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용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형용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 사회의 붕괴 조짐이 도처에서 관찰되고 있다. 기후 위기, 가족구성 회피, 양극화, 고용 상실, 돌봄의 위기와 같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이다. 그 어느 하나 시급하지 않은 이슈가 없고, 지금 당장 조치하지 않으면 내일은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현재의 위기는 호사가들이 자주 거론해 왔던 재난자본주의의 단순 소재거리가 아니다. 저출생은 출산과 양육 지원으로 풀리지 않을 것이고, 불평등도 부동산 가격 통제로 줄어들 것 같지 않다. 탈탄소사회 전환은 결국 시기를 놓치고 있고, 고용의 종말은 다수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청사진을 그려내기 어렵다.

 

“촘촘하고 두툼한 복지”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지도자에게 바라는 신뢰는 비전과 전략에 있다. 국민들은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 새 정부에 바라는 것도 정책 목표의 달성 가능성 그 이전에 개인의 희망을 담을 수 있는 긍정적 비전이다. 새 정부의 비전이 정책공약집의 제목인 ‘공정과 상식’은 아닐 것이다. 또한 복지전략이 과거 한 때 잘 사용했으나 효용성이 사라진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도 아닐 것이다. 새 정부에 바라는 바, 단순하다. 누구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국가적 비전이다.

국민이 선택한 새 정부가 성공하길 기원한다. 특히 복지 공약인 ‘촘촘하고 두툼한 복지’를 기대한다. ‘촘촘하고 두툼한 복지’는 대상별 개별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닌, 한국 복지국가 지향으로, 그리고 한국 복지국가가 지향해야 할 보수의 가치도 함께 아우르는 방향이었으면 한다. 언제인가부터 정치는 사회 공동체가 지녀야할 가치를 논하지 않았다. 가치는 집단별로 충돌하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워서인지, 누구도 섣불리 사회적 가치를 논하지 않았다. 반면 올해 대통령 선거는 탈진실 시대의 대선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정책 평가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대선 과정에서 제시되었던 복지공약은 사회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언어적 오염이 심했고, 사실상 후보들의 복지공약은 이름을 가리면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수의 복지가 진보의 복지와 구분되지 않았음에도 서로 차별된다는 정치적 부족주의만 있었다. 복지공약은 다다익선에 가까운 대상별 급여로 가득 찼다. 국민의힘 대선 공약은 근로장려세제 확대, 생계급여 확대, 국민안심지원제도 시행을 포함하여 아동은 아이돌봄과 초등돌봄 확대, 부모는 월100만 원 부모 급여, 청년은 원가주택과 청년도약계좌 자산 마련, 노인은 기초연금과 돌봄 확대 등을 제시하였다. ‘촘촘하고 두툼한 복지’는 프로그램 단위의 사업으로 열거 되었는데, 정작 보수가 지켜야할 규범은 무엇이고 사회보장의 질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청사진이 없으면 당장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부처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위한 정책인지 성과목표를 찾기 어렵다. 사회복지 정책을 평가하는 데 있어 언어(공약)와 행위(정책 집행)의 괴리를 인식할 필요도 있다. 수많은 정책이 당초 목표와 달리 부처별 예산 사업으로만 가능한 것이 많다. 정책의 실패는 정치적 요인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의 합목적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이해당사자들의 적절한 참여와 소통을 통한 협치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즉 공약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큰 그림의 국가적 복지비전 하에서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촘촘하고 두툼한 복지’를 원하지 않는 이들은 없을 것이나, 개별 프로그램이 뜬금없는 정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용자나 공급자 측면에서 강조되는 가치적 구성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이 차이는 아래와 같은 사회복지시설의 디지털 스마트화 공약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복지는 수단이 아니어야 한다 - 사회복지시설의 디지털 스마트화

대선 과정에서 사회복지 현장에 대한 공약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국민의힘 공약집에는 단지 두 가지-종사자 처우개선과 복지시설의 스마트화-가 포함되었다. 일단 종사자 처우개선은 복지현장의 당면과제 중에서 최우선 순위로 다루어져 왔던 이슈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시설의 스마트화가 그에 준하는 사회복지계의 핵심적인 과제인지는 반문할 수 있다. 오랫동안 복지 현장에서는 수급권 보장성 확대, 사무별 전달체계의 통합, 중앙과 지방의 분담, 법인과 시설의 정체성 재확립 등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상대적으로 시설의 디지털화는 지역사회보장체계 효율화를 위한 수단적 수준에서 다루어져 왔을 뿐이다.

아마도 스마트화는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혁신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과제로 등장하였을 것이다. 사회복지의 디지털 전환은 기술적 변화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관의 운영 방식과 서비스 제공 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는 문화적 변화를 포함한다. 따라서 스마트화는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가 ‘클라이언트 중심의 통합서비스 제공’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서비스 분야에 적합한 기술 개발 및 혁신적인 전달체계 마련, 전문 인력 양성과 서비스 이용자의 디지털 문해력 향상, 지역사회 내 공공과 민간의 협업 생태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정책의 맥락이 되는 비전과 가치가 사라지면, 용어의 모호함에 따른 정치와 정책의 동상이몽이 되기 쉽다. 예컨대, 당시 윤석열 후보는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의 대선후보 간담회에서 사회복지종사자 단일임금 체계 도입 공약을 발표하면서 복지도 적절히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사고가 필요하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사회복지사도 '코딩과 컴퓨터 알고리즘'을 공부하라는 발언이 논란이 된 바 있다. 복지 분야도 인센티브로 경쟁을 유도해 나가며 더 전문화해 나가고, 효율성을 높여줘야 재정 지출 대비 국민이 느끼는 복지의 질이 올라가지 않겠느냐는 의미였다. 이러한 발언은 정책 용어의 괴리를 잘 드러낸다. 정책공약은 데이터 기반 서비스 제공과 복지현장의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을 다룬 것으로 충분히 타당한 것이지만, 후보는 스마트복지를 사회복지사의 역량문제로 이해하였고 이를 두고 반대진영에서는 사회복지사에 대한 모멸적 언사로 정치화하였다.

디지털 스마트 전환이 갑작스럽게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도 살펴보아야 한다. 복지 전달체계에 대한 고민 없는 정보산업 지원 정책이 아니어야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뚜렷한 추진 계획이 없어 이 공약을 특징하기 어려우나, 데이터를 어떠한 제도적인 환경 속에서 활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사실 사회보장 영역의 디지털 전환, 데이터 댐 구축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현재 야당인 국민의힘이 대폭 재정 삭감을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뉴딜 사업에서 디지털 뉴딜은 핵심 사업이었다.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AI)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으로 하는 소위 D.N.A. 프로젝트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 경제라는 이름으로 소위 ‘데이터 3법’도 통과시켰고, 이는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상당한 논란을 가져온 바 있다. 특히 데이터 댐 사업은 데이터 수집, 가공, 거래, 활용 기반을 강화한다는 것인데, 거래 가능한 개인정보가 아닌 데이터의 범위가 매우 모호하고, 기업 간 가명 처리된 개인정보를 판매, 공유, 결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이 일었다. 이미 사회보장 정보는 국세청보다도 더 많은 민감한 개인정보 자료를 축적하고 있는데, 이를 데이터 맵이나 포맷 그리고 데이터 활용에 대한 준비나 계획 없이 활용하는 경우 기업 요구에 따른 서비스 산업화 또는 정보먹거리 제공 조치에 불과하게 된다. 사회보장 관련 데이터 댐을 구축하고 활용하는 것이 어떠한 정책적·실천적 계획이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현 수준에서는 디지털 스마트화 공약이 소외계층과 고령자의 정보 격차, 디지털 문해력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취약해진 디지털 소외나 정보접근성 문제에 따른 지원 내용도 아니다. 주요 목표로 수요자 맞춤서비스 효율성 제고만이 제시되어 있는데, 일부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미 사회보장급여법에 따라 공공정보가 수시로 연계·제공되도록 되어 있으며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새롭게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대효과는 아닐 것이다. 이 공약으로 돌봄서비스 통합 AI 플랫폼을 구축해 가정·아동·상황에 따라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설명도 있지만, 그러나 과연 디지털 정보가 돌봄 공백과 종사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지 전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 문제는 결코 발굴의 문제가 아니라, 불충분한 제도와 빈약한 자원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디지털화는 자동화를 통해 지자체나 담당 공무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의 디지털화도 이러한 전국적 시스템 하에서 통합되면 신청주의에 따른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사회복지 현장 핵심공약의 위상이라면 이러한 공약이 복지현장의 어떠한 당면 과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복지 전략의 가치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확인되었듯이, 얼굴 없는 시스템이 복지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사회서비스의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디지털화는 불가피하더라도, 정치와 정책이 올바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미래 유망기술 분야 투자와 활용이라는 산업적 담론이 주도하지 않도록 복지의 이용자 관점과 공급자 실천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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