들과 꽃, 그리고 동물들은 어떻게 서로 어울리며 사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읽게 된 책이 페터 블러벤의 ‘나무수업(2016)’이었는데 16년간 법무부 보호관찰소 공무원으로 살아오며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던 내게 많은 깨달음을 줬다.

페터 블라벤은 숲의 생산성을 위해서 병약하거나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나무는 솎아내야 한다는 전통적인 산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공적으로 조림되거나 관리된 숲보다 사람의 개입 없이 자연상태로 보존된 원시의 나무의 수명과 광합성을 통한 생산량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독일의 유명한 숲인 흑림(검은 숲, Schwarzward)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증명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자연상태의 원시림 속 크고 작은, 각기 다른 종의 나무들과 미생물들이 긴밀히 소통하며 폭풍이나 가뭄, 병충해와 같은 위협을 이겨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류, 균류 같은 미생물들은 나무뿌리에 살다가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면, 수분과 양분을 약하고 병든 나무에게로 전달해준다. 숲 가장자리의 나무들에게 폭풍이 닥쳐오면, 나무뿌리의 미생물들은 나무들이 내보내는 호르몬을 숲 중앙에 사는 다른 나무들에게 전달해 다가오는 재난에 대비하게 한다. 오랜 세월을 버틴 크고 강한 나무들은 아직 어리고 작은 나무들을 따가운 햇볕과 세찬 바람으로부터 막아주고 낙엽을 떨어뜨려 양분을 보충해줌으로써 병약하고 작은 나무들에게도 하늘 높이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큰 나무들이 나이가 들어 그 위세를 잃고 죽음에 이르면, 작은 나무들은 더 많은 햇볕을 받고 죽은 나무들이 남긴 양분으로 강한 나무로 성장한다. 숲은 겉으로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경쟁의 세계인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를 돌보고, 약한 나무들을 성장시키며 번성하는 공존의 공동체인 것이다.

서로를 보듬으며 성장해가는 숲의 생태는 22년간 일하고 있는 교정 현장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보호관찰 공무원으로 일하며 만난 동료들 중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출소한 대상자들을 도와 가정과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많은 직원들이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은 채 범죄를 반복하는 대상자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 가면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잊고, 법, 지침, 규정에 따라 정해진 일만 기계적으로 하게 되곤 한다.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일하는 직원조차도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관료주의적인 직장 분위기에 지쳐간다.

교도소나 보호관찰소에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잃은 구성원이 늘어가면, 시간이 흐를수록 범죄자의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사회복지적 실천보다는 규정에 입각한 엄격한 지도감독만 강조하게 된다. 날마다 쏟아지는 강력범죄 뉴스에 일반 시민들은 물론 대부분 전문가조차 강력한 처벌을 위해 교도소 수용이나 전자발찌 부착 대상과 기간을 늘리고,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자고 하는데 범죄자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사회복지적 실천을 강조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묻힌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교정 현장의 직원들이 대상자들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는 더욱 냉정해진다. 대상자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한 개입이나 환경 개선은 일시적·경제적 지원에 그치고, 사회복지적 개입은 점점 더 자리를 잃어간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정공무원들조차 대상자를 한 명의 사회복지 클라이언트가 아닌 통제와 감독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된다면, 우리 공동체 안에 그들이 의지할 곳이 없어진다는 현실이다. 범죄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더욱 냉랭해져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전과자가 좋은 직업과 가정을 갖고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에 부적합하다며 낙인찍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은 구태의연한 경구가 되고 있다. 출소한 전과자들의 사회적 고립 심화 추세를 보다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범죄의 악순환 현상이 사회적으로 공고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고립된 출소자들이 사회 밑바닥으로 전락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이들이 재범을 일으킬 환경을 우리 사회가 스스로 만들어주는 것과 같다.

필자는 최근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전자감독대상자들과의 심층면담을 통한 질적 연구를 진행해왔다. 연구 중 만난 면담대상자들은 모두 주소나 얼굴 등을 포함한 신상정보가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해 공개되고, 심지어 세를 사는 집주인이나 가까운 이웃들의 집에 고지되고 있었다. 적게는 5년, 많게는 10년 이상 복역 후 출소해 간신히 함께 살게 된 부모나 배우자, 자녀들까지 따가운 시선을 받을까 두려워 가족들과 일부러 떨어져 지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취업제한제도 강화로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뿐만 아니라 택배원 같이 일반인들과 접촉이 많은 직업을 가질 수도 없어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며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

자신을 찾는 이는 담당 보호관찰관뿐이다 보니 자신을 제일 잘 알고 유일한 친구는 보호관찰소 직원이라고 자조하면서도 다행히도 대부분 면담대상자들은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전자발찌를 부착한 이들이 우리 사회의 범죄자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존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들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누구도 돕지 않는다면, 스스로 삶을 포기하거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다시 교도소에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면접대상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가족과 친구였다. 그들의 외로움의 무게를 우리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덜어준다면, 약간의 사회적 지지만 우리가 보내준다면, 그들도 결국 평범한 가장으로, 자식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면담대상자 중 한 명은 전국의 건설현장을 떠돌면서 부인과 자녀들의 생계를 위해 쉬는 날도 없이 힘들게 일하면서도 항상 밝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덕분에 서먹했던 부인과 자녀들도 자신에게 의지하게 됐고, 가족을 위해 살 수 있어 행복하다며 미소 짓곤 했다. 출소 후 5년 동안 그가 견디고 버텨왔던 힘은 결국 가족의 지지였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원하던 가족과의 재결합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오래고 고된 노동 탓에 심해진 지병으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보호관찰소에서 근무할 때 음주운전이나 폭력,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질러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이들의 명령 집행을 담당하면서 사회봉사명령 대상자들과 친분을 쌓게 됐다. 사회복지관과 함께 1년 여간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도배와 집수리를 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현장에서 만난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해본 봉사활동이 이렇게 큰 보람으로 다가올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사회봉사명령 시간을 모두 채운 후에도 과일과 음료수를 사들고 다시 아파트 주민들의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 사이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졌고, 사회봉사명령 시간을 모두 끝낸 이들끼리 바쁜 시간을 쪼개 자원봉사로 도배와 집수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2009년 시작된 봉사단은 지금까지 모임을 갖고, 매월 후원금을 내면서 집수리 봉사를 하고 있다. 벌써 13년째 어렵게 사는 노인들과 장애인 가정, 소년소녀가정들을 돕고 있는 모임 회원들은 아직도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이제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 것이 바로 사회봉사명령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복지시설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 중 70% 이상이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됐고, 20%는 실제 복지시설을 찾아 후원금품을 전달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는 법무부의 통계가 있다. 만약 사회복지기관에서 그들을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로만 대했다면 그들의 마음은 변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봉사의 기쁨을 느끼도록 다른 자원봉사자와 똑같이 믿고 대해준 보호관찰관과 사회복지사들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교정 현장에는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냉대 속에서도 변화하는 대상자들의 삶을 함께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아직 많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대상자들은 다시 공동체의 떳떳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 마치 자연상태로 보존된 숲에서 크고 강한 나무들이 폭풍우와 가뭄으로부터 어리고 병약한 나무들을 보호해 결국 숲의 건실한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대상자들을 돕는 이들이 아직 많다.

만약 어리고 병약해 쓸모없는 나무로 치부하고 베어버리면, 숲은 제대로 번성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우리 사회에서도 한때 큰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라도 대가를 치른 후에는 포용하고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맨 밑바닥 어둠 속에서 고립되어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커지고, 우리 공동체도 그만큼 더욱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정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지지가 우리 공동체를 더욱 튼튼하게 가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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