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홍은정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고령친화산업육성팀장, 심우정 실버산업전문가포럼 회장, 장영신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책연구실장, 김정근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
(왼쪽부터) 홍은정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고령친화산업육성팀장, 심우정 실버산업전문가포럼 회장, 장영신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책연구실장, 김정근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 17.5%.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주요 선진국들은 고질적인 돌봄인력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인 인력 확보, 돌봄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과 함께 ICT·로봇 등 고령친화산업 육성에도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 왔다. 그러나 유례 없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다만 희망도 엿보인다. 2020년대 들어 베이비붐 세대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에 진입하면서 기존 노인 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가진 신노년층이 나타나면, 이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고령친화산업이 발전하면서 ‘경제성장’과 ‘복지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러한 기대를 현실화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사회 :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2006년 ‘고령친화산업진흥법’이 제정되면서 고령친화산업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재 상황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고령친화산업의 현 위치를 진단한다면?

김정근 :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등 정부 주도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으로 돌봄 분야 고령친화산업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고령친화산업의 발전방향은 날로 늘어나는 노인에게 적합한 서비스·제품을 생산·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기업들을 육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수요자 보다는 공급자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측면이 있다. 요양 산업에 있어서 공급자들의 과도한 경쟁이 우려될 만큼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여가, 금융, 주거 등 다른 산업들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디다. 초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고령친화산업이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어떻게 그런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 고민해야 될 시기다.

심우정 : 실버산업이라는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에서는 노인을 위한 제품·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노인을 등쳐먹는다’며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무상이나 저가 중심으로 복지차원의 요양이나 양로시설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문화·여가 측면에서 산업화를 기대하던 공급자들이 시장을 외면하게 됐고, 요양 중심이라 인식되는 ‘실버’ 대신 ‘시니어’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됐다. 2010년대 초부터 욜드, 신중년 등 다양한 단어로 표현되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베이비붐 세대 등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크다고 인식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령친화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초기의 부정적 분위기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출범 후부터 서서히 반전되기 시작해 고령친화산업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또한 복지와 산업을 분리해서 생각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통합적으로 고려하게 됐으며, 돌봄 차원에서도 복지적 측면뿐 아니라 배리어프리 설계, 유니버셜 디자인이 적용된 주택·시설이 늘어나고, 고령친화도시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나타나는 등 각종 기술·제품·서비스에 고령친화적 요소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제품·서비스가 공급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최근에 들어서야 디지털 돌봄, 스마트 돌봄으로 불리며 각광을 받게 됐고, 정부와 지자체,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에서 다양한 시범 사업을 통해 흐름을 이끌어가면서 조금씩 성장이 빨라지고 있다.

홍은정 : 고령친화산업이 미래 비전 산업으로 대두되면서 법 제정, 제도 개선 등 산업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있으며, 현재는 4차 계획을 추진 중이다.

2006년 제정된 고령친화산업진흥법 제2조, 고령친화산업의 정의에 따르면 용구·용품, 의료기기, 주택, 노인 요양 서비스, 노인을 위한 금융 자산 관리, 건강 지원 서비스, 영농 지원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 분야가 포함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정부의 공적 자금으로 의해 육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용구·용품 분야는 공적 급여 시장에 많이 편중되어 있다.

공적 급여 시장은 초기 시장 형성과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민간 시장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민간시장 보다는 공적 급여 시장에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품목만이 활성화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고령친화산업이 미래 비전 산업이라고 하기 무색할 만큼 제품 및 기업 경쟁력이 취약하다.

다만 최근 사회변화로 IT기술·혁신제품에 친화력이 높은 베이비붐 세대 인구가 늘어나면서 스마트 맞춤 돌봄 산업으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고, 이에 부응해 정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스마트 맞춤 돌봄 시범 사업을 진행하면서 관련 산업이 조금씩 활성화 되는 등 점차 경쟁력을 갖춰 나갈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 :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나라들에서는 고령친화산업이 어떻게 육성되고 있으며, 이들의 경험이 우리나라 고령친화산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심우정 : 유럽연합은 11억 유로를 투자해 2007년부터 2020년까지 19개국의 학계, 연구, 기업들이 참여하는 능동형 생활지원 프로그램(the Active & Assisted Living Joint Programme, AAL JP)을 진행하는 등 고령친화사업을 안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통해 대화로봇, 원격서비스, ICT 기반 솔루션 개발·적용 등에 대한 기술 사상과 개념이 정립되는 성과가 있었다. 고령친화산업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지원하고자 했던 유럽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편, 미국은 고령친화사업 육성이라는 개념 없이 철저히 민간 차원의 수요에 따라 공급이 이루어진다. 미국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국내 시장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국산화, 수입 대체 효과에 너무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미국이 우리나라 대기업을 유치하려 노력하듯 한국 고령친화산업에 외국 기업들이 뛰어들어 연구·개발하고, 서로 경쟁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일본이 개호보험을 통해 고령친화산업을 활성화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활용해 복지 향상과 민간 고령친화산업 발전을 동시에 모색하고 있지만 복지 재정이 산업 발전에 쓰이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산업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여전한 숙제다.

홍은정 : 일본에서는 이승·이동 지원, 배설 지원, 지켜보기, 커뮤니케이션 등 5개 분야의 개호로봇을 중점으로 개호보험 급여가 제공되고 있으며, R&D 자금 등을 투입해 개호로봇 육성을 위한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돌봄로봇이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는 ‘건강노화전략 및 활동계획(Strategy & Action Plan for Healthy Ageing in Europe, 2012~2020)’을 통해 고령자의 건강 노화를 지원하는 환경과 장기요양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고, 중국에서도 2019년부터 기업, 보험사를 중심으로 IoT와 요양서비스를 융합한 돌봄 시스템 모델을 개발·출시하는 등 ‘스마트 양로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령자와 관련된 제품에 대한 R&D 자금 확보를 통해 체계적으로 관련 기업 제품을 육성하고, R&D 단계에서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사용자, 돌봄인력 등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한다.

김정근 : 고령친화산업을 국가가 육성한다는 관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민간 기업이 생산해 시장에 판매하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육성될 수 있고,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중소기업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노인 돌봄과 관련된 제품으로 CES혁신상을 받은 기업들을 보면 생소한 중소기업들이다. 국민들에게 어떤 욕구가 있고, 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자발적·창의적인 노력을 국가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떻게 고령친화산업을 육성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복지를 소외계층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비해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는 복지란 국민의 권리이자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서비스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고령친화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곧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저소득 취약계층, 독거노인을 위한 노인복지적 관점에서만 다룬다면 산업의 한 분야로서 고령친화산업을 육성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복지서비스 공급이 정부만이 아닌 다양한 기업·개인들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다양한 스타트업들의 고령친화산업 진입도 활성화되고, 이같은 복지 패러다임에 따라 정책과 산업을 발전시켜온 해외 각국의 고령친화산업 육성 경험을 받아들이기도 수월해 질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수가를 초과하는 액수에 대해 본인이 부담을 전제로 고가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수가를 초과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시설은 요양기관으로 등록조차 할 수 없고, 그런 기관을 이용하는 개인은 아무리 보험료를 많이 냈다 하더라도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이런 여건에서는 시장이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 고령친화산업이 취약계층을 돕는 잔여적 복지 패러다임에 머물러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해외와 우리의 큰 차이점이다.

 

사회 : 우리나라에서 고령친화산업이 기대만큼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고령친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까?

홍은정 : 베이비붐 세대들은 지식이나 경제 수준이 높고, 특히 디지털 기기 조작 능력이 기존 노인계층과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는 기존 노인계층에 비해 높은 소비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고령친화산업에 대한 인식이 낮고, 알고 있더라도 산업화 수준이 낮아 소비를 주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실질적인 소비가 일어나려면, 국가가 나서 중산층들의 고령친화산업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016년 기준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고령친화산업 관련 과제가 26개뿐이고, 보건복지부의 고령친화산업 육성 예산이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력이 늘어난다 해도 적절한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고령친화산업이 발전하기 어렵다.

김정근 : 연령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과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나이 드는 것을 부정적으로, 나이 든 사람의 희생을 당연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누구에게든 생명의 가치는 같음에도 불구하고 노인과 청년 두 사람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하겠냐는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은 사람을 구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이 든 사람에 대한 투자나 제품·서비스 공급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한다.

우리 스스로도 나이 들어감을 부정하려 한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고령친화 제품을 위한 소비가 확대되기 어렵다. 실버산업학과 교수조차도 학생들에게 노인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노인도, 젊은 사람도 모두 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노화연구소(MIT AgeLab)의 조셉 F. 코글린 교수는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라는 책을 쓰기까지 했다. 노인만을 위해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고령친화산업 발전을 저해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령친화산업이라는 용어 자체에 이미 부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노인을 도와야 할 연약한 존재가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 보고, 내일 당장 노환으로 사망하더라도 하루를 가치 있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어떤 고령친화제품이든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고령친화제품을 영어로는 ‘Age Friendly Product’라고 하는데 이는 ‘고령친화’ 제품이 아니라 ‘연령친화’ 제품이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고령친화식품을 스마일푸드라고 부르고 있는 것처럼 고령친화산업에대한 수용성을 높이려면 전략적으로 현명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은 정책으로도 발현되기 때문에 정책입안자부터 실천 현장의 사회복지종사자, 산업 종사자들에 이르기까지 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전환해 나가야 한다.

심우정 : 장수로 인해 노화 단계가 계속 길어짐에 따라 노화 단계 또한 여러 단계로 세분화 되고 있다. 각 단계별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단계별로 적합한 고령친화제품을 구분해 개발하기 어려운 것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특정 노화 단계를 위한 것이 아닌 여러 연령층을 포괄하는 제품이라야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인의 소화능력을 고려해 두유를 만든다면, 소화능력이 좋지 않은 젊은 사람들에도 유용하기 때문에 잘 팔릴 수 있다. 이런 제품은 고령친화식품이라고 굳이 표시하지 않아도 고령친화식품으로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문화도 영향을 미친다. 고령친화제품을 노인들이 소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연구 결과, 실제 고령친화제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35% 수준에 불과하다. 특정 노화 단계에 반드시 필요한 용품은 해당 단계에 이르면 지팡이든, 안티에이징 화장품이든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안티에이징 화장품은 어느 정도 노화 상태에서는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만 노화 수준이 많이 진전되면 이용을 포기하게 된다. 더 써봐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 때문인데 웰-엔딩(Well-Ending) 마인드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는 즐긴다, 사회생활을 한다, 안티에이징 한다’고 생각하는 건강한 문화가 확산되어야 그에 따라 다양한 제품·서비스들에 대한 수요가 창출되고, 이로 통해 고령친화산업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 고령친화산업을 복지용구에만 한정해 보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고령친화산업진흥법에 열거된 것 외에도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존재한다. 어느 영역까지 고령친화산업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보는가? 또한 이들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 등이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김정근 : 모든 산업이 고령친화산업이 될 수 있다. 노인을 포함해 시력이 떨어진 사람을 위한 컴퓨터 키보드를 만드는 것은 노인이 아니라 문자가 잘 보이지 않는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소비자들을 보고 만드는 것이다. 그 자체로 고령친화산업이 되는 것이다. 결국 고령친화산업을 구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실버타운·요양원을 만들고, 병원을 인수하는 등 고령친화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결국 기업들이 전체 소비자의 20%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 노인 소비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령친화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는 먼저 정부에 의한 통제, 육성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민간기업 등이 자율적으로 고령친화산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하는 등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실버타운은 현재 일반적인 공동주택 분양과 동일한 방식으로 공급되지 않고, 건물 준공 후 임대 형태로만 운영할 수 있다.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짓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돈을 조달할 수 있는 대기업 외에는 도전조차 하기 어렵다.

아울러 고령친화산업을 ‘복지’ 개념보다는 ‘산업’ 개념에서 육성해야 한다. 복지를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협소한 의미로만 보면 고령친화산업을 성장시키기 어렵다. 복지부가 고령친화산업을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양로·요양 서비스 공급 체계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게 될 우리나라에 노인 관련 정책을 관장하는 범부처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가 참여하는 노인 정책, 고령친화산업 육성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구축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홍은정 : 정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고령친화우수제품 지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우수제품으로 지정된 품목은 31개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제품들도 많다. 또한 치매노인 배회 방지를 위한 GPS 탑재 지팡이·신발 등 융합 제품을 개발해 고령친화우수제품으로 인정 받으려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제품들이 더 많이 활용되고, 가격이 높더라도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제품들이 개발될 수 있도록 충분한 투자가 필요하다.

한편, 지난해 말 고령친화산업진흥법 개정으로 고령친화제품의 범위에 식품이 추가됐고, 올해부터 고령친화우수제품으로 지정되고 있다. 식품제조 분야 대형 유통·제조 회사들은 우수제품 인정이 국내외 시장에 대한 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인지 아직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제도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고령자들을 위한 제품이 개발돼도 품질기준이 미비해 우수제품으로 지정하지 못하는 등 정책이 현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제품을 사용하는 노인들의 안전을 위한 품질기준을 하나 만드는데 1.5년 이상 걸린다. 실제로 스마트 케어와 관련된 돌봄로봇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도 돌봄로봇에 대한 품질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진흥원에서도 어떤 품목을 우선해 품질기준을 만들어야하는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심우정 : 고령화 문제는 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장과 분배와 같은 이분법적 이념 논리에서 벗어나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산업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기술도 발전하고, 각종 제품이 개발·공급되면서 가격도 낮아진다. 산업을 발전시키고, 이에 따른 인프라와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국민 복지 증진으로 이어진다.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간에 자유롭게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저가 제품, 고가 제품이 있어야 경쟁이 이루어지고, 더 나은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요양 중심의 서비스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고, 보조기기 개념의 실버용품과 수발에 대한 노인들의 부정적 시각이 많다. 그래서 용품과 서비스에 ICT를 적용한다지만 친숙성이 떨어져 수용성이 낮다. 이제 ‘지능정보기술을 기반으로 노년의 삶을 개선하는 기술의 디자인’으로 정의되는 제론테크놀로지(Gerontechnology)를 적용함으로써 배우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쉽고 편리한 스마트 제품·서비스가 연구·개발·보급되어야 한다. 정부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돌봄을 넘어 생활 전 영역에서의 스마트 라이프를 위한 제품·서비스 연구 개발과 공급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사회 : 고령친화산업이 사회복지 전반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많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돌봄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용구나 로봇 산업 활성화가 이루어진 측면이 있고, 우리나라 또한 같은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있다. 전 국민의 행복한 노후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고령친화산업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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