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1. 한국 복지수준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간 사회복지 측면에서 여러모로 가장 주목 받는 국가였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정책의 확장 속도가 상당히 빨랐기 때문이다. OECD국가 중에서 복지지출 증가율은 가장 빠른 수준이었으며, 향후 여러 제도가 정착하고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면서 사회복지 지출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방위적인 노력을 펼친 바 있다.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기초연금 확대, 아동수당 도입, 근로장려금(EITC) 확대, 노인장기요양서비스 확대, 국민내일배움카드 확대, 실업부조 도입 등이 있었고, 상병(傷病)수당 도입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제도의 확장 뿐 아니라 일부 복지성과를 보이기도 하였다(이태수, 2022).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16년 0.355에서 2020년 0.331로, 아동빈곤율과 노인빈곤율은 같은 기간 15.2%에서 9.8%로, 43.6%에서 38.9%로 감소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복지정책의 확장과 일부 복지성과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여전히 좋지 않은 사회지표들이 다수다. 0.8명대로 떨어진 출산율, 여전히 국제적으로 낮은 삶의 만족도가 대표적이다. 또한,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 자살율, 그리고 성별 소득격차도 자주 인용되는 지표다. 최근에는 증가하는 비정규직 비중, 코로나19 이전부터 지속되었던 영세자영업의 취약성, 과도한 사교육 경쟁 등이 국민의 삶을 팍팍하게 하고 있다.

증가하는 복지지출과 정체되거나 악화된 복지성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새로운 정부는 이에 대한 성찰과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새로운 사회복지를 설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변화된 사회복지의 외적 환경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탈산업화, 고령화, 디지털화의 압박 속에서 가족형태와 노동시장 구조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안정된 일자리가 사라지고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 일자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화는 기존의 반복적 업무를 수행하던 안정된 일자리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비대면 경제의 활성화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한편, 고령화로 인해 돌봄 및 노후소득 보장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지만, 저출산 추세로 가족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복지제도와 이를 집행하기 위한 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적 변화와 이에 따른 사회적 위험이 증가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만일 사회적 위험의 확대가 복지확대보다 더욱 크다면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과가 좋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기존의 사회정책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거나 다양한 제도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보험의 확장은 사회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했지만, 사각지대와 같은 제도 자체의 결함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정치적 수사(修辭) 역시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있어왔지만, 여전히 충분히 이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 및 비정규직의 증가는 사회보험 확장의 노력을 상쇄시키고 있다. 또 다른 한계는 ‘양’(量) 그 자체에 있기도 하다. 노인빈곤율은 OECD국가의 중위소득 50%로 설정되어 있다. 최근 국민연금 수급자도 증가하고 있고, 기초연금도 꾸준히 급여 수준을 높였지만, 여전히 중위소득 50%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출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노인빈곤의 보장을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복지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여전히 경로의존적 발전을 택하였으며, 점증주의적 복지예산을 벗어나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주요한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이었지만, 이 담론에서 방점을 두었던 것은 최저임금이나 노동환경 개선이 우선이었다고 보인다. 실제 복지는 저소득 분위 소득 증가율이나 빈곤율 등의 지표 관리를 위해 임의적으로 활용된 듯한 모습도 보였다. 예를 들어,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 빈곤선 등에 대한 논의를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실업부조를 체계적으로 확대하기 보다는 근로장려금 등을 자의적으로 빠르게 확대시키는 방식을 택하기도 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또 다른 한계점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복지개혁을 실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연금개혁이나 과도하게 민간중심으로 구성된 보건복지서비스 전달체계 등에 대한 보완, 그리고 디지털화에 따른 노동시장이나 사회보장제도 개혁 등은 지속적으로 요구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난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2.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과 새 정부의 과제

윤석열 당선인은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두 거대 정당은 치열한 경쟁을 했다. 하지만, 실제 사회복지 관점에서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것은 마치 박근혜 정부의 사회복지와 문재인 정부의 사회복지가 경로단절적 모습을 보였다기보다는 경로의존적이었다는 것과 유사하다.

윤석열 당선인의(국민의힘, 2022)을 통해서 사회복지정책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문재인 정부와 사회복지정책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경제와 복지와의 관계는 일부 차이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복지의 주요한 수단으로 노동에 중점을 두었다면, 새 정부는 복지보다는 경제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약집에는 ‘행복경제시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 규제혁파, 경제 활력 등이 강조되어 있으며, 두툼한 복지가 어떻게 다시 성장에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즉, 경제성장을 활성화시키면서 이로 인한 낙수효과(落水效果)를 통해 일자리와 복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탈산업화와 세계화 시대에 적하현상으로 사회복지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매우 드물어 이러한 믿음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둘째, 복지 관련 구체적인 공약을 보면 기존 제도에 이어 점진적 발전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회복지 공약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에 조금씩 더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촘촘하고 두툼한 복지’에는 6가지 공약이 등장한다. 첫째는 근로장려세제의 확대, 둘째가 생계급여의 확대, 셋째는 긴급복지지원제도의 확대, 넷째는 복지시설의 스마트화, 다섯째는 종사자 권익 강화, 마지막이 기부문화 확산이다. 모두 중요한 내용들이지만, 새로운 공약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또한, 이러한 공약을 통해서 어떻게 앞서 논의한 주요한 사회적 위험 혹은 사회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나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셋째, 제시한 기타 ‘좋은’ 사회복지 공약이 효과성이 있기 위해서는 향후 비전과 함께 ‘디테일’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평생학습 기회보장, 자영업자/플랫폼 노동자 대상 직업능력개발 기회 확대’는 소위 ‘좋은’ 공약이다. 이미 과거 정부도 주장하고 논의했던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공약이 왜 지금까지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한지, 어떻게 이번 정부는 더 효과적으로 이것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플랫폼 노동자가 직업능력개발을 받을 때 생계는 어떻게 보장할지, 생계보장 없이 직업능력개발이 가능할지, 어느 정도 학습을 해야 노동시장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청년주택에 대한 공약도 마찬가지다. 이번 정부의 청년주택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생애주기에 따라 청년이 희망을 가지고 주거이동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구체화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하지 못한 연금개혁이 주요 공약으로 들어간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연금개혁과 같은 난제는 의지만 가지고 되기는 어렵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충분한 숙의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자신이 설정한 ‘합리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려 해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연금개혁 기회를 통해서 노후소득과 재정안정성에 대한 장기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새 정부가 국회와 함께 사회적 합의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주도로 개혁 논의가 이루어지면, 이후 국회에서 법률안 통과가 난망해질 수도 있다. 지난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과정과 같이 국회와 정부 그리고 사회단체가 함께 움직여서 가능한 거부점(veto points)을 최소화하고, 합의적 구조 하에 개혁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 개혁을 넘어 기타 공적연금의 개혁까지 함께 큰 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노인빈곤 문제를 위해서 기초연금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민간부문의 소득보장 강화를 위해서 퇴직연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더 크게는 국민이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과 같은 특수직역 연금과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특수직역 연금까지 함께 논의해 장기간 지속가능한 개혁 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정부마다 매번 소모적인 사회적 논의가 계속될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 정부에서 논의를 시작했지만, 충분히 진행시키지 못한 지속가능한 공공 보건의료 및 장기요양서비스 체계에 대한 논의도 사회적 숙의를 통해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빠른 고령화와 도농 간 서비스 격차 등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넓은 보장성과 공공성 그리고 재정 지속가능성이 담보된 방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가장 먼저 시행할 복지관련 정책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손실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년 간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가 경제적 타격이 심했기 때문에 보상을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단순히 ‘두터운’ 지원을 넘어 명확한 규정과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추후에 유사한 어려움이 있을 때 그 때 다시 새로운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닌 이번에 수립한 보상 원칙을 참고하여 운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며, 대상자들이 합리적으로 결정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사안에 매우 체계적으로 대응했던 영국과 같은 해외 사례를 참고하면서 일시적이고 임의적인 대응이 아닌 체계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특별지원을 넘어 자영업에 대한 상시적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영세자영업의 취약성은 2020년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2019년 전부터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최영준, 이승준, 2016). 향후 발생할 사회문제에 대해서 일상적 사회보장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도 함께 수립되어야 한다.

 

3. 소결

우리 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여전히 소외된 영역이다. 이제까지의 사회복지 성과가 이러한 ‘소외’를 보여준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과정 동안 이러한 사회복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면서 지금까지와 다른 복지국가를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경로의존적인 복지정책이 더욱 눈에 띄기 때문이며, 경제와 재정건전성이 사회복지 성과보다 더욱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위 및 본격적인 새 정부 구성과 함께 이러한 기조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얼마나 복지이슈 해결에 의지를 가질 것이며, 이러한 복지가 가능하게 하는 예산 확보 의지가 얼마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정부 출범 이후 국정 전반의 체계와 비전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 전체 체계 속에서 복지가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는지 등에 따라 복지성과 역시 결정될 것이다. 다소 우려되는 것은 복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미화원’ 정도로 생각하고, 적극적 ‘사회적 투자’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한정된 예산으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기존 제도들 역시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공약은 공허한 약속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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