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이주민 인구는 전체 인구의 3.8%에 달하고, 2040년에는 약 6.9%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주민들은 한국 사회에서 문화와 언어 차이, 사회적 지지망의 부재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기관과 비영리단체가 이주민 정착 지원 등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이민 국가로써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에 대해 오랜 고민을 해왔다. 그 중심에 ‘문화적·언어적으로 유능한 서비스’가 있다.

 

주민의 사회서비스 이용 결정 요인과 서비스 발전 역사

클라이언트의 의료 및 사회서비스 이용 결정요인을 설명하는 잘 알려진 모델은 앤더슨 모형(Anderson Model)이다. 앤더슨 모형에서는 의료 및 사회서비스 이용 결정 요인을 소인 요인(pre-disposing factor), 가능 요인(enabling factor), 욕구 요인(need factor)으로 구별하여 설명한다. 소인 요인이란 연령, 성별, 교육수준 등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며, 가능 요인은 건강보험, 가구소득 등의 사회경제적 특성, 욕구 요인은 개인이 인지한 서비스에 대한 욕구이다.

이주민의 경우, 소인 요인에서는 출신 국가, 이주 국가에서의 거주 기간 등이 추가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가능 요인에는 서비스에서의 차별경험, 이주 국가 언어 구사 능력, 사회적 관계망 등이 추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주민을 위한 보건 및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문화적·언어적 적절성’이 이들의 서비스 이용 및 참여, 궁극적으로 서비스의 효과성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30년간 소수자 건강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실천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먼저 1985년 발간된 ‘헤클러 보고서(Heckler Report)’는 흑인 및 소수민족의 건강에 대한 보고서로 소수민족이 경험하는 건강 및 의료격차를 밝히는 역할을 했다. 이는 1986년 소수자 건강 사무소 개설로 이어졌다. 이후 1990년에는 지역별로 지역 소수민족 건강분석관을 임명해 지역사회 문제를 발굴하도록 했다.

1995년부터는 ‘언어 및 문화적 역량’ 개념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소수자 건강 사무소 산하에 ‘언어 및 문화역량 센터(Center for Linguistic and Cultural Competence in Health Care)’가 설치됐다. 이 사무소는 연방기관 및 각종 공공·민간 기관과 협력하여 영어 사용에 능숙하지 않은 주민에게 언어적으로 적절하고, 문화적으로 유능한 의료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 시스템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후 2000년에는 ‘문화적·언어적으로 적절한 서비스(Culturally and Linguistically Appropriate Services, CLAS)’ 국가 표준이 발표됐다. 같은 해 클린턴 대통령은 영어 사용에 능숙하지 않은 주민을 위한 서비스 제공 및 접근성 개선을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미국 보건복지부는 2000년, 2003년에 걸쳐 세부지침을 마련했다.

이후 2009년에는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한 인종, 민족 및 언어에 관한 데이터 수집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2010년에는 국가 단위의 CLAS 표준 향상 관련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도록 하였으며, 2013년에는 표준을 최종 발표했다. 2016년에는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을 통해 프로그램 및 서비스에서 인종, 피부색, 출신 국가, 성별, 연령 또는 장애를 근거로 한 차별 금지를 성문화하였다.

 

문화적·언어적으로 유능한 서비스의 원칙

문화적·언어적으로 적절한 서비스(CLAS)는 모든 클라이언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품질을 개선하는 방법이며, 궁극적으로 건강 격차를 줄여 건강 형평성을 달성하는 방법이다. 이는 미국의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건강불평등을 제거하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으로 제시되었다. CLAS는 다양한 환자의 건강 관련 신념, 행동방식 및 욕구를 존중하고 이에 부응하는 서비스의 제공을 통해 건강 격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CLAS에는 총 15가지의 국가 표준 원칙이 마련되어 있다. 15가지 원칙을 아우르는 기본 원칙은 ‘다양한 문화적 건강 신념과 관행, 선호 언어, 건강 관련 정보 해독 능력 및 기타 의사소통 욕구에 대응하는 효과적이고, 평등하고, 이해 가능하고, 존중하는 수준 높은 관리 및 품질 관리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음 세부원칙들은 ①거버넌스, 리더십 및 인력, ②의사소통 및 언어 지원, ③참여, 지속적인 개선 및 책무성 이상 세 가지 주제별로 제시되고 있다.

먼저 ①거버넌스, 리더십 및 인력에서는 △정책, 실천 및 할당된 자원을 통해 CLAS 및 건강 형평성을 촉진하는 조직 거버넌스와 리더십을 발전시키고 유지할 것 △서비스 수혜자에 대응하는 문화적·언어적으로 다양한 거버넌스, 리더십 및 인력을 확보하고 지원할 것 △거버넌스, 리더십 및 인력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문화적·언어적으로 적절한 정책과 관행에 대해 교육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 ②의사소통 및 언어 지원에서는 △모든 의료 및 서비스에 적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영어 능력이 부족하거나 기타 의사소통이 어려운 주민에게 무료로 언어 지원을 제공할 것 △모든 개인에게 언어 지원 서비스의 이용 가능 여부를 명확하게 원하는 언어로 구두·서면으로 안내할 것 △언어 지원을 제공하는 개인의 역량을 보장하고, 미성년자나 훈련되지 않은 통역하는 것을 지양할 것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쇄물 및 멀티미디어 자료를 서비스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

마지막으로 ③참여, 지속적인 개선 및 책무성에서는 △문화적·언어적으로 적절한 목표, 정책 및 관리 책임을 설정하고 이를 조직의 계획 및 운영 전반에 통합할 것 △조직의 CLAS 관련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를 수행하고, CLAS 관련 조치를 평가해 지속적인 품질 개선 활동에 통합할 것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구 통계 데이터를 수집·유지·관리하여 건강 형평성 및 결과에 대한 CLAS의 영향을 모니터링·평가하고 서비스 제공에 반영할 것 △지역사회 복지자원과 필요성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사용하여 서비스 영역에서 인구의 문화적 및 언어적 다양성에 대응하는 서비스를 계획 및 구현할 것 △커뮤니티와 협력하여 정책, 관행 및 서비스를 설계·구현 및 평가하여 문화적·언어적 적합성을 보장할 것 △갈등 또는 불만을 식별, 예방 및 해결하기 위해 문화적·언어적으로 적합한 갈등 및 고충 해결 프로세스를 확립할 것 △CLAS를 구현하고 유지하는데 있어 조직 운영 상황을 모든 이해관계자·유권자 및 일반 대중에게 전달할 것이 포함된다.

 

각 기관의 서비스 구현을 위한 체크리스트

소수자 건강 사무소는 각 기관에서 이 원칙들을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체크리스트에서는 위 15개 원칙을 실제로 기관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예시를 제공하고, ‘현재 구현하고 있음’, ‘구현할 예정임’, ‘구현할 계획이 없음’ 이 세 가지 선택지 중 선택하도록 한다.

① 거버넌스, 리더십 및 인력 항목에서는 지역신문에 다양한 언어로 구인 공고를 게시하고, 지역사회에서 취업 박람회를 개최하며, 지역사회나 단체의 리더들과 협력해 멘토링 등 훈련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 문화적·언어적으로 다양한 서비스 인력을 모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확인한다.

② 의사소통 언어 지원 항목에서는 통역 교육을 받거나 통역 지원이 가능한 인력들에게 금전적 지원이나 휴가를 부여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지, 통역지원을 하는 직원들이 인증은 완료했는지,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커뮤니케이션 및 언어지원이 가능한지를 알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는지 여부 등이 체크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③참여, 지속적인 개선 및 책무성 항목에서는 CLAS가 기관의 미션, 비전, 그리고 전략적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지, CLAS와 관련한 조직 평가 체계가 존재하는지, 서비스 수혜자들의 민족 및 언어 데이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지, 기관의 조직 구성원이 문화적 매개자로서 문화적·언어적으로 다양한 욕구를 가진 클라이언트들과 의사소통하고, 갈등을 중재하고, 피드백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평가한다.

 

이주배경 사회서비스 인력을 보조인력에서 핵심인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주민을 비롯한 다문화 배경을 가진 이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많은 정책적·실천적 노력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이주민 통역지원사 및 이중언어 지원인력을 채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몇 년 간 여성가족부 산하 센터에서 오히려 임금차별을 경험하고,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경험했다고 호소한 바 있다.

이주민 집단에 대한 복지서비스는 이주배경을 통해 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나라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이들이 더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중언어를 사용할 수 있거나 이주배경을 가진 인력들이 다문화 사회복지전달체계의 ‘보조인력’이 아닌 ‘핵심인력’으로 대우받고, 사회복지현장에서 더 많이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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