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주민에게 더 나은 주거환경을

김갑록 서울특별시립서울역쪽방상담소 소장
김갑록 서울특별시립서울역쪽방상담소 소장

2020년 국토교통부는 영등포, 대전, 부산 동구의 쪽방 지역을 정비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지난해 2월에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도 발표했다. 서울시도 질세라 중구 양동구역 제11·12지구에 공공임대주택, 주민의 자활과 취업 등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중구 양동의 개발사업 방식은 공공주도가 아닌 민간 재개발 방식으로 기존 쪽방 거주민의 재정착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주민 자활과 의료, 취업, 커뮤니티 등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 조성이 포함됐다.

정부는 노후 쪽방촌 재개발 사업을 전국의 10개 쪽방상담소가 관리하는 지역까지 확산시키겠다며 지역 여건에 맞는 사업방식을 적용해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체계 속에서 도시재생사업과 주거복지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도시환경정비사업을 통해 쪽방촌을 단계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쪽방촌 거주 주민들은 ‘선이주 선순환’ 방식의 재개발 추진을 반기면서 일단 나가라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반응과 함께 빨리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기대를 보였다.

그러나 서울역 쪽방촌에는 정비 계획 발표 이후 15개월이 지난 현재도 아무 움직임이 없다. 토지주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 주도 추진위원회와 공공 주도를 원하는 추진위원회 사이에서 정비사업이 표류하면서 쪽방촌 정비사업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커져가고 있다.

‘쪽방’이란 1960년대부터 형성된 도시 빈민 주거형태의 하나로 방을 ‘쪼개어 쓰는(slice)’, 혹은 일반적인 방보다는 ‘훨씬 작다(tiny)’는 생김새와 형성과정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하지만 다양한 발생기원을 가지고 있다 보니 쪽방이라는 이름보다는 여인숙, 여관, 고시원 등의 간판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00년 보건복지부는 쪽방을 ‘도심 인근이나 역 근처에 위치하여 1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단신 생활자용 유료숙박시설’로 정의한 바 있으며, 쪽방의 입지와 면적, 숙박시설이라는 성격을 강조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쪽방의 특성을 대체로 △성인 한 사람이 잠만 잘 수 있을 정도 공간 △별도 욕실이나 부엌과 같은 편의시설 미비 △거주자는 대체로 불안정하고 이동성이 강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소득이 낮은 도시의 최빈곤층으로 특히 가족을 구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음 △대개 일세나 무보증 월세로 운영하는 형태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서울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쪽방 주민들의 일상을 위한 마지막 보루, 쪽방상담소

현재 쪽방 주민들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쪽방상담소는 서울 5개소, 부산 2개소, 인천·대전·대구 각 1개소 등 전국에 10개소가 설치·운영 중이다. 전국쪽방상담소협의회가 쪽방상담소가 설치된 대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3월 현재 전국의 쪽방 건물은 1148동, 쪽방 수는 8902개이며, 쪽방 거주자 수는 5135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별 거주 현황은 다음 표와 같다.

쪽방상담소는 △사례관리 △주민 상담, 안전점검, 편의시설 운영, 혹한기·혹서기 특별보호, 후원연계, 저렴쪽방 운영 등 생활지원 △간호상담, 진료지원, 감염병 관리 등 의료지원 △임대주택 지원, 신용회복, 법률지원, 자활작업장 운영, 취업알선, 직업교육 등 자립·자활지원 △명절행사, 교양교육 프로그램 등 정서지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주민 자립·자활 의욕 고취를 위해 공모사업을 통한 기술교육 기회 제공 및 자활사업 진행, 주거 상담을 통한 임대주택 신청 지원 등에도 힘을 쏟고 있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다. 일할 수 있는 주민에게 교육 및 취업을 연계하면 근로수입이 늘어나지만 생계비와 주거비 지원,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주거복지센터와 연계해 임대주택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상담을 통해 신청을 독려하기도 했지만 ‘교통도 불편한 곳에 보내 고독사로 죽일 셈이냐’라며 화를 내는 일도 종종 생긴다.

익히 알다시피 쪽방은 열악한 주거 환경의 대명사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샤워실·화장실·주방, 지어진지 30~40년이 지나 청결하지 못하고 화재 위험에 취약한 건물, 단열과 환기가 되지 않아 한여름에는 찌는 듯 덥고 겨울에는 뼛속까지 시린 쪽방 주민들을 바라보면 늘 걱정되고 안쓰럽다. 실제로 쪽방촌에서는 혹서기에 온열질환으로 사망하거나 고독사로 사망하는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주민들의 주거권이 단지 주거만이 아닌 건강 및 생명과도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개선이 매우 필요한 상황인데도 건물주는 이미 적은 비용을 받으며 봉사하고 있는데 건물 개·보수까지 해줘야 하냐며 고개를 젓는다.

 

쪽방촌 주민에게 더욱 가혹했던 코로나19

모든 국민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더 가혹한 시간이었다. 2년 전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고 방역지침이 다소 완화된 현재까지도 전국 쪽방촌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하면 보건당국의 지침이 있을 때까지 거주지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하지만 쪽방 주민들은 화장실, 주방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어 2차, 3차 감염자가 속출했다. 개인 차원의 방역수칙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같은 건물의 모든 주민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격리되어 코호트 격리와 다를 바 없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방역당국은 감염병 대응 단계에 따라 사회복지기관 및 시설 운영을 축소하거나 일시 폐쇄를 권고했지만 쪽방상담소는 그마저도 따르기 어려웠다. 상담소 운영이 중단되면, 주민들이 빨래, 샤워 등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격렬한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매주 PCR검사를 받고 음성임이 확인된 주민들은 상담소가 제공하는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현재는 백신 3차 접종을 마친 주민이라면 검사를 받지 않아도 편의시설 이용에 어려움이 없지만 앞으로도 새로운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거나 또다른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쪽방촌 주민들은 위험 속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

흔히 쪽방촌 주민들을 잠재적 노숙인이라고도 한다. 노숙인들이 생계 지원을 받아 일시적으로 쪽방에 거주했다가 다시 노숙생활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빗댄 것이다. 이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절실하다. 언제인가 북유럽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정부가 보유한 아파트에 노숙인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스스로 자립해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과 제도를 운영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노숙인이 줄어들면서 고독사 사고도 따라 줄고, 삶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졌다는 스웨덴과 핀란드를 방문해 실제로 기사 내용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이들 나라에서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는 높고, 자살률은 낮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의지와 그에 따른 추진력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새 정부 국정과제 ‘취약계층 주거환경 보장’ 충실히 이행되길

새 정부의 의지와 추진력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임기 내 공공임대주택 5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고, 곧 복지국가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지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던 10개의 쪽방 지역을 대상으로 한 정비사업 계획으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독립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주민들의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꺼지다 못해 실망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또다시 바람만 넣은 것 아니냐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러나 쪽방촌 주민들은 여전히 정비사업이 조속히 추진되어 보다 깨끗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새 정부가 내세운 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해 안정되고 쾌적한 주거환경이 마련되고, 이를 기반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이들이 당당한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건강한 지역사회가 조성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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