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개원 51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 개최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위기 상황이 사회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한 현실이 되면서 복지국가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제 노인 돌봄, 아동 돌봄, 보호서비스 등은 사회적 기본권으로 인식되고 있고 국가는 그 보편성을 확대해나가야할 책무를 안게 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3월 1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개원 51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고 사회보장제도의 혁신을 모색하는 장을 마련했다. 대규모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 사회보장제도의 취약성을 점검하고, 사회보장체계를 강화해 나가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3월 1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개원 51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보장제도 혁신’을 논의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3월 1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개원 51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보장제도 혁신’을 논의했다.

모든 계층 포용할 수 있는 ‘보편주의’ 강조

기조강연은 요아킴 팔메 스웨덴 웁살라 대학 교수가 ‘사회적 측면에서 본 팬데믹: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보장’을 발표했다. 그는 스웨덴의 코로나19 경험을 공유하며 이상적인 사회적 보호에 대해 설명했다.

팔메 교수는 이날 ‘보편주의’를 강조했다. 사회적 보호체계가 모든 계층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사회적 보호체계는 세대 간 연합을 구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생애주기 각 단계별 위험에서 모든 연령그룹을 균등하게 보호해 다함께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원 조달 방법을 강구해 부유층까지도 복지국가의 보호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팔메 교수는 이와 함께 지난 1년여 코로나19로 인한 스웨덴의 사회보장 정책을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로 GDP가 하락했으며 고용은 감소하고 실업은 증가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보호체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일자리 유지 계획을 대폭 확대해 임금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했으며 실업급여 등 보조금과 다양한 종류의 공제 혜택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실업보험급여 상한선 및 기초급여 인상 △질병 요양수당 확대 △자녀가 있는 가족 지원 확대 △아픈 자녀를 돌보는 부모에 육아휴직급여 지원 △주거수당 개선 등 사회보험의 보장 범위와 적정성 기준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팔메 교수는 “이 같은 임시 대책으로 노동인구중 10% 이상이 단기 일자리 유지 프로그램의 혜택을 입었고 수천명이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한 특별급여를 청구하는 등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위기 동안 사회 보호체계의 방향이 보건·의료를 제외하고는 좀 더 보편적인 쪽으로 움직였지만 현재 대책은 임시 대책일 뿐”이라며 “이를 교훈 삼아 다음 위기에 대비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메 교수는 또한 “코로나19는 개인을 위한 사회적 보호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계기였다”며 “사회 보호체계가 모든 사람을 보호할 때 우리 자신도 보호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사회적 자본, 사회적 통합을 증대시켜 공통의 위험에 대응한 협력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제기된 사회적 질문과 그 이후의 발전과제에 대해 민주적 정책 입안을 통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급요건 완화하고 급여수준 적정성 확보해야

이날 메인 세션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보건·복지 정책 방향’을 주제로 한 토론이 진행됐다.

좌장을 맡은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한국은 그간 사회·경제적 봉쇄 조치를 최소화하면서 단계적인 방역조치와 체계적인 감염병 관리를 통해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예기치 못한 팬데믹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미래연구를 바탕으로 위기를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에서는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박능후 경기대학교 교수, 이혜경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조대엽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장이 ‘사회보장체계 정비와 고용·사회안전망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김용익 이사장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우리 국민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줬고 이를 기반으로‘K-방역’이 성립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공공의료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 40여 개의 공공병원이 10%의 공공병상으로 80%의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면서 대유행 시기 병상 부족을 겪었고, 요양병원, 요양시설 거주 노인의 취약성도 문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은 또한 “백신 수입 등 확보에만 집중하고 백신 국산화를 통해 다음 감염병 위기를 대비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주도 성장이 같이 일어날 수 있도록 국책연구기관들이 이를 위한 대책을 균형 있게 제시해 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박능후 교수는 “팬데믹을 겪고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보장제도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취약계층과 실업자가 늘어나고 사회가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서 제도별 공공부조가 작동하고 있는지와, 작동한다면 취약계층이 왜 발생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소득과 재산을 파악하는 자산조사의 요건과 방법이 과거에 묶여 있어 전체 사회안전망 구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자산조사 기법이 개선되면 사각지대 등 기존 제도의 미비점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제도의 방향으로 기본소득이 제시되고 있는데, 선별급여제도가 가지고 있는 수급요건을 완화하고 급여수준의 적정성을 확보하면 기본소득 도입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작 돌봐야 할 제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기본소득에만 매몰된다면 사각지대를 계속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정 건전성 확보 위해 증세 불가피

이혜경 명예교수는 “그동안 사회서비스 정책은 대상의 보편주의가 신속하게 추진됐고 공공재정 투입도 확대됐지만, 서비스 전달체계가 시장형, 즉 민간 제공자에 의존하면서 서비스 질을 담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 들어 치매 국가책임제 및 지역사회 통합 돌봄 시행, 사회서비스원 확대 등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많은 변수와 고려 사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회서비스의 과제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직접 동반자로서 참여하고 자기 주도적인 의미 있는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이는 지역사회공동체와 결합될 때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기본적인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현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돌봄이 필요할 것”이라며 “현재의 인력 양성 시스템을 보완하고 제3섹터, 시민사회 부문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조대엽 위원장은 “지난해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넘기고 미래 대응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국가혁신전략”이라며 “그중에서도 휴먼뉴딜이라 할 수 있는 고용안전망,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사회보장제도가 나아갈 방향으로 △일하는 사람 누구나 사각지대 없이 보호될 수 있고 △정책 설계부터 입법, 실행 과정이 간소화되고 빠르게 진행되며 △실험적이고 합의적 기반을 갖춘 사회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데이터 문제도 중요하다”며 “부처별 데이터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고, 4대 보험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정표 원장은 “경제 성장률이 둔화된 현재 상황에서는 재정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저소득층, 약자 층을 보호하는 재정 확장을 넘어서 전체적인 경기 부양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편”이라며 “코로나19 위기가 백신으로 수습되더라도 또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르고 남북교류 협력이 확대되면 재정지출이 많아질 것이므로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소득세·법인세 개혁, 부가가치세 증액 등 증세를 통해 재정 여유를 가져야 위기방역 체제도 튼튼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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