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신기술의 발전과 보건복지 분야의 변화

팔에 붙이는 것만으로도 실시간 혈당이 측정되는 패치가 개발되고, 조그만 껌만 한 크기의 소형 심전도는 이미 식약청의 의료기기 인증을 통과해 한 달에 두 번 심전도 측정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시작했다. 약 복용 시간을 자주 잊으시는 노인을 위해 핸드폰의 알람과 연동된 스마트 약통이 출시되었고, 시각 장애인을 위해 약통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비추면 약의 특성과 복용 방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개발되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 점점 기억력이 흐려지고, 치매가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AI 스피커를 내장한 인형이 손자를 대신하여 말동무 해 주는 기기가 치매 치료 효과를 인정받아 건강보험 수가를 신청하고 있고, TV브라운관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 아바타가 노인들에게 운동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계도 전국 노인정에 보급을 앞두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에 장착할 수 있는 센서가 심박동, 지문, 온도, 습도, 자기장, 압력 측정을 넘어, 자이로스코프 센서나 근접센서, 조도 센서, 지자기 센서로 확대되면서, 스마트폰 자체가 거의 휴대용 의료기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손목과 피부, 헤드폰과 옷 등 인간이 착용하는 온갖 의류와 소품에 웨어러블 기기를 부착하게 되면서 그 편리성은 끝 모르게 개선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는 새로운 전자기기는 우리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할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건의료와 복지 분야와 접목하면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블록체인이나 AI 등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ICT 신기술을 활용한 장비들은 그동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것을 가능하게 하면서, 보건과 복지 영역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기기가 개발·보급되고 있지만, 이들을 활용하는 원격의료는 시민사회단체의 우려와 의사들의 반발로 도입이 지체되고 있었다. 이에 더해, 보건의료 부문에서 활용되는 기술과 장비가 아동복지, 청소년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등 다양한 복지 영역에서는 도입이 상대적으로 지체되는 등 분야별 편차도 매우 크다. 노인을 위한 보건소의 지역사회 건강관리나 근로자 건강관리를 위한 산업보건 분야가 특히 이들 기술의 적용이 가장 필요하고 효과도 크다. 하지만 가장 지체되고 있는 분야가 바로 보건과 복지 분야에서 산출되는 정보를 가공하고 활용하는 영역이다.

연간 약 1000억 원의 재정이 투입되고 8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사회보장정보원에는 건강보험공단이나 군민연금관리공단 등 보건복지 관련 기관뿐 아니라, 국세청의 종합소득세 자료, 행정안전부의 재산세와 취득세 자료, 국토부의 차량정보와 건축물 정보, 병무청의 병역 관련 자료와 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이나 대법원의 가족관계 자료 등 79개 기관 1200종에 이르는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 사회보장정보원이 보유하고 있는 기관들의 정보를 간단하게 연계하거나 통합하는 것만으로도 부정 수급, 낭비 및 누수 적발을 통해 연간 2조4천억 원에 이르는 비용 절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자료가 국민을 위한 복지정책에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를 물어본다면 아직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코로나 19 대유행이 가져온 위기와 새로운 기회

인공지능(AI) 기술이나, 나노기술, 3D 인쇄 기술, 사물인터넷 기술, 로봇공학 기술, 생명공학 기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과 다양한 기구와 장비의 발전은 전혀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율차량 기술과 스마트카의 등장으로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일정 정도의 의료기관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동차도 곧 출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차에 타고 있으면 혈압, 혈당, 맥박, 산소 포화도 등을 측정하여 자동으로 진단 할뿐 아니라. 자율주행 차량에 자동 안마기와 뇌파 바이오피드백 기계 그리고 고압 산소 공급 기능 등을 더해서 건강관리와 어느 정도의 치료기능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빠르게 도입되고 있던 이들 ICT 기술이, 지난 해 부터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코로나 19로 음식이나 여러 가지 생활용품의 비대면 주문도 늘어났지만 한시적 비대면 진료와 전자 처방의 허용으로 '닥터 나우'와 같은 비대면 처방 앱(App)을 통한 원격진료로 코로나 이후 226만 건이나 전자 처방이 실시되었다. 지금까지 시민사회단체들은 의료정보 등 중요한 개인정보가 공개될 경우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반대를 표명해 왔다. 또한 의사단체들은 전자 처방이나 원격진료로 인한 오진 위험성이나 책임 문제 때문에 반대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실시된 200만 건이 넘는 진료기록을 분석하여 문제점을 보완한다면, 결정적인 확산 계기가 될 수 있다. 대상 질환이나 대상 연령 등 문제가 없었던 인구 집단을 상대로 상시화 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어렵게 실시된 전자 처방이나 원격 진료 결과를 잘 분석하고 평가하여, 코로나 19 이후에도 긍정적인 측면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제한된 분야에서 원격 진료와 전자 처방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스마트 보건 및 복지 기술을 적용해 본 결과 대한심장학회, 대한부정맥학회 등 8개 학회는 공동으로 온라인방식 심혈관통합학술대회를 개최하여, 모바일 헬스케어를 통한 신체 활동 및 체중 관리 가능성을 확인한 논문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원격의료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존재하는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되, 발전된 기술이나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항상 첨단 기술과 학문을 가장 먼저 도입해 온 의학계 입장에서 본다면 후퇴고, 환자 입장에서는 편의성이 줄어드는 것이므로 적절한 시행 방안을 찾아가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건강관리 기술을 통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과 복부 비만 등 고위험군이 건강군으로 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간단하게 피부에 부착하는 것만으로도 24시간 실시간 혈당 체크를 가능하게 해주는 앱과 패치는 주치의 제도와 결합할 경우 당뇨병 환자의 혈당 조절 뿐 아니라 영양 지도와 운동 처방 등과 연동하여 수준 높은 환자 관리가 가능해지므로 이들 기기와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도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비대면 코로나 19 진단을 위한 PCR 검사 확대, 코로나 백신 사전 예약 및 통보 시스템 운영, 확진자 동선 공개 및 역학 조사 활용 등으로 보건의료 부문의 ICT 활용도 급증하면서, 이들 ICT 기기의 사용과 프로그램의 활용이 급속하게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들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과 기기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다시 코로나 19 이전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마다 최소 2000여 개에서 많게는 5000개가 넘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 사업 당 대상자가 10명이 미달하는 사업도 흔하다. 이렇다 보니,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조차도 자신이 관리해야 할 대상자가 받을 수 있는 다양한 현금급여나 사회복지서비스를 잘 찾아서 챙겨주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익숙해진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수요자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수요자 조건에 맞는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자동으로 제시해주고, 그중에서 수요자가 골라서 받게 하는 등 대국민 복지서비스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코로나 확진자 동선을 문자로 받고, 공공마스크를 살 수 있는 날짜도 통보 받고, 백신 예약과 전국민재난지원금을 스마트폰으로 신청하는 것에 익숙해진 국민들이 그 경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한시라도 빨리 데이터마이닝 시스템을 활용하여 수요자 입장에서 받을 수 있는 복지급여나 서비스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서 국가와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복지 프로그램의 체감 만족도를 높이고, 서비스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코로나19라는 극한 상황뿐 아니라, 최근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 3법 등 관련법과 제도의 정비도 기여를 했다. 마이데이터 법제화로 지난 10여 년 동안 보건복지부가 추진해 왔지만, 계속 좌절되어 온 '건강관리 서비스' 제도도 우회로를 통해 합법화되었다. 마이데이터법에 의해 국민 개인이 자신의 건강 자료 및 금융 자료 등을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보험회사가 맞춤형 보험을 찾아주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금융위원회를 통해 보험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보험회사가 헬스케어 전문회사나 마이데이터 관련 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기도 했다. 보험회사나 보험회사가 계약한 건강관리서비스 회사가 보험 상품 가입자 이외의 일반 대중을 상대로 혈압이나 혈당 관리, 당뇨병 예방, 식단관리 같은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융위원회의 관련 시행령 개정에 맞추어 보건복지부도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개편하여 의료업무 이외의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만들었다. 이제 보험사의 부수 업무에 건강정보 관리, 운동지원 플랫폼 운영 등이 가능해졌다. 물론 아직까지 염려되는 점도 많다. 개인정보를 활용하여 저렴한 보험 상품을 찾아준다거나, 1억5000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회원권을 구매하지 않아도 개인의 건강관리를 해 준다면, 국민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할 수 있다. 보건과 복지 등 우선 공공 부문에서 ICT 도입 실증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보건소나 보건진료소 등 공공부문에서 먼저 시행해 보고, 주치의 제도 등을 통해 질 관리를 하면서 안정적으로 건강관리 사업을 확산시키는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ICT를 활용한 e-welfare 도입 방안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 세계 최고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미 840만 명을 넘는 노인 인구는 2025년 노인 인구 1000만 명을 돌파하여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심각한 고령화는 당연히 의료비 급증과 웰빙에 대한 수요 증가를 수반한다. 이미 본인 부담금 포함하여 연간 105조 원이 넘는 의료비가 지출되고 있고, 건강보험 급여비만 87조 원을 넘는 등 사회적 부담이 되고 있다. 내년 3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고령화 대책은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고령화가 되면서 복지서비스와 보건 서비스의 통합 필요성도 증가하고, 산업 보건 및 안전, 그리고 산림복지, 스포츠복지 등의 영역에서 ICT 활용도 급속하게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데이터 축적으로 이들 기술의 활용 가능성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변화를 단순히 바라만 보고 수동적으로 끌려갈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추동하여 능동적으로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국민 동의를 얻어, 개인별 맞춤형 복지 서비스 안내 및 복지 선택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의료정보와의 연계는 순차적으로 하더라도 복지정보와 행정 정보의 연계는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다. 이들 정보 간 연계가 전 국민재난지원금 지급과 코로나 방역에 활용되면서 복지 수요자들은 이미 이들 기술의 편의성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수령 가능한 급여와 혜택 등을 수급자 맞춤형 정보 제공을 하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다. 복지정보를 제한적으로 개방하더라도, 지역사회복지협의회 등을 통해 활용 가능한 자원과 인력, 시설을 연계하고 통합하여 활용하는 시범사업 실시도 가능할 것이다.

보건과 복지 분야에서는 이미 해외의 다양한 ICT 도입 성공사례들이 있다. 세계 최초로 사회복지와 의료복지 서비스를 통합한 아포티(Apotti) 시스템과, 국민의료와 사회보장 데이터 2차 활용법 통과(2019년)로 익명화한 국민의 유전자 정보를 핀젠(FinnGen)을 통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머크 등 12개 기업이 핀란드 정부와 컨소시엄을 통해 총예산의 2/3를 투자하여 신약을 개발하는데 활용한 핀란드 사례 등 외국의 경험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도입되는 새로운 기술이나 프로그램이 현장에서 쉽게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기존의 사회복지와 보건의료 전달체계 내에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차세대 e-welfare의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해 줄 현장의 거점기관이 필요하다. 이들 거점기관이 사회보장을 위한 통합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의 다양한 보건의료 기관과 복지기관들을 연계하고, 전문가와 자원봉사자들을 연결하며. 이들 기관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실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용자들의 수요와 욕구에 기반 한 맞춤형 프로그램과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적극적인 촉진자(facilitator)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보건과 복지 영역, 민간과 공공,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계하고, 정보와 데이터를 공유하는 역할을 맡을 (가칭)스마트복지센터와 같은 기관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차세대 e-welfare 도입이 가속화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장의 지지를 받으며 자리 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전국 3800여 개 주민복지센터와 수 만 개의 민간 복지기관들을 연계하고, 500개가 넘게 설치된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도 스마트복지센터를 통해 필요한 정보가 공유되고, 지역의 다양한 자원이 묶어지는 컨트롤타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사장되지 않고, 적절하게 반영되면서 국민적 합의와 동의 속에서 이러한 변화가 진행되도록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필요하다면 세밀한 계획을 세워서 단계별로 접근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우선 이들 사업을 촉진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뿐 아니라, 광역과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의 지원단이나 실증 사업단을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규제개혁 샌드박스를 활용한 지역별 시범 사업을 도입하거나, 주치의 제도 등 차기정부에서 시작될 보건 및 복지 프로그램과 연동하는 등의 다양한 시범사업 실시도 검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관련 법 개정과 지원 등 정책적인 정비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모든 논의를 마친 후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모임이나, 포럼, 그리고 각종 협의회 등을 구성하여 초기 단계부터 국회와 같이 사업과 제도 개혁을 진행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선거 기간 중이라는 시기적인 특수성을 활용하여 특별위원회나 추진단을 구성하는 등 정당과 연계한 ICT 도입을 통한 국민의 삶의 질 개선 사업 실시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개발되고 응용되는 보건과 복지 기술들은 우리나라의 코로나 방역 경험을 관련 분야의 모범이 되고 산업적으로 표준이 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급하고 수출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백신 보급, 치료제 지원 등을 ODA 및 국제기구를 통해 세계적으로 진출하고 확산하는 방안도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보건과 복지 분야에서도 이제 더 이상 ICT 신기술 도입을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고, 너무 널리 퍼져있다. 소극적인 검토가 아니라 이제는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어차피 겪게 될 변화이고 넘어야할 파도라면, 잘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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