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사회안전망, 수요자 중심으로의 혁신

최병호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원장
최병호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원장

2022년 대선에서 초박빙의 접전 끝에 보수진영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이번 대선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복지 이슈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또한 보수와 진보의 복지공약이 크게 차별화되지 않았고, 민주당이 제안한 기본소득을 비롯한 기본복지 시리즈도 크게 각광을 받지 못했다. 돌봄 중심의 사회서비스 강화, 복지사각지대 해소와 복지수준 확대와 같은 기본방향에 대해서도 인식을 공유했다. 다만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로 다소 차별화되었을 뿐이다. 저출산과 연금개혁과 같은 굵직한 이슈에 대한 문제 인식도 유사했다. 본 글을 통해 오는 5월 10일 출범을 앞둔 새 정부에 사회안전망 발전을 위한 과제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현재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진단

지난해 중앙정부의 복지예산(보건·복지·고용)은 200조원으로 총예산 556조원의 36%를 차지한다. 현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복지예산은 123조원으로 총예산 386조원의 31.8% 규모였다. 5년간 복지예산은 1.6배 증가했고, 연평균 증가율은 10.2%였다. 2021년 복지예산 200조원 중 공공일자리 예산이 30조원을 차지하며, 공공일자리 100만개에 투입됐다. 대부분이 보건복지분야 일자리였는데 이런 일자리를 통해서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복지 혜택을 체감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복지지출 규모는 OECD 38개 회원국 중 35위 수준이며,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12.2%로 OECD 국가 평균치인 20%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낮은 복지지출 탓인지 우리나라의 복지 성적표는 보잘 것 없다. 2021년 경제규모가 세계 10위이고, 경제수준(1인당GDP)은 OECD 회원국 중 22위임에도 불구하고 UN의 세계행복지수는 OECD 37개국 중 35위에 불과하다.

각종 사회안전망 지표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하위그룹에 머물고 있다. 2020년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 0.339는 OECD 36개 회원국 중 26위로 소득분배 수준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고, 상대적 빈곤율은 16.3%로 4위, 노인빈곤율은 40.4%로 1위, 노인자살률은 OECD 평균의 2.6배로 1위다. 2019년 의료보장률(총경상의료비 중 공공재원 비중)은 60.8%로 OECD 평균치 74.0%에 비해 낮고, 가계 직접 부담 의료비는 31.4%로 OECD 국가 중 여섯 번째로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 복지지출의 증가 속도는 지난 30년간 압도적으로 1위였다. 2018년 기준 국민부담률은 26.7%로 우리나라는 여전히 저부담-저복지 국가에 머물고 있지만 현재의 복지지출 증가속도를 유지한다면, 2030년대 후반에는 OECD국가 평균치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불과 10년 남짓 지나면 복지수준이 선진국들의 평균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동안 각 정권은 유권자들의 각종 요구들을 수용하기 위해 허겁지겁 복지제도를 만들고, 대상자와 급여수준을 확충해왔다. 선거 때마다 선심성 복지공약이 남발됐고, 각 부처나 부처 내 실·국, 과들이 땜질식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서비스 중복 등 비효율이 커져가는 가운데 군데군데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누더기 복지가 되고 있다. 복지 관련 수많은 전문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음에도 이러한 문제에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중앙과 지자체, 민간 부문별로 분산된 복지사업과 개정 실태 정보는 통합 관리되지 않고 있으며, 갈수록 중앙정부 중심의 국가책임복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국민의힘 복지공약과 평가

국민의힘 대선 공약에서 사회안전망의 위상은 어떠한가. 성장경제 중심이 아닌 행복경제시대를 지향하고,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속에서 촘촘하고 두툼한 복지를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과학적인 감염병 대응체계 정비, 자영자와 소상공인의 손실보상에 우선을 두고 있다. 성장-복지의 선순환은 보수진영의 전통적인 복지관인데 공약의 내용을 보면, 혁신 성장을 통한 성장의 과실이 복지 재원이 되고, 성장과 노동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곧 복지이며, 현금 복지보다는 서비스 복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성장을 지원한다는 논리에 입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돌봄 일자리는 양질의 일자리가 되기 어렵고, 저성장이 장기화될 때 복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복지재정을 얼마나 투자해 성장에 기여할 것인지, 복지재정의 자동안정장치는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구상은 발견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복지공약의 첫 번째 특징은 영유아 및 아동, 노인, 장애인에 대한 돌봄 강화다. 그중에서 특히 출산 준비부터 산후조리·양육까지의 국가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에 대해서는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다. 건강검진, 치료비, 산후조리,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부부합산 3년), 월 100만원의 부모급여, 재택근무제와 선택근무시간제, 유아교육·보육 통합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돌봄 인력의 양적 확보와 질적 담보, 돌봄 복지의 대폭 확충에 따른 비용부담과 돌봄의 품질 확보가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둘째, 소득안전망 공약은 기존 제도를 유지하면서 대상자와 급여수준을 다소 확대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기초생계급여나 근로장려세제, 기초연금 확충, 상병수당 도입을 추진한다. 그러나 기존의 제도들이 안고 있는 소득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정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셋째, 의료안전망 공약은 재난적 의료비 지원에 중점을 두고, 민간의료기관에게 공공보건 역할을 맡기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강화, 주치의가 중심이 되는 의료·돌봄 케어를 제시했다. 이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상당한 괴리가 있으며, 대다수 공공의료 옹호세력과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민간의료와 의사가 주도하는 공공보건의료체계의 작동 기전도 분명하지 않다.

넷째, 고용안전망은 노동 유연화와 직업능력의 개발, 노동전환 지원, 세대상생임금체계를 제시했다. 시간선택형 정규직, 선택적 근로시간제, 근로시간저축제, 자영자·플랫폼 노동자의 직업능력개발과 노동전환, 장애인 직업훈련이 여기에 해당한다. 실업급여나 실업부조의 확충, 전 국민고용보험제도와 같은 기존 정책들 대신 제시된 일련의 정책들은 실천가능성과 그 효과를 따져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년을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 50만호를 공급하고, 주거급여 대상자와 수준을 확대하는 주거보장을 제시했다.

 

새 정부의 사회안전망 혁신을 위한 과제

보수정부의 복지정책은 자유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창달할 수 있도록 하는 밑바탕에 사회안전망이 굳건하게 받쳐준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다. 진보정부가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거대한 담론으로 접근한다면, 보수정부는 ‘삶의 질’의 상식적 수준에 현실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실용적 접근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의 우위를 점하는 경쟁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갖고 있어야 선진국 그룹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사회안전망의 취약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면서 혁신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4차 산업혁명 도래에 따른 뉴노멀 시대 사회안전망의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 이것이 미래에 성공적 선진 복지국가가 되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향후 5년의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운영을 위한 과제를 몇 가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면밀히 점검하고, 그동안 방만하게 늘어났던 프로그램을 재정비해야 한다. 각종 제도의 수급대상자 정의와 대상자를 판별하는 기준이 문턱이 되어 억울하게 소외되지 않도록 공정한 비례의 원칙에 입각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 및 지자체가 필요에 의해 늘려왔던 다양한 보건 및 사회서비스 부문의 조직과 인력의 효율성을 재검토하여 전체적인 체계성과 경제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둘째, 복지수준의 글로벌 표준 지표들, 즉 상대빈곤율이나 재분배지수, 노인 빈곤율 및 자살률, 의료빈곤율 등 주요 지표들의 적정 목표를 설정하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재원규모 산정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천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수요자 중심의 복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수요자의 물리적·심리적인 접근과 정보 접근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공급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부처별·부서별로 중첩되지 않는 단일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복지재원의 조달 역시 국세청으로 일원화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사회서비스의 통합적인 제공과 관리는 장기요양보험을 담당하는 건강보험공단이 중심이 되는게 좋겠다. 아울러 건보공단과 사회서비스공단을 별도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만하다.

넷째, 사회안전망의 소프트웨어인 복지수급자의 자격과 급여수준, 급여제공 방식에 대해서는 모범적인 선진제도와 면밀히 비교해야 한다. 이때 복지제도별로 접근하기 보다는 수요자인 개인 및 가구별로 접근해야 한다.

다섯째, 뉴노멀에 대비하는 사회안전망의 새 판을 짜야 한다. 뉴노멀 시대의 사회안전망은 역피라미드형 인구구조, 세계시장의 글로벌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복지의 국가책임에서 중앙과 지방, 정부와 민간(지역공동체, 기업, 사회적경제조직)의 연대책임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사회안전망은 단순히 물질적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 추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즉, 생계, 의료, 주거, 교육에 대한 보장을 넘어 사회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하고, 자존감을 부여하며, 앞날에 대한 희망과 삶의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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