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2015년부터 근로빈곤층 등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생활곤궁자 자립지원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자 설계된 이 제도가 지난해 한국형 실업부조라는 명목으로 차상위계층, 특히 근로빈곤층의 소득지원을 목표로 도입된 한국의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본에서는 2008년을 기점으로 경기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비정규직 증가 등 노동시장이 크게 불안정해졌고, 이에 따라 공공부조인 ‘생활보호제도’ 수급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일본 정부가 2013년 발표한 ‘생활곤궁자의 생활지원의 방향에 관한 특별 부회 보고서’에는 근로자의 30%가 연소득이 200만 엔(한화 약 20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일본 사회안전망은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을 양대축으로 하여 유지돼 왔다. 먼저 1차 사회안전망인 연금제도,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을 통해 실업이나 은퇴 등으로 소득을 상실한 사람에 대한 소득을 보장한다. 1차 사회안전망을 통해 빈곤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2차 사회안전망인 공공부조를 통해 생활보장이 이루어진다.

2013년 당시 일본에서는 저소득층 비율이 크게 높아지면서 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회보험의 특성상 저소득층이 소득을 상실함에 따라 1차 사회안전망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수급자로 전락하는 문제가 부각됐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이에 새로운 사회안전망 구축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차상위계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생활곤궁자 자립지원제도(이하 자립지원제도)’가 등장했다.

 

사회안전망의 빈틈을 메우는 생활곤궁자 자립지원제도

2015년 4월 시작된 자립지원제도는 복지사무소가 설치된 900여 개 지자체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의 근거법인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 제2조에서는 ‘생활곤궁자’를 ‘현재 경제적으로 곤궁한(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으며,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다만 소득·자산 기준 등 요건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 이를 정확히 대체하는 용어는 없지만 주로 근로빈곤층 등 저소득층을 실질적 지원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상위계층’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은 제도의 틀만을 규정하고, 복지사무소를 설치한 지자체의 재량에 따라 생활곤궁자에 대한 각종 지원사업을 마련해 실시하도록 제정됐다. 자립지원제도의 목표는 ‘생활곤궁자의 자립과 존엄 확보’와 ‘생활곤궁자 지원을 통한 지역 만들기’이며, 지원 형태로는 ‘포괄적 지원’, ‘개별적 지원’, ‘조기적 지원’, ‘지속적 지원’, ‘분권적·창조적 지원’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지원 내용을 살펴보면, 표와 같이 모든 지자체가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필수사업으로 ①자립상담지원사업과 ②주택확보급부금이 있고, 임의사업으로는 ③취업준비지원제도, ④임시생활지원사업, ⑤가계상담지원사업, ⑥아동학습·생활지원사업, ⑦그 외 자립촉진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임의사업은 법에서 정한 큰 틀 안에서 지역 여건과 이용자의 개별 욕구에 따라 맞춤형으로 실시된다. 이에 따라 지역별로 서로 다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지원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①자립상담지원사업을 통해 이용 신청 및 상담이 이루어지고, 생활곤궁자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사정을 거쳐 지자체에서 제공하고 있는 사업을 조합해 지원 계획을 수립한다. 이때 생활곤궁자에게 긴급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사정 및 계획수립에 앞서 ②주택확보급부금, ④임시생활지원사업을 통해 이용자의 기본적인 주거·생활 안정을 우선 지원할 수 있다. ①자립상담지원사업은 제도의 창구 역할을, ②주택확보급부금은 기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지역마다 생활곤궁자의 욕구에 따라 5개의 임의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체계다.

자립지원제도의 세부사업마다 고유 역할이 있지만 생활곤궁자가 공공부조 수급에 이르기 전에 지원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경제·생활 자립’을 촉진하기 위한 취업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대부분 현금급여를 통한 지원이 아닌 직업훈련과 같은 공공서비스를 현물급여로 제공·지원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공공부조인 생활보호제도와는 구분된다.

 

생활곤궁자 자립지원제도의 과제와 한계

2015년 제도 시행 초기에는 제도의 틀만 정해져 있고, 구체적인 운영 방식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어 지자체들이 많은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생활곤궁자를 ‘경제적으로 곤궁한 자’로 모호하게 정의하고 있어 경제적 수준이 어느 정도여야 생활곤궁자로 보고 지원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

또한 지자체가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해당 제도의 지원 형태로 ‘분권적·창조적 지원’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사업내용을 지자체의 재량에 맡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법 개정을 통해 ③취업준비지원사업과 ④임시생활지원사업을 추진하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지난해를 기준으로 지자체의 임의사업의 실시율이 60%를 넘어서기는 했으나 이러한 성장이 사업 자체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사업의 지역 간 질적 격차 문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발굴할 것인지도 하나의 논쟁거리다. 자립지원제도의 특징 중 하나는 지자체 직영 형태가 아닌 비영리조직 등 민간영역에 위탁하여 제도를 운영하도록 기획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 민간단체와의 연계와 네트워크 구축, 사회 자원의 활용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생활곤궁자 지원을 통한 지역 만들기’를 제도의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후생노동성이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지자체의 약 90%가 자립지원의 출구라 할 수 있는 취업을 확대할 만한 지자체와 연계된 취업처가 부족하다는 우려를 표했다.

자립지원제도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은 지자체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공공부조를 통해 지원이 어려웠던 근로빈곤층 등 다양한 저소득 생활빈곤층을 지역 특성에 따라 지원 대상으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자체의 재량권 보장은 양날의 검처럼 또다른 문제를 낳는 단점이 있다는 것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국민취업지원제도에 대한 시사점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부터 ‘국민취업지원제도’라는 이름의 한국형 실업부조가 시행되고 있다. 이 또한 일본 자립지원제도와 같이 주로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영세자영업자, 특수고용형태근로자와 같은 차상위계층의 소득 보장을 주된 정책목표로 삼고 있으며,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사이의 사회안전망으로 기능하도록 고안된 제도이다. 비슷해 보이는 두 제도의 간단한 비교를 통해 일본의 경험이 한국의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 앞서 먼저 일본 자립지원제도는 명목상 실업부조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실업부조의 주된 기능은 소득보장으로 현금급여 제공을 전제로 하는데 비해 일본 자립지원제도는 현물급여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나라 국민취업지원제도는 현금급여를 통해 소득을 보장하는 ‘한국형 실업부조’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소득보장보다 취업지원 목적이 강한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실질적인 실업부조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업부조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취업지원을 통한 생활보장을 내세운 일본과 실업부조라는 틀 속에서 제도를 구축한 한국, 그 선택의 차이가 제도의 방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일본 자립지원제도는 지자체 재량에 크게 의존하는 지역단위 사업인데 비해 한국 국민취업지원제도는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국가 단위 사업으로써 형평성 있고 균일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두 제도가 공통적으로 지원 대상으로 삼는 근로빈곤층은 다양한 형태와 형태별로 다른 욕구를 보이는데 이에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충분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일본 자립지원제도는 지역 밀착형 제도로 지역사회 자원 활용이 필수적이고,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어 우리나라 국민취업지원제도와 비교된다.

앞으로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지금처럼 현금급여를 통한 실업부조 기능을 강화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일본 자립지원제도 형태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향후 제도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면, 일본자립지원제도의 명암은 우리나라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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