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구인회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곧 출범하게 될 새 정부가 복지 분야에서 어떤 과제를 내세우고 어떤 방향으로 대책을 추진할지 아직 전체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새 정부의 대체적인 정책 기조는 과거 보수 정부와 유사하게 탈규제와 유연화, 민간의 역할 강화의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포용적 복지 등을 내세우며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제시한 공약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새 정부는 복지 분야에 대해 비전이나 전략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최근 집권 했던 보수 정부와 비교한다면, 박근혜 정부보다는 이명박 정부에 더 가까워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과정이나 집권 초기에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에 적극적이었다. 실제로 기초연금 인상, 무상보육, 기초보장 맞춤형 개혁 등 굵직한 정책을 집권 기간 중 실천하였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초노령연금 도입, 근로장려세제 실시, 장기요양보험 도입 등 노무현 정부가 정해 놓은 과제를 그대로 수행하는 정도에 그쳐 새롭게 추진한 복지 정책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새 정부도 이미 복지 분야 어젠다에 올라 있는 과업에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가 복지 확장에 대해 적극적이고 친화적인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실용성을 강조하고 “촘촘하고 두툼한 복지”를 내세우고 있어서 주요 사회복지 과제를 도외시할 것으로 단정할 이유는 없다. 복지 부문 과제들은 이미 많은 영역에서 시민들 삶에 매우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보수·진보 이념을 뛰어 넘어 국정 운용 주요 정책 어젠다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복지 사각지대 해소 및 복지수준 확대라는 일반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고, 아동, 노인 등에 대한 돌봄서비스의 개선, 저출산에 대한 대처, 연금 개혁 등 고령화 대책, 양극화 대응도 보수·진보의 이념적 지향에 상관없이 정부의 조치가 필요한 과제로서 넓게 수용되고 있다.

새 정부 대선 공약을 보면, 그간 과제로 제기되어온 저소득 취약 계층의 보호와 관련된 정책이 전향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코로나19 관련 손실보상, 기초연금 40만 원으로 상향 조정, 기초보장 생계급여 인상 및 재산기준 개선, 긴급 복지지원 확대 등 취약 계층 지원 분야에서 주요 과제들이 망라되어 있다. 재난적 의료비 확대와 유급 상병(傷病) 휴가 도입 약속도 논의가 진행되던 과제로 실천이 기대 되고 있다. 한편 출산 후 1년간 월 100만 원 부모급여 제공이나 장애인 개인 예산제와 같이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진전된 제안이지만 부작용이 없도록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하지만 새 정부는 복지 분야 접근 전략에서 현 문재인 정부와 차이를 보일 것이다. 돌봄과 의료 등 사회서비스에서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고, 소득보장에 대해서는 선별복지와 비효율 해소 등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이 현재 복지 분야의 과제에 대처하는 데 적절하고 효과적일 지에 대해서는 더욱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아동보육 등 일부 분야에서 공공의 서비스 제공을 확대했지만, 장기요양과 의료 등 영역에서는 아직도 대부분의 서비스를 민간의 소규모 제공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취약한 이용자층의 보호와 서비스 질 개선을 위해 공공과 민간 간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

복지 분야의 몇 가지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더욱 체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향후 코로나19 유행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디지털 녹색경제로의 전환이 빨라질 텐데, 새 정부 공약에는 이에 대한 대비책이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인 소득안전망을 점진적으로 확충하는 노력이나 청년층에 대한 공공임대 제공, 기초보장 주거급여 확대 등은 공약대로 진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감염병 재확산의 위험이 사라지지 않아 대면 서비스 부문 중심으로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고,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청년, 여성, 저숙련 근로자 등의 고용 기회 복원에도 제한이 있을 것이다. 또 디지털경제, 녹색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다른 한편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에서는 구인난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이행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혜택을 공유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고용안전망의 정비와 강화가 요구되지만, 공약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축소하고 위기에 몰린 취약 자영업자에 대해 고용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당면 과제로 부상한 연금 개혁에 대해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2023년에는 국민연금의 제5차 재정추계 결과가 나올 것이고 이를 계기로 국민 연금의 개혁 논의가 불붙을 것이다. 공약에서는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개혁을 추진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개혁 방향에 대해서도 그간 논의를 반영한 다양한 구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연금 개혁은 복지 분야의 대표적인 난제인 만큼 더욱 세심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난 2018년 제4차 재정추계에서 연금재정이 2057년으로 앞당겨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정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입장과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의견이 갈리면서 연금 개혁안의 합의 도출에 실패하였고 정부 또한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돌아보건대, 당시 개혁 논의는 현세대 노인의 빈곤 문제 해소와 같은 연금제도의 핵심과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의 노후보장에 대해서도 사각지대 해소방안 등을 포함하여 종합적인 시각에서 검토하지 못했다.

한편에서 펼친 장기 재정 예측에 따라 보험료 인상을 추진해야 한다는 재정안정화론은 후세대에 재정 부담을 전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해 보였다. 그러나 70년 뒤의 불확실한 미래 예측을 근거로 현재 보험료의 인상률 수치까지 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한 보험료 인상을 국민이 수용할만한 수준인지 등 연금제도 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를 충분히 하였는지도 의문이다. 다른 쪽에서는 국민이 연금재정에 대해 불안이 커진 상태에서 그러한 불안감을 한층 부채질 할 소득대체율 인상을 내세웠다. 이 보장성 강화론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노후소득 보장수준을 근로시기 소득의 40%로 너무 낮추었다는 일리 있는 주장을 하였지만,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후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높아져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수십 년 간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고 노후를 맞이한 시점에서 연금수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청년세대 불안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했다.

2018년 연금 개혁 논의에서 아쉬운 점은 국민연금의 주요 문제인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대책에 관해 본격적인 검토가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연금은 이제 도입 후 한 세대가 넘었지만, 아직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 국민이 상당 규모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보험료 납부기간이 짧아 연금 수급을 위한 최소 가입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해 노후에 연금을 수급하지 못한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을 제대로 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사각지대를 줄여 국민 대다수가 은퇴연령에 연금수급 자격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사각지대 국민은 그 대다수가 불안정 고용상태에 있어 보험료를 감당할 경제력이 떨어지지만, 고용주로부터 보험료 절반을 지원 받는 피고용자와 달리 보험료의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 지역 가입자들이다. 소득세와 한꺼번에 보험료를 징수하는 납부 체계 개선으로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계층에 대해서는 보험료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각지대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 안정을 이유로 한 연금보험료 인상은 사각지대 해소를 더욱 어렵게 할뿐만 아니라 연금제도의 사회적·정치적 수용성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또 사각지대 해소라는 전제 없이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은 상당수 무연금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 없이 연금 가입자격을 얻은 일부 고용 안정층의 연금소득만을 늘려 연금불평등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세계적인 수준의 초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지난 20년 가까이 1.2 수준에서 등락했는데, 지난 수년간 급락하여 2021년에는 거의 0.8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출산율 하락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그 현상이 보여주는 우리 국민의 삶의 질 수준 하락이 더 큰 문제다. 이제 청년과 여성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중산층 삶에 대한 꿈을 이루는데 결혼과 출산이 장애가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우리 출산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출산과 양육 비용이 높은 점과 함께 양극화로 인한 청년의 경제 여건 악화, 여성이 겪는 일과 가족 양립의 어려움 등을 꼽을 수 있다. 양극화론에서는 안정된 일자리 부족, 부동산 가격 상등 등으로 많은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룰만한 경제적 여건을 갖추기 어렵게 되었다고 본다. 일과 가족 양립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시각에서는 경력 추구 성향이 강한 새로운 고학력 여성 세대가 등장했지만, 이들이 직면하는 사회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임금은 남성에 비해 33%나 낮아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성별 임금격차를 보이고 있고, 취업과 승진에서 여전히 차별이 심하다. 특히 결혼 하고 출산, 양육하는 여성이 기업에서 심각하게 불이익을 받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결혼·출산을 감당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역대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출산과 양육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에 역점을 두었다. 출산비나 아동보육비 지원,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한 아동수당 등은 모두 이러한 정책에 속하는데, 지난 10여 년 간 그 한계가 확인되었다. 이제 삶의 질을 개선하는 양극화 대책, 일과 가족의 양립을 지원하는 성평등 정책으로 새로운 청년 세대와 여성들의 미래를 열어주어야 한다.

곧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 5년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재난 발생과 경기 변동으로부터 안정을 제공하는 사회, 청년이 희망을 갖고 여성이 평등을 누리는 사회, 노후빈곤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는 사회, 이러한 사회를 향해서 한 걸음 나아가는 새로운 5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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