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세지는 AI의 물결

2016년 3월,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를 상대로 한 대국에서 인간이 패배한 뒤 전 세계는 AI 연구와 개발에 몰두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현재. AI는 미디어·커머스 등 각종 서비스를 비롯해 공장 관리와 기업 경영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활 전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끌고 있다.

무한한 잠재력까지 인간을 닮은 AI는 악용되면 인류사에서 발명된 어떤 기술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일례로 AI 기술로 만든 기관총이 어느 핵과학자를 정확하게 명중시킨 테러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25cm 옆자리에 떨어져 있던 그의 부인에게는 털끝만큼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이미 AI가 파괴적 목적으로도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기술의 역기능 발현과는 별개로, AI는 거침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AI 물결은 더욱 강력해질 전망이다. AI 생태계 조성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는지에 따라 AI는 우리 사회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남을 수도, 이와 반대로 친구 같은 공존 가능한 존재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인간 중심 AI 생태계 형성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 세계가 '알파고 쇼크'에 휩싸였던 그 해, 한편에서는 인간과 지구, 그리고 번영을 위해 세계 193개국이 합의한 행동 계획인 'UN 지속가능발전목표(UN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UN SDGs)'가 이행되기 시작했다. UN SDGs는 빈곤퇴치·경제성장·친환경 에너지 활용 등 사회·경제·환경 측면의 총 17가지 목표를 기반으로 169개의 세부목표를 제시한다. 각국에서 AI 활용과 관련 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와중, 선(善, Good)을 위한 대표적인 행동 목표인 SDGs 달성에 AI를 도입해보자는 연구가 확대되고 있다. 이는 SDGs 달성을 촉진할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AI가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도 주목된다.

△ AI의 사회적 가치 창출

많은 기업들이 인력을 AI로 대체해 지출을 줄이거나 AI 기반 타깃 마케팅으로 매출을 확대하는 등 수익성에 초점을 두고 AI를 활용한다. 이와 달리 한편에서는 사회 전체를 위한 AI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 경제학자 마셜 버크(Marshall Burke)와 그의 연구진들은 나이지리아·우간다·탄자니아·르완다 및 말라위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AI 기술을 적용했다. 아프리카 지역 빈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특정 지역의 빈곤 수준과 그 변화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들 연구원은 고해상도 위성 이미지와 학습 알고리즘을 결합했고, 지역별 빈곤 수준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해졌다.

중국내에서도 사회적 가치 창출 차원에서 AI를 접목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네이버는 AI 기술을 코로나19 방역 현장에 도입했다. 각 지자체 내 보건소에서는 네이버의 음성인식 AI '클로바 케어콜'을 활용해 지역 내 능동감시대상자들에게 매일 두 차례씩 자동으로 전화를 걸었다. AI 서비스가 도입된 3개월 동안 음성예측 오류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AI 소셜벤처 테스트웍스는 AI 기술 구현의 핵심인 데이터 분석 및 가공 업무를 경력단절여성이나 발달장애인에게 맡기며 취약계층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정 기업 수준을 넘어 국제 사회에서 활동하는 단체들까지 사회적 가치 창출에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국제 표준을 마련하는 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AI 기술 혜택을 확대시키기 위해 2016년 9월 IBM 왓슨 AI 엑스프라이즈(IBM Watson AI XPRIZE)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이듬해 제네바 ITU 본부에서 '선을 위한 AI 서밋(AI for Good Summit)'을 공동으로 주최해 사회적 가치 창출 영역에서의 AI 역할을 강조했다.

이 같은 논의가 더 정교해지며 AI와 SDGs를 직접 연결하는 담론이 확대되고 있다. AI가 지향해야 하는 선 또는 사회적 가치의 기준으로 SDGs에 주목하는 것이다. 2019년 9월 AI가 앞으로 어떻게 SDGs를 지원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연구하기 위해 옥스퍼드 대학 내 연구단체로 ‘AIxSDGs에 대한 옥스퍼드 이니셔티브(Oxford Initiative on AI×SDGs)’가 구성됐다. 이 단체에는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글로벌 ICT 기업이 파트너사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UN글로벌콤팩트(UNGC)가 다보스포럼에서 '선을 위한 AI(AI for Good)'를 주제로 'SDGs 달성을 위한 AI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같은 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는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공 지능의 역할(The role of artificial intelligence in achieving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이라는 연구 논문이 실렸다.

△ SDGs 달성을 통한 신뢰받는 AI

AI와 SDGs 상호작용에 주목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앞서 언급된 사회적 가치 창출형 AI 서비스들의 목적은 SDGs 각 목표에 대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탠포드 대학 연구원들이 아프리카 지역 빈곤 예측이라는 목적을 위해 AI를 활용했는데, 이는 SDGs 1번 목표인 ‘빈곤 퇴치’ 달성에 기여한다. 네이버의 클로바 케어콜은 3번 목표인 '건강과 복지'에, 테스트웍스의 사업 방향은 8번 목표인 '일자리 및 경제 성장'에 연결된다.

AI가 SDGs 달성에 얼마나 효과적인 기술인지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스탠포드 대학의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AI의 역할'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는 169가지 SDGs 세부 목표 중 무려 79%에 해당하는 134개 세부 목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됐다.

17개의 SDGs를 사회·경제·환경이라는 큰 틀로 나눴을 때, 사회 분야 목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만큼 AI가 조력할 수 있는 사회 분야 SDGs의 수가 가장 많다. 환경 분야 SDGs 달성에 있어서는 90% 이상이라는 높은 비율로 AI가 협조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AI와 SDGs를 연결한 논의는 SDGs 달성 측면에서도 효과적이지만, AI가 만들어 낸 사회적 가치를 보다 분명한 측정값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2019년 중국 장쑤성에서 열린 '난징포럼'에 연설자로 나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기술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는 AI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뢰받는 AI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AI의 사회적 가치 측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기업 입장에서는 그들의 사회 가치 투자가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된다면 더 기꺼이 AI의 사회적 가치 창출 분야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특히 기업 가치 평가 기준으로 재무적 요소뿐만 아니라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가치가 부각되는 최근에는 신뢰 받는 지표에 의한 평가는 공신력 확보 측면에서도 요구된다.

△ AI 기반 소셜 임팩트와 K-AI의 미래

개발 단계부터 서비스, 이윤의 환원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 존재의 목적은 사람을 위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인류의 번영을 추구하는 글로벌 목표인 SDGs 구현에 인공지능이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대한 고찰은 AI의 목적성을 분명하게 정립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AI는 신뢰성을 확보하고 이에 힘입어 우리 사회의 AI 수용력도 더 제고될 수 있다. 선을 위한 AI 생태계는 성장하고 한때 사람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던 AI가 사회적 가치 창출에 의한 사회적 변화, 즉 소셜임팩트의 주체로 부각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5월 13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공지능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실현 전략(안)'을 발표했다. 'AI 강국'을 꿈꾸는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화두인 'SDGs를 위한 AI'에 대해 깊이 고민하여 국제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K-AI'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진정한 AI 기반 임팩트를 확산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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