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가정폭력처벌법)에 따르면 가정폭력이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1997년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어느덧 20년 이상 흘렀다. 관련 법 제정은 가정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공적 책임을 강조하는데 일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력 없는 사회는 요원(遙遠)하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잇달아 보도되고 있는 심각한 가정폭력 사례가 이 같은 현실을 뒷받침 하고 있다.

가정폭력이 공적쟁점으로 다루어지는 과정에서 두드러진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가정이라는 지극히 사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발생함으로써 노출되기 어렵고, 둘째, 복합적이며 지속적인 형태를 보인다(유숙영, 2007). 마지막으로, 가족관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신고 이후 조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가정폭력의 조기발견과 예방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전술한 특성으로 인해 장기간 폭력으로 고통 받아온 사례가 많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가정폭력 가운데 배우자 폭력은 여성피해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여성의 권리를 심각하게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안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 가정폭력 현황

국내 가정폭력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자료는 3년마다 실시하는 「가정폭력 실태조사」이다. 2019년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배우자에 의한 폭력 피해가 있었다고 응답한 경우, 신체적 상처 외에도 정서적 고통, 경제활동 지장 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 피해의 다양한 유형은 2020년 '한국여성의전화'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정폭력 초기상담 건(중복 응답)을 분석한 결과, 정서적 폭력(67.6%), 신체적 폭력(53.7%), 경제적 폭력(22.7%), 성적 폭력(20.6%) 등 여러 가지 유형이 복합적으로 발생하였다. 게다가 가정폭력 실태조사 상 배우자의 폭력행동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경우가 무려 45.6%에 달하였고, 85.7%는 당시 혹은 이후에 외부에 도움을 청한 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나, 피해자의 열악한 대처 현황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가정폭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강화와 지속으로 인하여 가정 내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일찍부터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논의해 왔는데, 가장 먼저 봉쇄 조치를 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사례를 참고해 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봉쇄 조치 이후 가정폭력 사례가 평균 25% 이상 증가했으며, 이동 제한으로 인해 피해 여성들의 취약성이 더욱 심화됐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국내 경찰청 자료를 살펴보면, 2020년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2만2046건으로, 2019년 24만564건에 비해 감소하였다. 단, 이 수치만으로는 가정폭력이 줄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낮은 신고율은 신고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음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최대 가정폭력 상담전화인 텔레포노 로사(Telefono Rosa)에 의하면 2020년 3월 2주간 신고전화 건수(496건)가 전년도 동일기간 건수(1104건)에 비해 50% 이상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여성 폭력위원회는 이 같은 현상이 오히려 파트너로 인한 가정 내 통제 및 공격의 위험성이 증가된 것임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한국여성의전화’를 통해 신고 된 사례를 보면, 신고건수가 2020년 1월 대비 3월 약 1.5배가량 증가하는 등 가정폭력이 결코 줄어든 것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국내 가정폭력 신고율이 낮은 이유 중의 하나는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조치 때문이다. 2021년 여성가족부의 「통계로 본 여성의 삶」에 의하면, 2011년 대비 2019년 가정폭력 검거 수는 7.3배 증가하였으나 기소율은 100명 중 10명 내외로 낮은 편이다. 2020년 경찰청 자료에서도 가정폭력으로 구속된 사례는 검거인원 대비 0.9% 정도로 낮게 나타났다. 이 같은 조치현황은 가정폭력 피해자로 하여금 신고의지를 낮추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한층 강력한 대응을 요하는 지점이다.

▲ 가정폭력상담소의 역할과 어려움

가정폭력 대응체계로는 긴급접수기관, 상담기관, 보호기관, 경찰, 의료기관, 법률기관 등 여러 전문기관이 있다. 그 가운데 가정폭력상담소는 가정폭력 피해 신고 및 상담,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가정생활 및 사회생활이 어렵거나 기타 긴급한 보호가 필요한 피해자에 대해 임시보호를 하거나 의료기관 또는 피해자 보호시설로의 인도 역할을 하는 전문기관이다(여성가족부, 2019). 가정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치료프로그램 운영, 가해자 교정 및 치료프로그램 운영, 부부 및 집단상담, 가정폭력전문상담원 양성교육, 관련 기관 연계업무 등을 주로 수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200개 이상의 상담소 가운데 국비지원 상담소는 2021년 1월 기준 128개소이다. 지원 서비스의 경우, 2019년 전체 피해자 지원 23만4688건 가운데 심리정서적 지원이 16만5567건을 차지하였으며 이는 전년 대비 19.6% 증가한 수치이다. 행위자 지원의 경우, 2019년 8만9898건으로 전년 대비 8764건 증가하였다(통계청, 2019).

이처럼 가정폭력상담소는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및 행위자에 대한 서비스를 담당하는 전문상담기관 역할을 하고 있으나,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저해하는 한계 또한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사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이다. 최선영(2021)에 따르면 종사자들은 학대폭력 대응 업무 외에도 행정업무 부담이 큰 편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요구되는 전문성을 충족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보수와 급여 인상 체계의 부재 등은 근무 만족도를 낮추고, 젊은 직원이 입사를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전반적으로 고령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응체계의 비전문성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한편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가정폭력상담소 또한 기존의 대면서비스가 상당수 축소되었다. 수차례에 걸친 휴관 통보로 인해 비대면 전화상담으로 대체되었고, 지자체 재량으로 점차 시설운영이 재개되고 있으나 가정폭력 피해자는 날이 갈수록 고립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더욱 적극적인 홍보 등을 통해 상담 활성화를 도모하고 가정폭력 피해자의 동인(動因)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UNOHCHR)에서도 가정폭력 피해자의 이동제한은 폭력피해 신고의 시급성보다 우선할 수 없으며, 감염가능성을 고려한 보호조치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안전 확보를 위해 폭력행위자의 퇴거를 위한 능동적인 사법부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 가정폭력 대응체계의 변화

전술한 가정폭력상담소 외에 가정폭력 대응체계와 관련된 정책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시 모든 자치구에 위기가정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하여 가정폭력 등 위기가정 맞춤형 상담과 통합사례관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가정 내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공적 조치이다. 다만 다른 대응체계와의 역할 분담 등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의견 수렴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장기화 되어가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반영한 대응체계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한 예로 2021년 7월부터 경기도 성남시가 시행하는 '가정폭력 안전지킴이 약국 운영'사업이 이에 해당된다. 이 사업은 지역 내 동네약국을 활용하여 가정폭력의 발견, 신고, 지원서비스 안내 등을 수행하고자 하는 것으로, 가정폭력의 조기 발견, 신속한 보호 및 지원 등을 목표로 한다. 이는 프랑스, 스페인에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고를 돕기 위해 약국 방문 시 'mask19' 라는 구조요청 암호를 사용하도록 한 사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BBC Korea, 2020.4.14.).

그밖에 참고할 수 있는 해외 사례로 이탈리아의 왓츠앱(WhatsApp)을 통한 가정폭력 신고 방법이 있다. 이는 본래 청소년을 대상으로 괴롭힘 및 마약거래 신고를 위해 개발된 앱을 가정에 갇혀 있는 폭력피해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간단히 메시지나 사진을 통해 신고할 수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어, 스페인의 경우 봉쇄 후 270% 가량 상담이 증가하는 효과를 보였다.

▲ 마치며

우리 사회 가정폭력에 대한 허용도는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나, 여전히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정폭력 근절은 지난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다양한 기관과 협업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지자체의 관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성남시에서 지자체 단위로는 최초로 추진된 가정폭력 실태조사 및 근절정책 구축안(2020)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 외에 몇몇 지자체에서 시도된 여성폭력 실태 조사 및 대응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 또한 의미 있는 시도이다. 다만, 여러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변화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피해자 지원책을 재검토하고 더 나아가 대응체계의 하위단위인 종사자 처우를 비롯한 제반 요소를 개선시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가정이라는 공간 안에서 폭력이 희석되지 않도록 조기에 발견하고 안전을 확보하며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매월 8일은 여성가족부가 정한 ‘가정폭력 예방의 날’이다.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관심이 한층 고조되길 바란다.

 

참고문헌

국가인권위원회. (2020.05). COVID-19 관련 국제인권규범 모음집.

여성가족부. (2019). 2019년 가정폭력실태조사 연구.

유숙영. (2007). 가정폭력행위자 교정. 치료프로그램의 개선방안. 교정연구, 36, pp.221-237.

최선영. (2021). 가정폭력 대응서비스 분야 인력운용 실태와 개선 방안. 보건복지포럼, 2021(7), pp.52-66.

경찰청 (https://www.police.go.kr)

성남시청 (https://www.seongnam.go.kr)

여성가족부 (http://www.mogef.go.kr)

통계청 (https://kostat.go.kr/portal/korea/index.action)

한국여성의 전화 (http://hotline.or.kr/board_statistics/69728)

한국일보 2020.07.15.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71509400002631

BBC Korea. 2020.04.14.

https://www.bbc.com/korean/features-52279331?xtor=AL-73-%5Bpartner%5D-%5Bnaver%5D-%5Bheadline%5D-%5Bkorean%5D-%5Bbizdev%5D-%5Bisapi%5D

REUTERS. 2020.04.05.

https://www.reuters.com/article/us-health-coronavirus-italy-violence/in-italy-support-groups-fear-lockdown-is-silencing-domestic-abuse-victims-idUSKBN21M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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