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부산시 수영구청 주무관
이준석 부산시 수영구청 주무관

#1 어느 간호공무원의 죽음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19의 생명력은 길고 질겼다. 1년이 지나고 다시 반년이 지나고 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출근길에 어느 간호공무원이 생을 마감했단 소식을 접했다. 부산의 어느 구에 소속된 간호공무원이었기에 더 마음이 갔다.

젊은 간호직 공무원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넘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후속 기사는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채웠던 초과 근무시간을 다뤘다. 매일 야근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까지 근무했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른 업무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상급자, 동료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이 공개됐다. 거기에는 그녀의 고충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도 있었기에 더 슬프고 화가 났다. 마지막으로 읽은 기사에는 전날 밤 남편과 다정하게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의 부고였지만, 하루 종일 가슴이 무거웠다. 어떤 공무원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이 부당한 조직을 대표했고, 그 조직이 바로 국가였다는 사실에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2 자가 격리자

코로나19 초기에는 자가 격리자 대부분이 해외 입국자였다. 지금은 확진자, 밀접 접촉자가 훨씬 많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격리자와 매칭된다. 격리자에게 생필품 박스를 갖다주고, 자가격리 앱 설치를 안내하고, 열흘 가량 매일 세 번 이상 모니터링해야 한다.

확진자 접촉 격리자는 격리 기간 중 확진되는 경우가 있어 담당 공무원의 안전 확보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공무원의 안전을 보장하는 장치는 없다. 매칭 통지 메시지 비고란에 적힌 경고 문장이 전부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로 절대 대면 접촉하지 마시오.” 본인이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60세 이상만 되어도 앱 설치가 서툴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휴대폰을 건네받아 앱 설치를 해야 한다. 안전장비라 해 봐야 비닐장갑뿐이다. 담당 공무원이라고 앱 설치가 쉽지만은 않다. 내 휴대폰과 다른 제조사 폰을 건네받으면 난감해진다. 진땀 흘리며 앱 설치를 하고 돌아오니 엄중한 경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최근 자가 격리자 이탈이 많아 암행감찰이 활발합니다.”

#3 백신 접종

정부와 언론의 힘겨루기에 일선 공무원들만 등 터지는 새우 꼴 난다. 원래 계획이라면 다음 달부터 순차적으로 접종하기로 했지만, 언론의 강도 높은 비난 때문인지 급격히 계획이 바뀌었다.

부리나케 국민체육센터에 백신 센터가 설치됐다. 어르신들에게 변경된 접종 일정을 다시 안내했다. 셔틀 차량 중 한 대의 일정을 조정할 수 없었다. 보건소 담당 팀장이 구청 차량을 빌려 하루 종일 운전하며 어르신들을 모셨다. 그리해도 돌아오는 것은 욕뿐이었다. 승차 장소를 잘못 안내했다느니, 대기시간이 너무 길다느니. 그 와중에 고맙다며, 수고한다며 손을 잡아주고 가시는 어르신들이 있어 웃을 수 있었다.

전 부서 직원들이 돌아가며 백신 센터 지원근무를 해야 했다. 아직 5월이었지만 더웠다. 센터 출구에 두 동의 천막을 치고 백신을 맞고 나오는 어르신을 부축해 출구 계단을 내려와 천막 아래 의자에 앉혔다. 버스가 오면 다시 일으켜 부축했다. 혹여나 다른 동으로 가는 버스에 탈까 몇 번을 물어보고 확인해야 했다. 오전이 지나니 목은 잠겼고 두 다리에 알이 뱄다. 하루 백신 접종 어르신이 900명이다. 매일 몇 명 빼고는 거의 다 맞으신다 했다. 대단한 행정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하루 백신 접종률이 몇 퍼센트 올랐는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어느 날부터 언론이 대한민국 접종률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었다.

#4 한시생계지원금

코로나19 기간이 길어지자 언론은 어려운 경제를 말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여러 가지 이름의 재난지원금을 만들었다.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은 전부에게 줄지, 일부에게 줄지에 관심을 가진다. 전부 주면 복지 업무가 아니지만, 일부에게만 주면 복지 업무가 된다.

재난지원금 이야기가 나오면 속으로 기도한다. ‘신이시여, 전 국민이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소서.’ 선별 지원의 문제는 소득, 재산 조사에 과도한 행정력이 들어간단 점이다. 뭐, 사람 더 뽑는 것도 아니고, 있는 공무원 야근시키면 되니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문제는 신청인의 수치심과 개인정보를 여지없이 까발린다는 데에 있다. 극소수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달리 한시생계지원은 소득 재산 기준이 꽤 높다. 대충의 기준을 보고 너도 나도 신청한다. 안 될 것 같아도 일단 신청하고 본다. 대단한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닌데, 내 가족의 소득, 재산 정보를 누군가 열람한다. 지방공무원 중에는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적지 않다.

한시생계지원 담당 공무원은 이웃의 개인정보를 열람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실 이게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오히려 반대의 민원이 생긴다.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있으면서, 왜 이리 까다로운 서류를 요구해?”

그분들은 구청이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도 않고, 그리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정보를 구워먹든 삶아먹든, 날 귀찮게만 하지말란 식이다.

 

2021년 5월과 6월, 한시생계지원 업무를 하면서 본연의 업무를 했다. 아침부터 전화가 울렸다. 자기가 왜 지원받지 못하냐고 물었고, 지원금은 언제 받을 수 있냐고, 얼마 받느냐고 물었다.

바쁜 전화벨 틈에 오래전부터 알던 민원인에게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한 호기로운 목소리엔 온갖 욕설이 섞여 있었다. 행정복지센터에 사정을 물어보고 다시 전화했다. 한참을 술 취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이번엔 자활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최근 채용된 종사자의 수당 지급과 관련해 의논하고 싶다 했다. 이게 바로 내 업무였다.

“지금 좀 바빠요. 나중에 검토하고 알려드릴게요.”

사실 질문이 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숨 돌리고 전화해 질문부터 물어야 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자가 격리자가 이탈했다는 경고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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