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돕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 REHADAT의 2018년 12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인구의 약 7%가 신체장애 및 질병 때문에 이동 제약을 겪고 있다. 이동 문제로 직업활동 및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하고, 사회통합을 돕기 위해 독일 연방정부는 ‘무장애 이동성(Barrierefreie Mobilität)’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정책들이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002년 제정된 ‘장애인동등지위법(Behinderte ngleichstellungsgesetz)’은 2007년 UN장애 인권리협약 채택으로 더욱 발전된 방향으로 개 정되었다. 이 법 제4조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 한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는 대중교통에서의 무 장애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2013년 ‘승객운송법 (Personenbeförderungsgesetz)’을 개정했다. 승객운송법 제8조에 따라 2022년까지 모든 대중교통수단은 이용할 때 접근의 불편함이 완전히 해소될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로 운영해야 한다.

 

독일 대중교통에 적용된 배리어프리

독일 전국 16개 주정부는 승객운송법 개정에 따 라 배리어프리를 달성하기 위해 교통환경을 발전 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시내 교통수단인 버스와 트램에서는 이동의 불편함이 거의 해소됐다. 대 중교통 이용률이 높은 베를린에서는 6600여 개의 버스정류장을 배리어프 리 기준을 충족하도록 개선했으며, 2009년부터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운행하고 있다. 모든 트램 노선 역시 배리어프리로 운행하고 있다. 다만 낡고 오래된 역이 많아 보수공사에 많은 기간이 걸리고 있는 지하철은 빠 르면 2024년에나 배리어프리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를 린 교통공사는 이를 위해 2022년에만 6억 유로(약 8000억원)의 공사비 용을 책정하고, 앞으로 완공까지 추가 예산을 투입하게 된다.

독일의 저상버스는 승·하차시 차체가 기울어져서 버스와 정류장 사이에 단차가 없어지도록 설계되어 휠체어 이용자·이동용 보조기·유모차 승객들 이 불편함 없이 탑승할 수 있다. 버스 바닥에는 이들 이용자를 위한 표시가 되어 있어 승객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도 비켜줘야 한다. 혼자 승· 하차가 힘든 휠체어 이용자는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기사의 도 움을 받을 수 있다. 버스에는 수동식 발판이 설치되어 있어 기사가 직접 발 판을 내려 휠체어 이용자의 승·하차를 도운 다음 버스를 출발시킨다. 트램 역시 승강장과 트램 사이의 단차가 적은 저상 플랫폼으로 마련되어 있어 탑승에 큰 어려움이 없다. 버스와 마찬가지로 이동이 불편한 승객들이 탈 수 있는 공간과 수동식 발판이 설치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승·하차시 기사 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배리어프리를 위한 조치는 장거리 대중교통인 시외버스에도 적용된다. ‘승 객운송법’ 제42조에 따라 모든 시외버스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좌석 이 최소 2개 이상 배치되어야 한다. 독일 시외버스 회사 중 가장 규모가 가 장 큰 Flixbus는 홈페이지를 통해 휠체어 이용자의 티켓 구매에 대한 자세 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출발 7일전에 고객센터와 연락한 다음 배리어 프리 버스를 예약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36시간 전에 신청하면 여행을 돕는 이동 도우미를 배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내교통에 비해 시외버스는 아직까지 배리어프리 목표 달성을 위해 더 많은 투자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2021년 10월 장애인 시민단체 Aktion Mensch의 실태 조사에서는 아직도 많은 버스들이 배리어프리로 개조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어 이용에 제약이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장거리 운송수단인 철도도 독일 국영철도회 사의 지속적인 투자로 배리어프리로 바뀌어 가 고 있다. 2022년 1월 독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 에 따르면 2020년 6월을 기준으로 철도역의 약 78%만 배리어프리로 운영되어 나머지 역에서는 휠체어 이용자·노약자·유모차 승객들이 철도를 이용하는데 제약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 다. 또한 43%의 철도역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 한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독일 국영철도회사는 2020년 11월 배리어프 리 환경 개선을 위해 전국 5400개의 철도역에 서 9300명의 이용객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시 행했다. 조사 대상은 휠체어 이용자 및 보행애 어 려움이 있는 사람, 유모차 이용 가족, 시각장애 인 및 청각장애인이었다. 조사 결과 휠체어 이용 자의 60%, 유모차 이용 가족의 60%, 시각장애 인의 25%, 청각장애인의 93%가 기차 승·하차 에 어려움이 없었다고 응답해 특히 시각장애인 을 위해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직도 많은 철도역이 승강장과 기차 사이 의 단차가 높은 고상 플랫폼으로 운영되고 있어 휠체어 이용자나 유모차 이용 가족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 물론 역사에서 제공하는 이동서비스 (Mobilitätsservice-Zentrale)를 미리 예약하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도움 없이 혼자 이동이 가능한 완전한 배리어프리 역을 늘려가기 위해 매 년 100개 철도역의 공사를 진행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낡고 소규모인 철도역에 대한 보수 공사가 계속해서 필요한 실정이다.

개별적 이동수단(Fahrdienst) 제공은 세계 최고 수준인 독일의 배리어프리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유 용한 제도다. ‘사회복지법’ 제83조 이동에 대한 지원(Leistungen zur Mobilität)에 따라 학교· 직장·병원에 갈 때 혹은 여가활동을 할 때 이 서 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 증명서에 ‘이동 제 약(Gehbehinderung)’을 뜻하는 “G”표식이 명 시되어 있으면 본인부담금이 없다. 신청은 관할 사회복지청에서 담당하고, 이용료는 건강보험사에서 이동수단 업체에 지 불한다. 이 서비스에 대한 정보 접근이 어려울 경우, 이를 도와주는 다양한 기관들도 존재하는데 특히 개정된 ‘장애인참여법’에 따라 2018년부터 전 국에 설치된 ‘보완·독립적 사회참여상담(Erganzende unabhangige Teilhabeberatung, EUTB)’ 기관에서 제공하는 무료 상담을 통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독일에서 사회복지학사 과정을 수강하면서 당시 학우들과 특별한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바로 2인 1조로 짝 지어서 휠체어를 타고 두 시간 가 량 시내를 돌아다녀 보는 것이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인도의 턱이 높지 않아서 휠체어를 밀 때나 타고 있을 때 큰 불편함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회성 체험만으로 휠체어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모두 느낄 수는 없었겠지만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도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평소 대중교통에서 도 휠체어 이용자들의 승·하차시 기사가 직접 내려서 도와주는 것은 흔히 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시간 지연으로 불평하는 승객들을 본 적이 없다. 휠체어 이용자도 당연한 권리로 여기기 때문에 미안해하거나 위축되지 않 는다. 시민들도 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역시 휠체어·유모차 이용자를 위 해 가급적 이용하지 않는다. 배리어프리 환경을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독일 정부의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게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 러한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배리어프리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 만 독일 등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우리나라 전 국 평균 저상버스 도입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대 부분 서울에 편중되어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6년까지 전국 평균 시 내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을 62%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한다. 이 를 위해서는 도로 구조·시설 공사도 맞춰서 진행되어야 한다. 계획 대로 잘 진행되어 장애인들의 대중교통 이용이 좀 더 쉬워지기 를 바란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왜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을 것을 알면서도 오랜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동할 수 없으면 일도 할 수 없고,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사 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배리어프리 환경 개선과 더불어 장애인 등 이동약 자들의의 이동권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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