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용 한국지역사회복지학회 회장‧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김승용 한국지역사회복지학회 회장‧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지난 8월 21일 수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 살던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고, 다시 한 번 우리나라 복지 현실을 되짚어 보게 했다. 아직 2014년 송파 세 모녀의 극단적 선택 사건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일이 발생해 더욱 당황스러웠고, 개인 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하고 있는 국가에서 여전히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꼈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8월 8일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날 밤,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가족 3명이 물이 가득한 방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해 사망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고서 빈곤가정에 대한 사회안전망과 국가와 사회의 대안이 미흡했음을 한탄하고 성찰하던 차에 수원에서 세 모녀 사건이 들려와 그 당혹감은 더 컸다.

자연재해와 인재가 겹쳐 세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던 신림동 다세대 주택 사건은 빈곤 정책, 주택 정책,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이었다는 점에서 장애인 재활이라는 다양한 이슈가 한꺼번에 나와 많은 숙제를 주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순식간에 불어난 물이 집에 들어차 손 쓸 새 없이 벌어진 일이었으니 자연재해라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다. 그러나 수원 세 모녀 사건은 그야말로 인재(人災)이고, 사고(事故)이다.

이 가정을 보면, 우리나라 빈곤 가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조건들을 두루 갖고 있었다. 여성 세대주, 채무, 질병, 실직 등등이다. 즉, 남편은 사업 부도로 많은 빚을 남긴 채 오래 전에 사망했고, 가계 살림을 도맡고 있던 60대 부인은 암 투병을 해왔으며, 40대인 두 딸도 질병이 있었다는 것이다. 소득을 책임지는 가구원의 사망이 빈곤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 가족원이 경제활동을 하는 시대라 경제를 책임지던 한 명이 소득이 없어져도 다른 가족이 경제활동을 하면 갑자기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가족은 모든 가족이 경제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질병을 앓고 있었고, 거기에 채무까지 상당히 많은 상태였으며, 주민등록상 거주지와 실거주지가 달라 공적 전달체계인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쉽게 접근할 수도 없었다.

 

줄줄이 이어지는 빈곤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으로 우리들의 기억에 소환된 사건들이 몇 건 더 있다. 올해 4월 복지 급여 신청을 거절당했던 50대 아들과 80대 노모가 사망한 종로구 창신동 모자 사건, 2020년 미등록 발달장애 아들이 사망한 어머니를 5개월 동안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집에 모셔 두었던 방배동 모자 사건, 2019년 월세도 낼 수 없는 형편에 80대 어머니와 5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된 중랑구 망우동 모녀 사건, 또 탈북민과 6세 어린 아들이 사망한지 두 달 만에 발견되어 사회에 충격을 줬던 2019년 관악구 봉천동 아사(餓死) 사건, 2018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여성이 4세 딸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충북 증평 모녀 사건, 그리고 2014년 송파구 세 모녀 사건까지… 이 외에도 인터넷 포털서비스에 검색하면 장애, 우울, 낙망과 같은 이유와 함께 꼭 등장하는 ‘빈곤’으로 인해 고독하게 생을 마감한 사건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러한 사건이 나고 나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문제에 대한 진단이 나오고, 여러 해법이 나온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신청주의 문제, 사각지대 발굴체계 문제, 사회보장시스템 문제 등등 언론, 학자, 실무자, 정책 입안자를 막론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다시 한 번 짚어 보고, 전달체계를 개편하는 계기로 삼았던 바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기존의 통합 급여 체계를 개별 급여 방식의 맞춤형 급여 체계로 개편하기 위해 2014년 12월 30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했고, 2015년 7월 1일부터 시행했다. 그래서 현재는 통합 급여가 아니라 생계·의료·주거·교육·자활·장제·해산 등 총 7종의 개별 급여가 소득 수준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되고 있다.

또 2014년 12월 30일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과는 별개로 그 이전부터 읍면동 복지 허브화 사업을 시범사업으로 수행하면서 읍면동의 복지기능을 강화해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이후 사회복지공무원의 지속적인 증원을 추진해 왔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이 2014년 이후에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한 만큼 원인 분석과 합리적인 대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그 많은 논의 중에 가장 합당한 안을 실행하면 좋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좋은이웃들’ 사업을 한번 눈여겨보고자 한다. 물론 ‘좋은이웃들’ 사업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 사업은 2011년 화장실 삼 남매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서울 강북의 한 공중화장실에서 삼 남매가 변기를 식탁 삼아 밥을 먹고, 잠은 지하철에서 자면서 생활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삼 남매의 부모는 이혼해 어머니는 소식을 알 수 없었고, 아버지는 6년 전 사업이 망하면서 정신적 어려움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삼 남매 가운데 첫째와 둘째는 주민등록이 말소됐고, 셋째는 출생신고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모두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다고 밝혀져 충격은 더 컸다. 이 모습이 방송되면서 당시 이명박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모두 찾아내 없애겠다며 대대적인 일제 전수조사를 펼쳤다.

‘좋은이웃들’ 사업은 그 때 30개 시군구 대상 시범사업으로 출발해 2022년 현재 117개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찾아내 돕고 있다. 이 사업은 그동안 국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강력한 시행으로 긴급복지지원제도를 강화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를 꾸준히 발굴해내며 민간 차원의 복지를 수행해왔음을 보여 준다.

 

위기가정 발굴, 이웃이 큰 힘 된다

공공의 노력이 헛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에서 보듯이 관할 지역에 거주하지 않으면, 공공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물론 공공요금 미납 가정 방문으로 위기가정을 발굴해 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웃’이야말로 가장 먼저 위기가정의 존재를 알아채는 인접한 발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웃을 통해 위기가구를 찾아낼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이웃들’ 사업은 지

역주민이 참여하는 좋은 이웃인 봉사자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 취약계층을 발굴하고, 민간자원을 연계·지원해 줌으로써 민·관 및 민·민 협력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며, 공공사회안전망의 보완재로서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226개 기초 지자체 중 117개 지역에서만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그리고 이 사업에 많은 지역 주민들이 ‘봉사’의 개념으로 참여할 뿐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핵심적인 인건비마저 마련되지 않아 사업 취지가 퇴색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해결할 수 없다면, 최소한 한 명 분 인건비에 해당하는 예산이라도 좋은이웃들 사업을 추진하는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에 배정해서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952년 창립된 사회복지협의회는 우리나라 민간사회복지 단체의 뿌리와 같은 존재이며, 대표적인 민간 사회복지 기구다. 또한 1995년 원주시사회복지협의회를 시작으로 시군구 단위 조직이 속속 설립되면서 민간 사회복지 단체로는 유일하게 중앙, 광역 지자체, 기초 지자체로 이어지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단체를 통해 시군구 단위의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인 공적 조직과 더불어 민간 단위에서 사각지대 발굴에 발 벗고 나선다면, 송파 세 모녀 사건,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불행한 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기재부 등 국고예산 심의과정에서 예산의 중복 방지를 통한 효율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복지는 예산의 효율화나 효율성만을 추구할 수 없으며, 효율성보다는 효과성을 기대하고 투자해야 하는 분야다. 민간단체에 지원하는 보조금의 효율성만을 추구한다면, 또 다른 이름의 세 모녀 사건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예산이라는 씨줄과 날줄을 보다 촘촘히 엮어 사회안전망을 더 든든하게 구축함으로써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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