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연금개혁과 공사연금 역할 분담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민연금 개혁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제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모든 후보가 연금개혁에 구두로 합의함으로써 국민연금 개혁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내년에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15년 전인 2007년, 어렵게 국민연금 개혁을 이끌어낸 후 산발적으로 연금개혁이 논의되었지만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인 2018년 연금개혁의 기회가 있었던 터라 그만큼 아쉬움도 컸다. 이제 다시 연금개혁의 시간이 다가오고, 그 열기도 뜨거운 만큼 새 정부 집권 초기에 합의를 이끌어 내리라 기대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집단에서 연금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연금개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다만 작은 이해에 집착해 연금개혁이라는 큰 방향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금개혁 성공 위해 다양한 노후자산 활용해야

지난 2월 3일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후보들은 모두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 갑론을박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지만 말이다. 노인빈곤율을 생각하면 공적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강화해야 하지만 연금재정을 생각하면 후세대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져 제도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공적연금제도가 갖는 딜레마다. 이런 이유로 2003년 제1차 재정계산 이후 4년간의 논쟁 끝에 2007년 4월에 이르러서야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전제로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할 수 있었다. 똑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 수 있고, 아니면 다음 5년, 그 다음 5년 후에야 벌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노후자산에는 공적연금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적연금을 기본으로 퇴직연금, 개인연금, 주택·농지연금을 비롯해 노후 일자리에서 벌어들이는 소득, 그리고 최종 자산까지 다양한 노후자산이 존재한다. 물론 노후자산에서 공적연금의 중요성이 가장 크지만 나머지 자산도 노후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음에도 중요하게 고려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편, 노인빈곤율과 관련해서는 경상소득 기준으로 빈곤율을 산출하므로 현 노인계층에서 상당한 자산가도 빈곤계층에 포함될 수 있다. 노인빈곤율 산출의 한계로 늘 지적되는 내용이지만 주택·농지연금의 활성화를 통해 현 노인층의 빈곤율, 정확히는 유동성을 완화시킬 수 있다. 현 노인층의 빈곤율은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몫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현재 노인과 미래 노인의 상생을 위해

연금개혁 이슈는 크게 재정안정화와 노후소득보장으로 구분된다. 연금의 주된 목적이 노후소득보장에 있지만 개혁 이슈에서만큼은 재정안정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두 이슈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이유는 미래 세대의 부담과 현 노인층의 빈곤문제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래 세대의 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재정안정화가 필요하고, 현재 노인들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서는 연금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다.

다만 미래 세대의 노인빈곤율은 현 노인층의 빈곤율이 완화되면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므로 실질적인 이슈는 아니다. 따라서 노후소득 보장 문제는 현 노인층의 문제, 즉 현재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에 반해 저부담·고급여라는 구조적 문제로 발생되는 재정문제는 후세대 부담의 문제, 즉 미래의 문제다. 그래서 재정안정화 목적의 연금개혁이 계속 후순위로 밀려왔는지도 모르겠다.

2007년 연금개혁이 재정안정화 중심의 개혁이었다고 회자되지만 과연 그런지는 의문이다. 2007년 연금개혁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20년에 걸쳐 60%에서 40%로 줄이기로 하면서 2022년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3%로 낮아졌다. 다만 기초연금 소득대체율 12%까지 합산하면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55% 수준으로 이는 연금재원을 국민연금기금에서 일반재원으로 전환한 것에 불과하다. 노인빈곤율은 당장의 문제이니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재정안정화를 단순히 미래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심각성이 너무 크다. 어쩌면 연금재정 문제의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다가 통제 불능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 즉 ‘회색 코뿔소’가 아닌가 염려된다.

 

선진국 연금개혁에서 배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혁해 나가야 하나? 다행히도 아직 참고할 만한 연금개혁의 선배 국가들이 있다. 고령화율 7~14%인 고령화사회에서 OECD 주요 국가들은 공적연금 중심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해왔다. 그 방식은 공적연금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기초연금 도입, 연금급여 확대 등 노후소득보장 중심의 복지개혁이었다. 물론 그만큼 보험료를 함께 인상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세계경제 성장기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연금 팽창기였다. 그런데 고령화율 14~20%인 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복지선진국들은 세계경기 침체와 급격한 고령화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후했던 공적연금 급여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노후소득보장에 좀 더 초점을 두게 됐다. 반면 재정중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사적연금의 활성화를 통해 노후소득을 제고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아울러 저성장과 고령화 등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에 따른 연금재정문제를 시스템적으로 해소하려는 자동조절장치를 20여개 국가가 도입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또한 자동조절장치 제도가 정치적 이해관계로 연금개혁이 정상적으로 추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선진국의 연금개혁과정에서 강제 또는 준강제, 자동가입 형태의 사적연금을 도입해 공적연금과 함께 노후소득보장 수준을 제고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강제성을 지닌 사적연금의 도입으로 사적연금 가입률이 생산가능인구의 70.2%에 다다른다는 점에서 17%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낮은 사적연금 가입률 제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공적·사적 연금의 조화를 통해 OECD국가의 노인빈곤율은 우리나라의 43.4%에 비해 훨씬 낮은 15.3%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나라 고령화율은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에서 선진국들이 고령화 단계별로 취한 연금개혁의 장점을 순차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고령화 속도를 고려한 한국형 연금개혁을 추진해내야 하는 상황이다.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역할분담과 개혁

1998년, 2007년 두 차례의 국민연금 개혁은 급여액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재정안정과 노후소득보장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은 보험료율 상향에 있다. 과거 연금개혁 사례를 고려하면, 이번에는 보험료율 상향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되며,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역할 분담과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먼저 공적연금과 관련해 기초연금은 2007년 국민연금 개혁과정에서 도입된 제도라는 점에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동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기초연금 급여상향은 국민연금 균등부분의 조정을 통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경제적 변화로 재정문제가 악화될 수 있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자동조절장치의 도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공적연금 간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제도 간 유사성을 높이되 장기적으로 공적연금을 통합하는 것도 중요한 어젠다이다.

사적연금은 노후자산을 가급적 많이 축적할 수 있도록 가입유지단계에서 중도인출, 해지할 수 없게 해야 한다. 특히 이직 시 퇴직연금을 해지할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현재 퇴직금 제도는 퇴직연금 제도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연금 수령 시 일시금 수령을 제한하고, 연금형태로 수령하도록 가칭 ‘자동연금수급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지난 연금개혁 이후 15년이라는 공백이 이번 연금개혁을 위한 숙성의 기간이었다고 믿고 싶다. 무엇보다 정치적 셈법으로 인해 귀중한 미래가 불안해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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