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2020년 현재 한국에 입국한 북한 이탈주민은 약 3만 4천명이다. 김정은 정권 이후 꾸준한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연평균 약 1000명이 넘는 북한 이탈주민이 한국에 입국하고 있다(통일부, 2021). 북한 이탈주민 전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 한국에 정착한 북한 이탈주민의 약 7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이탈주민, 특히 여성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별적이며, 많은 여성 북한 이탈주민이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생활고로 자신의 집에서 아사(餓死)한 탈북 모자 사건은 우리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배제된 여성 북한 이탈주민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적지 않은 여성 북한 이탈주민이 탈북 과정에서 원치 않게 현지 남성과 결혼하거나 사실혼 관계를 맺고 자녀를 출산하게 되는데(채명자·임춘희, 2019), 이는 여성 북한 이탈주민의 한국 정착 이후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성 북한 이탈주민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업과 사회적응을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근무조건이나 처우가 열악한 경우가 많고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을 거부당하는 등 고용에서 배제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일상 생활에서도 문화적인 갈등, 차별과 무시, 냉대를 받으며, 탈북모자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공식 및 비공식적인 사회적 지지망으로부터 소외×고립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여성 북한 이탈주민의 사회적 배제를 완화하고 사회적 통합과 포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정착 전후 요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젠더 기반 폭력 피해(Gender-based Violence)와 배제 경험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 여성 북한 이탈주민의 탈북 과정과 외상 경험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북한주민은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북한의 공포정치로 인해 이웃이나 가까운 사람이 공개 처형되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한다(정윤경∙김희진, 2014). 대다수의 북한 이탈주민이 경제적 궁핍을 견디지 못하고 탈북을 감행하며, 주로 중국과 같은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2017) 조사에 따르면, 북한 이탈주민은 평균 약 6년동안 제 3국에서 불안정한 신분으로 생활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북한 이탈주민은 공안에 체포되거나, 강제북송되기도 하고, 교화소 및 구치소에 수감되는 고초를 겪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 탈북 및 제3국 체류 과정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젠더화된 외상(gendered trauma) 노출 위험이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여성 북한 이탈주민은 탈북 과정에서 브로커의 도움을 받는데, 브로커들은 이들의 불안정한 신분을 악용해 성적 폭력을 가하기도 하고, 이들을 중국남성에게 팔아 넘기기도 한다(연성진, 2018). 조사에 따르면(남보영, 2021), 여성 북한 이탈주민 약 세 명 중 한 명은 제3국에서 인신매매 또는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무국적 신분으로 중국 남성과 사실혼 관계를 맺고 자녀를 출산하는 등(이민경∙김현경, 2007), 성에 기반한 폭력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여성 북한 이탈주민의 외상 사건 노출은 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데, 강제송환과 같은 외상을 입은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우울, 불안, 적대감을 경험한다(이민영⋅김현경, 2007). 뿐만 아니라 외상 사건에 대한 노출이 많고, 특히 성에 기반한 폭력을 당한 경우 우울 및 자살 위험성이 더욱 높게 나타나(남보영, 2021),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탈북 과정에서의 외상 경험, 특히 성에 기반한 폭력의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한국 사회 정착 이후의 사회적 배제와 정체성 협상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정책을 수립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영역은 경제적 지원과 자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며 경험하는 다양한 차원의 차별과 배제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는 정치∙경제∙사회적 교류와 같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개인이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고 배제 당하는 현상에 초점을 둔 개념으로(Silver, 1994), 경제적 빈곤에 기반한 접근이 지니는 한계를 보완하는 장점이 있다. 사회적 배제 담론은 사회 취약계층이 경험하는 다차원적인 배제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며 사회적 배제가 역동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Sen, 2000).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여성 북한 이탈주민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충분한 직업교육을 거쳐 취업하기보다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또는 북한 및 제3국에 남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취업이 용이한 곳에서 아쉬운 대로 일을 시작한다(이은주, 2017).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으로 면접 기회 자체를 상실하거나, 북한 억양이나 사투리, 낯선 영어나 외래어 사용으로 인한 어려움이 취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이은주, 2017; 최수찬 외, 2019). 일단 직업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조직문화가 익숙하지 않고, 업무에 필수적인 컴퓨터 활용 능력도 부족한 편이다. 직장 내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차별과 경쟁, 승진이나 업무 평가에 있어서도 차별을 경험한다(최수찬 외, 2019). 일부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외국 국적의 남편이나 자녀에 대한 돌봄 부담을 안게 되며, 이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이중부담을 경험한다.

북한 이탈주민은 사회적 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느낀다. 적응 및 정보 획득에 유리한 한국 사람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북한 사람과의 교류를 피하거나(염유식×김여진, 2011), 한국인보다는 북한 출신 사람과의 교류로 사회적 관계를 스스로 제한하는 특성이 혼재되어 나타나곤 한다(이은주, 2017). 한국 사람과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 적극적인 북한 이탈주민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활동에 소극적이다. 특히 자녀를 둔 여성 북한 이탈주민은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자녀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며, 이로 인해 한국 학부모와의 교류를 일부러 피하기도 한다(염유식×김여진, 2011).

일부 연구에서는 여성 북한 이탈주민이 한국 사회에서의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한국 사회에 어우러지기 위한 전략으로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특히 정착 초기에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지적하고 있다(최희∙김영순, 2020).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 일부를 숨기는 전략이 일정 부분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에 긍정적이라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전략이 지니는 한계는 분명하다. 그들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려우며, 사회적 관계망이 확장된다 하더라도 형식적인 관계에 그칠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대한 소극적 대응은 여성 북한 이탈주민의 한국 사회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이들을 사회적 지지망으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기 때문에 대응전략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성 북한 이탈주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전략을 쓰는 것은 일상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편견과 차별, 이로 인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정체성 협상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최희∙김영순, 2020).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 협상이 자기 은폐 성향으로 이어질 경우 정치∙경제∙사회적 측면의 배제를 전반적으로 악화시키는 만큼(남보영 외, 2021), 반드시 사회적 수준에서 이들에 대한 편견과 배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Berry (1997)의 적응 이론에서도 정착국 사회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동화(assimilation) 보다 출신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은 잃지 않으면서 정착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합(integration) 전략이 더욱 이상적인 문화적응(acculturation) 형태라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여성 북한 이탈주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협상하고 북한 출신임을 숨겨야만 하는 선택은 우리사회가 이들의 일방적인 동화(assimilation)를 여전히 강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여성 북한 이탈주민이 통합(integration)이라는 문화적응 전략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성에 대한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확립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 북한 이탈주민 스스로가 북한 및 탈북 과정에서의 경험을 한국 사회에서 체득한 경험과 통합해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강점 관점에 기반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 마무리하며

여성 북한 이탈주민은 여성이라는 취약성 때문에 탈북 및 한국 사회 적응 과정에서 더욱 복잡한 갈등과 어려움을 경험한다. 여성 북한 이탈주민은 제3국 거주 과정에서 불안정한 신분 속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하기도 하고 성폭력 피해에도 취약하다. 이러한 외상사건의 영향은 한국 사회 정착 이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된다. 제3국에서 강제 결혼 등으로 맺어진 복잡한 가족관계는 여성 북한 이탈주민에게 아내, 어머니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역할까지 강요하는 결과로 나타나 이들에게 이중 부담이 된다. 탈북자라는 정체성에 기인한 노동시장 및 사회생활에서의 편견과 차별, 사회적 관계에서의 배제와 갈등은 여성 북한 이탈주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전략을 선택하도록 한다. 이러한 정체성 협상은 장기적으로는 사회적인 고립이나 삶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성 북한 이탈주민의 한국 사회 적응과 통합 향상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와 여성 북한 이탈주민 개인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여성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사회적 포용 향상을 위해서는 이들이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경험한 삶의 위기와 극복 과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이 필수적이다. 또한 여성 북한 이탈주민 역시 스스로의 강점과 탄력성(resilience)을 발견하고 한국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Berry, J. W., & Sam, D. L. (1997). Acculturation and adaptation. Handbook of Cross-cultural Psychology, 3(2), 291-326.

Sen, A. (2000). Social exclusion: Concept, application, and scrutiny. Social development papers No. 1. Manila: Office of Environment and Social Development, Asian Development Bank.

Silver, H. (1994). Social exclusion and social solidarity: Three paradigms. International Labour Review, 133, 531-578.

국가인권위원회. (2017). 「북한이탈주민 인권피해 트라우마 실태조사」.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남보영. (2021). 「북한이탈주민 여성의 사회적 배제 경험과 남한사회적응에 관한 연구」. 데이터 분석결과.

남보영, 김담이, 이은형, 김지민. (2021, 게재예정). 북한이탈주민 여성의 사회적 배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사회복지연구, 52, 127-166.

연성진. (2018). 북한이탈주민 탈북과정에서의 인신매매범죄 피해실태에 관한 탐색적 연구.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총서, 18-AB-04, 1-230.

염유식, 김여진. (2011).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연결망 형성과 유형에 대한 근거 이론 연구. 한국사회학, 45(2), 91-129.

이민영, 김현경. (2007). 새터민 여성의 이주로 인한 상실의 극복 체험 - 남한 남성과 결혼한 여성을 중심으로. 사회복지연구, 35, 525 -554.

이은주. (2017). 북한이탈여성들의 직업교육 경험과 취업전략에 관한 질적 연구. 한국과학예술융합학회, 27, 173-189.

정윤경, 김희진. (2014). 북한이탈주민의 외상 경험과 적응의 관계: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의 매개효과 분석. 사회복지연구, 45(4), 143-167.

채명자, 임춘희. (2019). 북한이탈주민 여성의 결혼생활 변화과정에 대한 사례연구. 한국가족관계학회지, 23(4), 65-87.

최수찬, 이은혜, 김명희, 이혜림. (2019). 여성 북한이탈주민의 경제활동에 관한 탐색적 연구. 다문화사회연구, 12(1), 131-163.

최희, 김영순. (2020). 북한이탈여성의 문화적응에 나타난 정체성 협상: 개인적 측면을 중심으로. 다문화와 평화, 14(1), 1-21

통일부. (2021). 「북한이탈주민 입국인원 현황」. 2021년 6월 27일 접속, https://www.unikorea.go.kr/unikorea/business/NKDefectorsPolicy/status/lately/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