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의 푸드뱅크 사업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에 따른 결식, 빈곤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한 이래로, 2021년 7월 현재 누적 기부금액은 1,075억 원에 이른다. 푸드뱅크 사업은 2020년 12월 기준 전국 푸드뱅크 1개소, 광역 푸드뱅크 17개소, 기초 푸드뱅크 310개소, 기초 푸드마켓 130개소의 총 458개소를 보유한 한국의 대표적인 민관협력 기반 식·물품 나눔 전달체계로 평가할 수 있다(전국 푸드뱅크 홈페이지, 2021). 최근 한국 푸드뱅크 사업의 성장은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몽골 등 아시아 지역 국가를 대상으로 한국형 푸드뱅크 모델 전수사업으로 국외까지 보급 중이다(권진, 이상우, 2020). 이는 약 23년간 한국에서 수행된 푸드뱅크 사업경험이 외국의 결식, 빈곤 문제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질적 성과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현재 푸드뱅크 사업은 코로나19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3월부터 전국의 푸드뱅크 사업장이 폐쇄됨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초 푸드뱅크·마켓과, 서비스 이용자 모두 큰 혼란을 경험했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난 현시점에도 여전히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는 감소하지 않고 유지되거나 심화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푸드뱅크 사업을 위탁운영 하는 전국 푸드뱅크에서는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 시범사업을 2021년 7월부터 시작하였다.

제천시사회복지협의회의 첫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본 시범사업은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간의 대면 접촉을 중단 또는 최소화한 새로운 접근 방법이다.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 사업의 시도는 단순히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 간 접촉을 줄여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언택트 서비스(Untact Service)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ICT 관련 첨단 기술 및 자원이 사회복지 영역과 융·복합해 공존할 수 있는 '교집합'의 영역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더 광범위한 차원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6년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에 의해 처음 등장한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이 비즈니스 중심의 산업 영역뿐만 아니라 인간을 대상으로 한 휴먼서비스 영역, 즉 푸드뱅크 사업에도 접목된 것이다.

실제 최근 몇 년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첨단 과학기술 등의 자원을 활용한 사례 및 관련 연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인구의 급격한 고령화에 따라 증대되는 노인문제 및 장애인의 사회참여 욕구를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충족시키기 위한 접근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한 1인 가구 노인 돌봄서비스, 웨어러블로봇·전동리프트·전동침대 등의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노인·장애인 대상 돌봄보조서비스,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율주행 기반 무인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앱티브(APTIVE) 사례, 청각장애인이 운행하는 택시서비스인 ‘고요한 택시’ 사례 등이다. 또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된 지역화폐를 활용하여 지역 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사회복지와 과학기술의 융·복합 사례에 대한 연구(이상우, 2019)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이 기존의 전통적인 사회복지 접근 방식에 제한되어 있을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지난 20년 이상 사업을 확장하고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이른 푸드뱅크 사업 역시 4차 산업혁명이 시대에 맞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형태의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덧붙여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감염병의 유행상황은, 사회복지 영역이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더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 영향을 미친 일종의 '계기로서의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 사업과 같은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의 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일반적 용어로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을 들 수 있다. 사회혁신이란 사회적 욕구 및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정부·시장·가족·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사회구성원의 행동능력이 강화되고, 기존의 방식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아이디어 또는 방법을 적용하여 지속적으로 수행되는 모든 활동 및 서비스로 정의내릴 수 있다(이상우, 2018: 63). 오늘날 사회혁신 문제해결이 주목받는 이유는 문제해결 과정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특성, 즉 '다양한 영역·주체 간 교차성(Cross-sectoral)', '이전에 없던 새로움(Novelty)', '개방·협력·실험',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형성', '더 나은 효과' 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회혁신의 렌즈로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 사업의 특성을 파악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ICT 등 첨단 과학기술의 영역과 사회복지 영역이 상호 교차되는 지점이 발생한다. 둘째, 이러한 접근은 이전의 푸드뱅크 나눔 전달체계에서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셋째,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 사업은 기존의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사이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존 푸드뱅크 사업의 서비스 이용자가 인지할 수 있는 '사회적 낙인감(Stigma)'의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는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고정적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적 불편함'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시범사업을 운영 중인 푸드뱅크의 인터뷰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복지저널, 2021). 이 밖에도 이용시간의 제약을 파괴하여 원하는 시간대에 언제든 푸드뱅크를 이용할 수 있는 더 나은 효과 등도 검토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 서비스 사례가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전국 규모의 푸드뱅크 사업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이미 2019년 한국의 무인 푸드뱅크 서비스와 유사한 방식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부터 이미 새로운 푸드뱅크 서비스 개발의 시대적 요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Northern Illinois Food Bank 대표인 Julie Yurko는 기부 등 나눔 활동에 의한 푸드뱅크 식품의 전달체계 역시 이용자 중심의 온라인 서비스로 전환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2019년 6월 시범사업을 바탕으로 ‘My Pantry Express(MPX)’라는 온라인 푸드뱅크 서비스를 시작했다. MPX는 푸드뱅크 이용자가 자신의 집에서 필요한 식품을 쇼핑하면, 지역 인근의 장소에서 3~5분 이내에 식품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 익명 서비스이다.

특히 이용자의 익명성 보장을 위해 웹사이트 등록 시 이름, 성의 초성, 전화번호 및 이메일 주소 등 최소한의 정보만 입력하도록 하였다. 푸드뱅크 사업에서 MPX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푸드뱅크 이용자의 수치심과 낙인감 완화, 이용자의 식품 이용 접근성 및 유연성 보장 등이다. 이러한 가치는 한국의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 서비스가 지향하는 가치와 같다. 또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현재 MPX는 미국 Feeding America를 통해 Second Harvest of Southern Wisconsin, The Dayton Food Bank, Houston Food Bank, Mid-Ohio Food Bank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Food Bank News, 2020).

현재 한국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사회복지 서비스가 개발·보급되고 있다. 변화를 피할 수 없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 능동적으로 변화를 선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면에서 전국푸드뱅크의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 사업은 새로운 가능성을 심는 '씨앗(Seed) 사업'이 될 수 있다. 다만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롭게 개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오류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검토가 중요하다. 미국 등 국외 사례의 성공 및 실패 요인 탐색 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푸드뱅크 사업은 국토 규모 등 지리적 특성의 영향에 따라 전달체계 구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푸드뱅크 특수성을 고려한 온라인 푸드뱅크 사업이 수행될 필요가 있다. 또 미국의 사례처럼 해당 사업의 특성을 이용자 등 주요 이해관계자가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친숙한 어감의 사업명(My Pantry Express)을 개발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현재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라는 사업명은 직접적이고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 푸드뱅크 이용자가 느낄 수 있는 낙인감 및 이질감을 완화하면서 온라인 푸드뱅크의 효율적인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사업명칭의 개발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온라인 이용이 어려운 고령자 및 스마트폰 등 이용 사각지대에 대한 고려, 비대면 서비스 제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간성 및 관계성 상실 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접근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권진·이상우(2020). 한국 푸드뱅크 모델의 전파 가능성에 대한 모색 : 몽골 푸드뱅크 사례를 중심으로. 생명연구, 55, 149-176.

복지저널(2021).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비대면 무인 푸드뱅크 운영한다. 복지저널 155, 7월호, 34-35.

이상우(2019). 노원(NW) 사례로 본 사회복지와 과학기술에 관한 연구. 서울도시연구, 20(3), 109-127.

이상우(2018). 사회혁신 주체로서 사회복지조직의 가능성 모색 : 사례분석을 통한 시사점 도출. 한국사회복지행정학, 20(4), 57-86.

전국푸드뱅크 홈페이지(2021). https://www.foodbank1377.org/ 자료검색일: 2021년 7월 20일.

Food Bank News, (2020).

https://foodbanknews.org/illinois-food-bank-invents-online-pantry-model/ 자료검색일: 2021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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