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책연구실 책임연구원
이선우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책연구실 책임연구원

거버넌스(governance)는 1990년대 이후 사회과학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용어 중 하나일 것이다. 사회복지영역에서도 수많은 정책과 사업, 연구에서 거버넌스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거버넌스는 ‘중앙정부 중심의 통치’ 또는 ‘관료제적 통치’에 대립되는 차원에서 ‘민관협력 기반의 국가운영 방식’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거버넌스의 어원은 그리스어 ‘kubernan’으로 ‘키를 조종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성질’ 또는 ‘상황’의 성격을 부여하는 접미사 ‘ance’가 결합됨으로써 배가 출항하여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연속적인 성질과 조건적 상황을 내포한다. 즉, 성공적인 항해를 위해 총지휘자인 선장과 중간관리자 격인 갑판장, 직접 키를 조작하는 조타수, 항로를 측정하는 항해사 등 모든 선원이 협력하듯 국가운영에 다양한 주체의 능동적인 역할수행과 협력 및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본 글에서는 오늘날 요구되는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 구축방안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사회복지 지방분권화와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 개혁을 통해 중앙집권 국가에서 분권과 경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국정 운영의 틀을 전환했다. 사회복지영역 또한 2003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에 관한 자율성 및 책임성이 강화되었으며, 2005년 보건복지부 산하 67개 복지사업의 지방 이양과 2006년 ‘제1기 지역사회복지계획(2007~2010)’이 수립되는 등 지방화 및 분권화가 진행되었다.

이후 지역사회복지계획은 제3기부터 지역사회보장계획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복지사업의 범위와 내용이 확대되었고, 지자체의 역할과 책임도 더욱 강조되었다. 2013년 ‘국민중심의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개편과 읍·면·동 복지허브화 계획 추진, 2017년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전달체계’로의 개편과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의 설치 등 사회복지 지방분권화의 흐름은 꾸준히 지속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 특성과 지역주민 욕구를 고려하고 지역사회가 중심이 된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었으며,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까지 지역사회복지 정책의 추진과정과 내용을 보면 중앙정부의 강력한 권한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여전히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커뮤니티케어(community care)’ 개념을 도입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은 2018년 기본계획이 수립되어 현재 16개 지자체에서 선도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어르신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포용국가’를 비전으로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통합하여 제공하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그런데 지역사회 통합 돌봄 사업은 성과에 앞서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사업비의 50%를 부담해야 하는 지자체는 재원조달이 어려워 재정 압박을 겪고 있고, 여러 지역사회 시설·단체 간 연계·협력도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러 원인이 존재하겠지만 중앙정부로부터의 하향식 추진에 따라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를 통해 지역사회 문제와 욕구에 기반한 상향식 정책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가장 결정적이라 본다. 지역사회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여 지역사회가 주체적으로 커뮤니티케어 체계를 마련하기 보다는 중앙정부 주도 하에 수립된 계획을 공고하고, 선도사업을 진행할 지자체를 신청받아 일괄 적용하는 흐름이 진행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역사회 통합 돌봄은 지역사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사회 중심 돌봄(community-centered care)’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단순히 ‘지역사회 내 돌봄(care in the community)’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 거점조직,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지역사회복지협의회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는 지역사회 문제 해결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이 참여하고 협력하는 활동 및 그 전체 과정을 포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 지위를 갖는 대표적 지역사회복지 네트워크 추진체계인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이하 협의체)와 지역사회복지협의회(이하 협의회)가 거버넌스 거점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먼저 협의체는 ‘사회보장급여법 제41조’에 근거해 지역 사회보장 증진 및 사회보장 관련 기관·법인·단체·시설의 연계·협력 강화를 주된 목적으로 한다. 2019년 기준 시·군·구 협의체를 통해 4000건 이상의 지역사회보장 관련 심의·자문과 33만 건 이상의 서비스 제공 및 연계가 수행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협의체는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공공 주도의 민관협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 인해 관 주도적 위원 구성 및 형식적인 안건 중심 협의, 서비스 공급자 중심의 구성 등의 문제가 지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반면 협의회는 민간의 대표성을 지닌 조직으로 국가의 사회복지 전달체계가 확립되기 전부터 민간 사회복지 네트워크의 주축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사회복지사업법 제33조’에 근거해 협의회는 사회복지에 관한 조사·연구 및 정책 건의, 사회복지 관련 기관·단체 간의 연계·협력·조정, 사회복지 소외계층 발굴 및 민간 사회복지자원과의 연계·협력,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회복지사업의 조성 등의 사회복지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협의회는 2021년 기준 17개 시·도와 161개 시·군·구에 설치·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협의회는 법적 의무설치가 아닌 임의 설치조항에 근거하고 있어 시·군·구 협의회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지역도 존재하며, 민간 중심의 거버넌스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협의회의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제약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협의체와 협의회는 우리나라 사회복지 지방분권화에 기여함과 동시에 거버넌스 역할 수행에 있어 한계점도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조직 모두 지역사회복지 네트워크 및 거버넌스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중복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앞서 제시된 바와 같이 두 조직은 법률 규정상 상이한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두 조직이 구축하는 네트워크와 거버넌스는 중복이 아닌 다층적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민관협력의 성격과 수준을 ‘관 주도의 민 협력’, ‘민관의 주체적 협력’, ‘민 주도의 관 협력’ 등으로 세분화하여 협의체와 협의회가 각각의 차원에서 민관협력을 추진한다면,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그리고 지역사회복지

사회복지 모든 영역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지역사회복지 영역은 사회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에 나타나는 문제와 욕구, 더 나아가 개입 방법까지 사회환경 변화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가 겪고있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일 것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공학 등 첨단정보통신기술(이하 ICT)을 활용하여 사회 전반에 걸친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비접촉·비대면 생활방식이 필수로 자리 잡으며, 화상회의, 재택근무, 온라인 강의, 온라인 뱅킹, 배달앱 등 기존에볼 수 없던 새로운 삶의 양식이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협의체와 협의회를 비롯하여 지역사회복지 조직 역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네트워크 및 거버넌스 활동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대면관계와 대면서비스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지역사회복지 영역은 디지털 전환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특히 대부분의 지역사회 구성원이 고령층과 농어민으로 구성된 농어촌 지역은 팬데믹을 겪는 동안 네트워크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ICT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상황 속에 오히려 네트워크와 거버넌스가 원활히 수행되지 못하는 역설적인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19 엔데믹’에 진입하여 다시금 대면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 하더라도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에 ICT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은 변하지 않는다. ICT는 많은 구성원의 참여가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를 발전시키기 위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공유·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ICT를 활용한 참여 확대는 ICT를 통한 디지털 전환이 일상이 된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가 추구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결론 및 과제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지역사회복지 체계는 아직까지 중앙집권적 성향이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 조직인 협의체와 협의회 모두 역할 수행에 있어 일부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ICT를 통한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었음에도 지역사회복지 네트워크와 거버넌스는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ICT 기반 디지털 전환은 모든 참여자가 동시다발적으로 공간적·시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는 뉴노멀 시대를 도래하게 했다. 여러 지역사회복지 구성원이 참여하여 정책 어젠다 형성, 정책 집행 및 평가를 수행하고, 지역사회 고유의 문제와 욕구를 해결하는데 ICT보다 적합한 도구는 없을 것이다.

협의체 및 협의회 등 거버넌스 조직의 다양성을 중복으로 비판하면서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 구조를 획일화하는 것은 거버넌스 본연의 개념과도 상반되며, 시대적 흐름에도 어긋난다. 협의체 및 협의회의 연계·협력을 통해 다층적 거버넌스 구조를 확립하여 보다 많은 지역사회복지 구성원의 목소리를 수렴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령층, 농어민 등 취약계층을 포함한 지역주민과 사회복지시설 및 종사자의 디지털 역량을 높이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이를 해결하여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지역사회 문제 및 욕구가 수렴되고, 지역사회복지 구성원이 함께 대응할 수 있는 뉴노멀 시대의 지역사회복지 거버넌스가 구축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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