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표 경상국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준표 경상국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Atul Gawande)는 이 책에서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노인의 삶에 있어 존엄성과 권리의 보장을 강조한다(Gawande, 2014). 특히, 노년기의 주거 환경은 최신식 시설과 돌봄 서비스보다는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유사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좋은 시설에서 최고의 돌봄 서비스를 받는 것보다는 개인의 익숙함과 편안함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노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될 것이다. 최근 노인 돌봄에 있어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와도 궤를 같이 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커뮤니티케어와 재가 돌봄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것은 노인의 삶과 돌봄에 있어 긍정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장기요양의 현실을 감안할 때, 커뮤니티 케어와 같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키며 생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돌봄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노인요양 시설의 경우 시설 수 및 입소 노인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 내에서 시설급여는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케어가 이와 같은 시설에 대한 무관심이나 서비스의 축소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에서는 노인요양 시설 내 인권, 특히 노인과 시설 종사자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노인의 삶은 보호받아야 하는가?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고 자립을 하게 되며, 노인이 되면 다시 가족 혹은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는 이른바 수미쌍관(首尾雙關)의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인은 신체적·인지적(認知的)으로 노화돼 생활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돌봄을 받는다고 해서 노인의 삶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인은 신체적으로 늙지만 정서적으로는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젊은 세대에 비해 다양한 삶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지혜 및 정서적 안정감은 분명히 노인이 갖는 장점이 될 수 있다. 또한 Carstensen(2003)이 제안한 사회정서적 선택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에 따르면, 노인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삶이 유한함을 인식하고 잔여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한 나름의 변화를 취한다. 바로, 새로운 정보 및 인간관계를 늘리는 것보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관계의 질을 높임으로써 삶의 안정성을 취한다. 노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을 중시하고 정서적 교감을 강조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생각 변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노인은 늙어감에 따라 모든 것이 약해지고 퇴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삶의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으로는 돌봄이 필요할 수 있겠으나 삶의 모든 것을 관리하거나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되며, 노인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삶의 방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노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돌봄 방식 중에는 노인이 불편해하거나, 자신의 삶의 방식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는 노인의 삶뿐만 아니라 노인의 권리, 인권의 영역에 있는 문제다.

노인요양시설 내의 인권영역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노인의 주거시설은 노인주거 복지시설과 노인의료 복지시설로 나뉜다. 노인의료복지시설은 노인요양시설과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노인성질환이 있는 노인이 돌봄 및 요양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설이다. 이외에도 노인요양병원은 요양이 필요한 노인에게 의료와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의미하며, 이는 의료법에 근거를 둔 시설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노인요양시설과 노인요양병원에 대한 구분이 그리 명확하지 않은 현실인 점을 감안해 노인요양시설에 노인요양병원을 포함시키고자 한다.

노인요양시설 내 노인인권의 영역(고령사회포럼, 2018)
노인요양시설 내 노인인권의 영역(고령사회포럼, 2018)

노인요양시설 입소부터 퇴소하는 과정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인권과 관련한 선택을 해야 한다(그림 1 참조). 먼저, 시설에 입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시설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음으로써 본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시설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입소 계약단계에서는 스스로 입소할 것을 결정하며, 입소계약을 맺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입소 후 시설에서 생활하는 단계에서는 서비스의 수수 및 신체구속 등 다양한 분야에서 권리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퇴소 역시 입소단계와 마찬가지로 본인 스스로 결정하며,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요양시설 내 생활과 돌봄: 신체구속을 중심으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노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노인 학대 가해자 중 시설 종사자 및 의료행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3.0%에 불과했다(보건복지부,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요양시설이 지닌 폐쇄성으로 인해 시설 내에서의 생활은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주로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노인요양시설 및 병원의 경우 신체구속 및 학대로 말미암아 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고 또한, 한국인 정서상 타인이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에 대한 반감 및 시설 입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아직까지 높은 것을 고려할 때, 시설 내 인권침해 행위에 더욱 민감한 관심이 필요하다. 노인의 신체구속은 특정도구를 사용하여 고령자의 자유로운 움직임, 혹은 고령자 자신이 자기 신체를 통상적인 형태로 만지는 것을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이현민 & 조문기, 2017). 노인이 시설 생활 중 배회하거나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휠체어 혹은 침대 난간에 고정하는 행위, 행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항정신성 약물을 과다 투여하는 행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노인, 보호자, 시설 종사자 입장에서 이러한 신체구속의 경우 각기 다르게 인식되어질 수 있다. 노인 및 보호자 입장에서 이와 같은 신체구속은 노인의 인권 보호, 노인의 삶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삼가야 하는 행태다. 반면, 종사자는 환자의 치료와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인의 신체구속은 반복될수록 그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구속이라 할지라도 이와 같은 신체구속으로 인해 노인에게는 체력 및 인지력 저하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인은 시설 생활에서 낙상으로 대표되는 안전사고 및 2, 3차적 장애에 더욱 쉽게 노출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또 다른 신체구속으로 이어지게 될 확률이 높다. 결과적으로 신체구속은 또 다른, 더 높은 수준의 신체구속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신체구속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돌봄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종사자는 어느 정도의 신체구속은 요양 및 돌봄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이를 최소화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노인요양시설 종사자는 부족한 인력 및 노인들로부터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많이 받고 있어 이들의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 명의 요양보호사가 여러 명의 노인을 담당하며, 동시에 식사를 포함한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신체구속은 오히려 노인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일견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노인의 권리와 종사자의 권리가 충돌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설 종사자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시설 운영요건을 충족하는 인력배치 기준을 넘어서 노인이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과 종사자 간 권리가 충돌할 때에는 누구의 권리가 중요한가라기보다는 누가 더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어떠한 방식이 노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려하여 노인과 종사자 간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노인은 내가 존중 받아야 하는 만큼 존중되어져야 하는 존재다. 시설뿐만 아니라 노인 돌봄의 모든 영역에서 상대방을 자신과 같이 생각하는 이른바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노인을 대한다면, 인권 관점에 기반 한 노인 돌봄 역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즐거워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누리는 즐거움이 의식주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노인의 삶에 있어 노인요양시설은 노인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설 생활에 있어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도구의 사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노인의 생활을 돕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실제로는 노인의 주체적인 삶과 즐거움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Carstensen, L. L., Fung, H. H., & Charles, S. T. (2003). 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 and the regulation of emotion in the second half of life. Motivation and emotion, 27(2), 103-123.

Gawande, A. (2014). Being mortal: Medicine and what matters in the end. Metropolitan Books.

보건복지부 (2021). 2020년 노인학대 현황보고서; 보건복지부

손덕현 (2018). 노인 인권과 요양병원의 존엄케어. 제31회 고령사회포럼 자료집.

이현민, & 조문기. (2017). 노인학대의 현황 및 개입과정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 일본문화연구, 64, 247-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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