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일본 효고현 남부지역에서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전까지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당시의 막대한 인명피해와 사회·경제적 충격은 쓰라린 경험이었지만, 이후 치유와 복구 과정을 거치면서 지진재해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대응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정비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피해 경험과 복구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당시의 실천적 교훈이 이후 일본의 지진재해 지원 체제에 어떻게 적용됐는지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일본 효고현 남부지역에 지진이 발생해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진도 7이 관측됐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불리는 이 지진은 고베 시 반경 100㎞ 내에 피해가 집중되어 일명 ‘고베 대지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지진으로 6434명이 사망하고, 4만3792명(중상자 1만683명)이 부상을 입었다. 특히 고령자들의 인명피해가 두드러졌는데, 피해가 컸던 고베 시에서는 사망자의 약 60%가 60세 이상 고령자였다. 주택피해는 약 64만호가 파괴됐고, 화재로 소실된 건물도 약 7600호에 이르렀다.

피해 총액은 9조9268억 엔으로 국가예산의 약 10%에 달하는 규모였다. 피난소 운영실적을 보면, 지진 발생 6일째인 1월 23일, 1153개 시설에 31만6678명이 피난했고, 피해가 가장 컸던 고베 시에서는 주민의 7명 중 1명이 피난소를 이용했다. 피난소 운영은 지진 발생 6개월 뒤인 8월 20일까지 이어졌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경험은 이후 일본의 지진재해지원 시스템 구축에 많은 교훈을 주었다. 아래에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서 당시의 상황 설명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재해 자원봉사의 활성화·조직화

2016년 쿠마모토 지진 구호와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신주쿠 역 앞에서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6년 쿠마모토 지진 구호와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신주쿠 역 앞에서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5년은 일본에서 ‘자원봉사 원년’으로 불린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발생 직후부터 1년 동안 해당 지역을 찾은 자원봉사자는 138만명에 이르고, 전 기간에 걸쳐 총 167만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했다. 자원봉사자들은 구호물자 배급, 주민 안부 확인, 피난소 운영, 가설주택 이사 지원, 장애인 및 고령자 케어, 말벗 지원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재해 지역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을 계기로 새롭게 자원봉사단체 등을 만들어 사회공헌활동을 하려는 시민들이 증가하면서 민간비영리단체의 설립과 지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비영리단체를 손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1997년에 ‘특정비영리활동 촉진법(NPO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일본의 시민사회와 비영리 섹터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NPO 법인은 이후 20여 년 동안 꾸준히 증가해 2020년 현재, 전국 약 5만2000개가 인증을 받아, 보건·의료·복지, 마을 만들기, 교육, 재해 구호, 문화·예술, 환경보호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계기로 활성화된 자원봉사활동은 이후 지진뿐 아니라, 홍수 피해 지역 등 ‘재해 자원봉사’로 불리면서 확산되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각 지역에서 활동했으며, 지진 발생 후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한편,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피해 지역에 자원봉사자가 쇄도해 활동 내용과 봉사자를 연결하는 중계·조정 역할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재해 자원봉사센터’가 설치·운영됐다. 이후 발생한 재해에서도 센터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현재는 지진재해 지원 시스템에서 중요한 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다.

재해 자원봉사센터는 주로 피해 지역의 사회복지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설치하지만 지자체 및 관련단체 등의 피해가 큰 경우, 타지역에서 인력이 파견되어 센터를 설치·운영하기도 한다. 교토부, 사가현, 치바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재해 발생 시의 일시적 센터가 아닌 상설의 형태로 재해 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재해 관련 고독사 방지 대책과 지역복지자원 구축

한신·아와지 대지진에서는 피해 복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령자들의 고독사가 빈발하면서 그 원인 규명과 대책이 요구됐다.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피재민들은 피난소를 거쳐 가설주택, 재해공영주택 등으로 잦은 거주환경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결고리가 약화되거나 단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에서도 그러한 사회적 고립이 원인이 되어 고독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재해공영주택 등에는 고령자를 우선적으로 입주시켰기 때문에 신규 입주자 대부분이 고령자인 경우, 주택단지의 높은 고령화율로 인해 주민자치가 어려워져, 지역 커뮤니티가 약화되면서 일상적인 안부 확인이나 지역복지 기능이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이러한 고령자 중심의 주거단지에서는 고독사가 지진 직후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특징을 보였다.

고베 시에서는 이러한 고령자의 지역 고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케어상담센터에 ‘안부확인 추진원’이라는 전담직원을 배치했다. 안부확인 추진원은 자치회 및 주민들과의 협력을 통해 단지 내 고령자 현황을 파악하고 고립 방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고독사 발생을 현저히 줄이는 성과를 달성했다.

이후, 고독사 방지를 위한 주민조직 활동은 고독사 방지라는 일차적 목적을 넘어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과 주민참여를 통한 지역복지실천으로 이어져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주요한 지역복지자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실천 경험과 노하우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복구와 지원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피난소 및 가설주택 운영에 있어서 지역 커뮤니티를 중시하는 방식을 많은 지역에서 채용하여 그 효과가 재차 검증됐고, 가설주택 등에서는 입소 초기부터 고독사 방지를 위한 주민조직 만들기와 프로그램이 실시되는 등 다양한 실천적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재해에 대한 심리 케어의 전문화

이전부터 지진 피해 주민에 대한 심리케어의 필요성은 지적되어왔지만, 구체적 지원은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본격화됐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발생 직후, 어린아이들을 중심으로 지진이 원인이 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경험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당시 효고현 교육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지진이 원인이 되어 심리적 지원과 배려를 필요로 하는 아동(초·중학교)은 1995년 지진발생 직후부터 급증하여, 이후 4년 동안 매년 4000명 정도가 집계됐다.

이러한 지진 관련으로 심리적 불안 증세를 보이는 아동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각 학교에 ‘교육부흥담당교원’을 배치해 상담지원과 심리케어를 실시했다. 이를 계기로 재해 피해자에 대한 심리케어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이후에도 연이어 지진, 태풍, 홍수 등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인 지원을 위해 2004년 효고현에 거점시설인 ‘마음케어센터’가 설립됐다.

마음케어센터는 대규모 재해로 인해 해당 지역의 정신의료보건복지 시스템이 마비되어 대응이 곤란한 상황에서 정신의료보건복지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는 전문기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도 피해 지역 3개 현에 동센터가 설립됐다.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현의 각 센터에는 의사, 임상심리사, 정신보건복지사, 사회복지사, 보건사, 간호사 등 약 50명 규모의 지원팀이 편성돼 지진 피해 및 복구 지원과 관련된 상담과 치료, 정신보건 예방활동 등을 실시했다.

동일본 대지진에서는 쓰나미 피해가 컸다는 점에서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가족 등 사별로 인한 애도증후군에 대한 심리적 케어의 중요성이 강조됐으며, 그 외에도 피난생활의 장기화에 따른 스트레스나 우울증과 관련된 피재민의 정신건강지원 등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한편, 피재민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는 관련 기관 직원 등 재난지원 종사자에 대한 정신건강관리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재해약자에 대한 피난 지원 대책

사회복지의 주요 대상이 되는 장애인, 고령자, 영유아, 임산부 등은 자연재해 발생 시에도 스스로 피난하기 어렵거나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재해약자’라 할 수 있다. 지진 피해 등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피난생활을 하는 경우 재해약자들은 일반 주민들과 같은 시설에서 생활하기 곤란하거나 생활에 필요한 구호물자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에도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 장애인 화장실이 정비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붕괴 위험이 있는 자택에서 생활하거나 피난시설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을 하는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등이 많았다.

이러한 재해약자에 대한 지원을 위해서 1996년 일본 정부는 ‘복지피난소’라는 개념을 도입했고, 2007년 발생한 노토한토 지진에서 처음으로 복지피난소를 설치했다.

정부 지침에 따라 각 지자체는 초등학교구 단위로 복지피난소를 정비해야 하고, 배리어프리 환경 정비와 함께 요지원자에 대한 상담 및 정보제공을 할 수 있는 상담원배치 등 지원체제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한편, 2013년에는 재해대책기본법을 개정해 장애인과 고령자 등 재해약자에 대한 ‘피난행동요지원자 명부’작성을 지자체에 의무화했다. 평상시에 재해약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지진 발생 시 신속한 피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사망자의 60% 이상이 고령자였던 점을 고려한 조치로 알려져 있다.

또한 동일본대지진당시 장애인 사망률과 전체 사망률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미야기현 1.92배, 이와테현 1.19배, 후쿠시마현 1.16배로 장애인 사망률이 전체 사망률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력으로 피난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인명피해가 컸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이 또한 재해약자에 대한 피난 지원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라 할만하다.

지자체가 작성한 피난행동요지원자 명부는 지역의 민생위원과 자치회에 제공되어 대상자별로 구체적인 피난경로와 피난장소, 지원자를 설정하는 등 개별 지원계획을 작성토록 하여,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재난 약자에 대한 파악과 지원 체제 정비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주민의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재해복지 실천은 일본의 재해복지 지원 체제가 갖는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장기적 비전과 재해복지의 확립 필요

이처럼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쓰라린 피해 경험, 그리고 재해복구 노하우와 교훈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비롯한 이후의 지진들(2016년 쿠마모토 지진, 2018년 오사카, 홋카이도 지진 등)에서 적용되고 개선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본은 지진재해뿐 아니라 태풍, 호우, 폭설, 화산 폭발 등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태풍 및 호우 피해는 2000년대 이후만 보더라도 거의 매년 발생해,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있었고, 그때마다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2010년대 이후 동북 산간지역에는 폭설로 인한 피해도 잦아지고 있는데, 특히 2011년부터 2014년에는 매해 폭설로 인해 100명 전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최근 들어 기후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 이어지면서 자연재해 발생이 잦아지고 있어, 재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과 지원 시스템 구축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사회복지영역에서도 피재민의 생활재건과 장애인, 고령자 등 재해약자에 대한 지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공론화됨에 따라 재해복지가 사회복지의 중요한 분야 중 하나로 자리잡아가면서 구체적인 실천방법론과 시스템 구축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경주·포항 지진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제 우리도 재해복지 분야에 대한 관심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때이다. 경주·포항 지진 직후에는 재해복지에 대해 사회복지현장은 물론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많았던 걸로 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어떨까? 지진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 특히 지진에 대한 내성이 약한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한다면 보다 체계적인 지진 대응 시스템 구축과 재해복지 분야의 확립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지진 발생 직후에만 반짝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한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재해에 대한 사회복지적 접근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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