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국민연금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확산하고 있지만 그 세부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경제적 논리와 사회정의적 논리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바다 건너 호주에서도 국가장애보험제도를 놓고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호주 국가장애보험제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호주 정부의 국가장애보험제도(The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NDIS)는 장애와 관련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13년 호주 일부 지역에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2020년부터 호주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이 제도는 국가장애보험청(NDIA)이 관리하고 국가장애보험제도 품질안전위원회(NDIS Commission)가 감독한다.

이 제도의 목표는 장애를 가진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비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65세 미만의 ‘영구적이고 중대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장애와 관련된 ‘합리적이고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지원기금은 장애 등급에 따라 개인에게 차별적으로 할당된다. 개인 또는 보호자는 각 개인에게 할당된 기금으로 국가장애보험제도가 인증한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 구매한다. 이 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마련된 기금은 장애 지원 연금, 건강보험 재정과 분리되어 있다. 건강관리와 장애 지원은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전적으로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며, 기금 수혜자들은 어떤 비용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보험’이라는 단어는 이 제도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관리하기 위해 사전 예방적 보험 원칙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호주 국가장애보험청의 지원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핵심 지원’에는 배변관리 용품, 개인 의료 지원, 사회 및 지역사회 참여 지원, 이동보조, 그리고 일상 소모품들이 포함된다. ‘능력 개발’은 장애인의 자립성과 자신의 삶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자본 지원’ 예산은 매우 비싼 보조 기술 및 가정 또는 차량 개조 비용을 위한 것이다.

 

막대한 제도 운영 비용,개혁논의 불 지펴

도입 초기, 호주 생산성 위원회는 국가장애보험제도 시행에 연간 150억 호주달러(약 13조5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가장 최근 연구에 따르면 1년간 보험제도 운영에 필요한 기금은 2030년에 600억 호주달러(약 54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출된 비용을 보면, 2016년 42억 호주달러(약 3조6000억원)에서 2020년 약 215억 호주달러(20조원)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호주 정부는 이 제도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이 2045년경에는 GDP의 1.3%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원대상자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2017년 17만2000명이었던 지원대상자는 지난해 12월 50만2000명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호주 정부는 2030년 말까지 86만명이 지원대상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17년에 생산성 위원회가 2030년 지원대상자로 추정한 58만3000명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개인에게 1년 동안 지원되는 비용도 2017년 3만8900 호주달러(약 3500만원)에서 2020년 5만4300 호주달러(약 5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지원 대상자와 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이유는 장애 초기에 개입하여 장애의 진전을 막기 위해서도 비용을 지출하기 때문이다. 조기개입은 가벼운 장애가 중증 장애로 심화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그 예로 자폐증과 발달 지연 아동에 대한 지원을 들 수 있다. 보험 당국은 2025년에는 10년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아이들이 자폐증과 발달장애 극복을 위한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막대한 비용 부담 증가에 대한 비판은 장애 지원에 지출되는 모든 비용이 1호주달러당 2.25 호주달러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며 무마되었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서 장애인 관련 직업 종사자의 수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원 대상자의 수와 비용 증가 추정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제도 개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자폐아동의 치료를 언제 시작할지, 영구 장애가 아닌 지원대상자에게 언제까지 지원해야 할지, 보장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야 할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넘어서는 장애 서비스 비용 상승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보험제도 개혁방안, 집단별로 동상이몽

매년 증가하는 보험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예산 마련과 더불어 보험제도 운영에 장애인들과 그 가족이 기여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번달 실시되는 총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들은 국가장애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개혁 방안을 공약하고 있다. 현재 야당인 노동당은 보험금 청구 심사과정에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보험 운영을 위해 장애인과 가족의 참여를 보장하는 공동 설계, 공동 운영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전문가들은 보험 개혁을 위해서는 기금 관리와 관련 데이터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더 많은 장애인을 임원과 이사회에 배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스템 부정행위를 단속하고, 직원과 서비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인적자원과 시스템도 새롭게 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 단체는 제도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보험급여 지급청구 심사에 독립적인 전문가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예산에 대한 우려로 정부가 보험급여 청구 심사를 매우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지원금 사용에 대한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재량 범위를 대폭 확대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가 지정한 특정 지원 서비스나 제공자에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 제공업체에 대한 더 엄격한 품질관리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골 지역 위치한 업체들이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품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 혜택’ vs. 사회참여 보장을 위한 ‘경제적 수단’

국가장애보험제도에 필요한 비용이 도입 당시 예상했던 비용보다 훨씬 크다며 제도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 비용관리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제도가 가진 긍정적인 영향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재정 수준으로는 폭증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염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지지자들은 국방비의 과도한 지출 수준이나 비용대비 효과에 대한 논의에는 그러한 잣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이 제도의 지지자들은 국가장애보험제도를 누구나 필요할 때 받을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공정한 경쟁의 장에 완전히 참여할 자격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이 제도가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혜택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를 보장하는 경제적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들이 국가에 의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장애보험제도를 지원하는 것은 단지 사회정의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경제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