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신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책연구실장
장영신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정책연구실장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일구어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인당 GDP는 67달러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5년 1만2500달러, 2019년 3만2000달러가 돼 세계에서 일곱 나라밖에 없는 30-50클럽에 진입했다. 1995년 GDP 대비 3.0%였던 공공사회복지 지출도 2019년 12.2%로 크게 증가했다. 이와 같이 불과 50여 년 만에 이러한 급성장을 이룬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와 사회복지 부문의 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이 느끼는 행복도는 그리 높지 않다. 양적인 성장과 경제적 번영이 우리 사회의 질적인 발전과 행복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이고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 중 3위이다. 노인빈곤율도 OECD 회원국 중 1위로, 66세~75세 노인의 42.7%, 76세 이상 노인의 60.2%가 저소득층에 해당한다. 이렇듯 세계 최고 자살률과 빈곤율은 우리 사회가 물질주의 가치관의 팽배, 지나친 평등의식과 분배구조의 악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반세기 전보다 부유해졌지만, 우리는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가 발간한 '나라경제 5월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8∼2020년 평균 국가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에 그쳤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 149개국 중 62위에 해당하고 OECD 37개국 가운데는 35위를 차지하였다. 또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2020 세계 행복보고서'를 통해 국가별 행복지수를 공개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153개국 중 61위를 기록했다.

SDSN은 국내총생산(GDP), 사회적 지원, 기대 수명, 사회적 자유 등 총 7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조사했다. 한국인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72점으로60위권이었다. 핀란드는 7.809점으로 3년 연속 행복지수 1위를 기록하였다. 핀란드의 비결은 촘촘한 사회안전망 체계로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서로 돕는 지역복지공동체 덕분에 행복지수가 높게 유지되고 있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의 행복 성적은 낮은 것일까?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복합적일 것이다. OECD 더 나은 삶 연구소(Better Life Institute)는 지난 3월9일 37개 OECD 회원국과 4개 협력국을 포함해 총 41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생활수준을 비교분석한 '2020 삶의 질(How’s life? 2020)'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불평등 수준이 OECD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하위 20%보다 상위 20%의 소득이 약 7배 더 높아 OECD 평균인 5.4배를 크게 웃돌았다. 남녀 간 임금격차도 OECD 평균(12.9%)의 약 3배(34.6%)로 나타났다.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또 다른 요인은 바로 '낮은 사회적 신뢰감'이다. 응답자의 19%가 '필요할 때 의지할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고 답했다. 국민 5명 중 1명이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OECD 평균 9%의 두 배가 넘고, 조사대상 41개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이러한 관계 단절은 높은 자살률과도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경영의 과학화와 기술혁신으로 고도의 압축 성장을 했으나 그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사실은 한국인의 행복도를 더욱 낮추는 새로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서상목, 2020).
사회 환경이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한 요소이고, 사회적 관계가 두텁고 신뢰가 높을수록 개인적 역경으로 인한 불행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불평등 수준이 높고, 사회적 신뢰는 OECD 최저수준이다. 한국인의 행복지수, 즉 주관적 삶의 만족도가 낮은 이유다. 우리 국민이 더불어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사회 역시 '행복 한국' 만들기 길목에서 중심축이 돼야 한다. 시민의 사회적 책임은 성숙된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인 시민정신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행복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대다수 사람은 나눔 활동을 통해 더욱 행복감을 느낀다는 보고가 있다. 2007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기부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사람들의 뇌에 복측피개영역(VTA)이 활성화 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기부, 봉사, 즉 나눔의 행복을 느끼면 '옥시토신' 호르몬이 분비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팀이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던 연구결과도 있다. 40여 명의 사람들에게 5달러를 준 뒤 절반은 자신을 위해 쓰고 절반은 남을 위해 쓰도록 했다. 남을 위해 쓴 사람들의 행복감이 훨씬 컸다. '5달러의 행복'인 셈이다. 또 630여 명에게 1년 지출 중 행복감이 높은 순서대로 1부터 5까지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세금이나 자신을 위해 쓴 '개인적 지출'보다 선물 구입, 기부 등 타인을 위해 쓴 '사회적 지출'의 행복감이 훨씬 큰 것으로 조사됐다. 나눔·기부·봉사는 타인도 행복해지고 나도 행복해지는 파급효과가 크다.

선행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길을 잃고 헤매는 관광객을 도와 목적지까지 안내해줬다면, 몸이 불편해 집안일을 하지 못하는 이웃을 위해 청소나 빨래를 대신 해줬다면, 그날 하루는 특별히 누구에게 칭찬받지 않아도 스스로 뿌듯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친절의 힘'이다. 이런 친절의 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원봉사자이다. 봉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는 용어가 있다. 헬퍼스 하이의 의미는 타인을 도우면 느끼게 되는 최고조에 이른 기분이다. 자원봉사자가 주위에서 '힘들겠다'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도 또다시 봉사에 나서게 되는 이유는 그 일로 인해 행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복지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를 정부 혼자 해결할 게 아니라 기업과 시민사회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 책임만 강조하는 '복지국가'를 넘어 국민 모두 함께 만들고 누리는 '복지사회' 개념으로 진화·발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2019년부터 보건복지부와 함께 '지역사회공헌 인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역사회공헌 인정제는 비영리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꾸준한 지역사회공헌 활동을 펼친 기업과 기관을 발굴해 그 공로를 인정해 줌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공헌 생태계 조성에 그 목적이 있다. 이제도는 홍콩의 '케어링 컴퍼니' 제도를 벤치마킹하였다. 홍콩은 2002년부터 홍콩사회복지협의회가 주관해 지역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기업에 인정 로고를 수여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보건복지부와 함께 시행함으로써 제도의 공신력을 높이고,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과 협력해 인정기업 대출보증심사 시 평가 우대 및 매출채권보험 가입에 따른 보험료 할인 등의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2019년 첫해 121개, 2020년 265개 인정기업·기관이 선정되었다. 2021년 올해는 500개 인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사회공헌 인정제' 로고 안내
'지역사회공헌 인정제' 로고 안내

우리는 다양한 나눔을 통해 사회적 가치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삶의 가치를 ‘행복’에 두어야 할 때다. 나눔문화 혁신을 통해 ‘행복한국 만들기’에 매진할 때이다. 1995년 '선진복지 원년'이 정부 주도였다면, 2021년 '행복한국 원년'은 민간이 앞장서야 한다(서상목, 2021).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푸드뱅크, 자원봉사, 사회공헌, 멘토링 등 나눔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나눔문화 활성화를 위한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나눔문화' 정착과 '행복한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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