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한 복지제도에서 청소년은 보이지 않는다. 성인을 지원하는 제도와 아동 보호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호주 신문 가디언과 인터뷰한 마틸다는 자신이 자라면서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는 것을 20대가 되어서야 인식했다면서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무언가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뿐입니다. 그것은 신체적 폭력이 아니라 정서적, 심리적, 재정적 문제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와 방임, 그리고 가정폭력 사이의 연관성을 인식하고, 이 문제를 공중보건과 사회적 주요 이슈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폭력은 인구의 20% 이상에 영향을 미치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서부터 교육,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능력, 고용, 그리고 심지어 범죄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의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약 220만 명의 호주인이 15세 이후 성폭력을 경험했으며, 360만 명이 파트너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경험했다.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다고 말한다. 아동학대나 방치의 대상이었던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그들의 자녀가 아동학대의 대상이 될 위험은 10배, 외부 보호시설로 옮겨질 위험은 거의 20배로 증가했다. 그리고 아동학대나 방치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중독이나 자해로 응급실에 갈 확률은 5배에서 33배, 정신건강 문제로 응급실에 갈 확률은 49배 높았다. 10대 데이트 폭력은 가정 내 아동학대나 방치에 노출된 소녀들에게서 3~4배, 그런 노출이 있는 소년들에게서 8~45배 더 흔하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지원대상은 대부분 아동과 성인 여성에게 집중되어 왔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학대와 가정폭력의 대상인 청소년들을 침묵의 희생자로 묘사한다. 청소년들은 ‘여성 및 어린이’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15~20세 사이의 청소년들은 스스로 어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문적인 가정폭력 대응 서비스조차 그들을 독립된 한 사람으로 적절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결국 청소년들은 독립적인 피해자이자 생존자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은 집을 떠나 노숙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위한 돌봄 서비스가 아닌 노숙인 지원서비스가 제공된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청소년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호주 멜버른시가 이 문제를 조사한 보고서 ‘확대 - 가정폭력과 청소년 문제에 대한 볼륨을 높이자(AMPLIFY-Turning up the volume on Young People and Family Violence)’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 부모로부터 폭력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은 종종 가정폭력의 희생자로 여겨지지 않는다. 청소년과 관련된 가정폭력은 보통 그들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또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피해 생존자로서의 청소년들은 종종 가족 폭력 체계에서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 생존자라는 그들의 정체성은 무시되며, 아동도 성인도 아닌 그들은 대부분의 지원서비스에서 누락되어 있다.

2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은 외부의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 가정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폭력이라고 인지한 경우라도, 아동 보호요청이 가져올 잠재적인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또한 가정폭력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도망치거나 친구 집에 머물면서 서비스와 지원의 감시망에 잘 포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적합한 보호를 받지 못한 그들은 정신질환, 건강 문제, 학교 기피,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

3 청소년들은 가정폭력으로부터 다른 가족을 지키는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폭력의 피해자인 부모나 형제자매를 위한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생활하면서 가정폭력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 자신의 안전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안전해야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이러한 인식은 가정폭력 예방 또는 피해자 지원 서비스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피해 청소년 자신이 다른 가족의 보호자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남겨진 가족들을 돌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4 가정폭력을 피해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려는 청소년들의 시도는 종종 일탈로 잘못 해석된다.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출하거나 등교를 거부하는 행동은 그들을 문제아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행동을 일탈로만 인식하는 학교 교사나 경찰은 오히려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부모에게 알려 그들을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

5 가정폭력으로 피해를 입고 회복 중인 15~19세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서비스가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특히 15~19세 청소년을 위한 지원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청소년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명확성의 결여와 가정폭력, 가족 서비스, 청소년 서비스 및 아동 보호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혼합되어 있는 현실은 그들에 대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15세 미만의 청소년은 피해를 입은 부모와 함께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 수용되거나, 최후의 수단으로 가정이 아닌 아동보육시설에 수용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아동 보호 및 가족 서비스는 15세 이상의 청소년들을 위해 작동하도록 설계되거나 자원이 제공되지 않는다. 피해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일반 청소년이나 노숙인을 위한 서비스인데 이러한 서비스는 가정폭력 피해를 고려해 설계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호주에는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아동, 성인, 청소년들에게 상담, 주거, 의료, 법률 등 통합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오렌지 도어(Orange Door)라는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6 청소년의 눈으로 가정폭력 안전관리 프레임워크를 새롭게 짜야한다. 가정폭력 위험을 식별하고 피해자를 돕기 위한 정책, 절차, 관행은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를 마련하는데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청소년들이 느끼는 불안함을 표출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제시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가정폭력 안전관리 프레임워크를 개선·조정해야 한다.

7 청소년들의 요구에 맞는 정보와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가정폭력을 이해하고 피해자들의 안전을 지지하는데 필요한 정보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성이 낮고,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보는 청소년들이 가정폭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자신이 가정폭력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교, 온라인, 그리고 그들이 자주 접하는 공간에서 우연하게라도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정보의 개발 역시 청소년들에 의해 주도될 필요가 있다.

8 시스템과 서비스 제공 기관을 불필요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청소년의 권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청소년 개인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청소년들의 안전과 회복을 저해하는 요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정폭력 가해자인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구조, 차별적인 서비스 제공과 같은 문제는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들에게 또다른 난관이다.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이나 법적 환경이 복잡·모호하거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들이 자신이 가진 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책이나 제도의 미비한 부분을 찾아 개선해 나가야 한다.

9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힘의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특히 서비스 제공기관과 청소년들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청소년들이 직접 시스템 설계와 개발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자원과 훈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청소년들은 그들 스스로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런 그들에게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회피와 일탈이었다. 하지만 회피와 일탈은 학교와 사회에서 인정되지 않는 방법이고, 결국 그들은 폭력이 내재된 가정으로 돌려보내졌다. 어린이도 성인도 아닌 그들의 법적 권리는 불분명했고, 그들의 목소리는 시스템에 담겨지지 않았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문제를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에 걸맞은 해결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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