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봉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나라 사회서비스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 되었다. 2013년 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서비스의 범위를 돌봄, 건강, 교육, 주거, 문화, 환경 등으로 대폭 확대해 사회서비스가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서비스의 질적 수준은 여전히 낮은 실정이다.

사회서비스가 늘어나는 다양한 사회적 욕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발전 방향의 모색이 필요하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기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한국형 사회서비스 모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한국형 사회서비스 모형의 정착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작동하는 실질적인 민관 협력체계의 구축이 필수다. 그동안 민관협력 체계의 중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읍면동 복지허브화' 사업은 민과 관의 협력체계 구축이 주요 목표다. 하지만 지역복지 현장에서는 중앙부처 중심주의, 피상적인 주민의 참여, 형식적인 공공 주도 민관협력 등 지역복지 전달체계 개편에 대한 비판이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강혜규·함영진, 2018). 지역사회 사회서비스의 네트워크는 민관협력 체계의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길현종·이영수(2017)의 연구에서는 사회서비스 기관의 48%는 자원 및 정보 교환·연계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사회 사회서비스 전달체계가 민간이 주도하면서 관의 행정체계가 함께 하는 사업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민간기관 간의 조정과 협력을 강화하는 주체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영역과 분야의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은 민관협력 과정에서 견해 차이로 인해 전문영역의 발달을 저해하거나 서로 충돌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네트워크의 성립을 위해서는 허브 역할을 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으로 민간기관을 대표해 민과 관 사이의 일종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민과 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새로운 사회적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체계를 위해서는 지역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공동체는 일상생활 범위를 공유하며 일정한 범위 내 존재하거나 개발되는 자원을 공유하는 집단이다.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공동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며, 결과적으로는 지역공동체 삶의 질 제고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지역공동체가 복지 공급의 주체가 되면 제공자와 이용자의 관계를 대립적이 아닌 상호의존적 공동생산을 제도적으로 구현해 나갈 수 있게 된다(김용득, 2018).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지역협의회가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개념을 학습하여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구축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협의회가 지역공동체 구축의 중심 역할을 한다는 것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지역사회가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자발적·주체적으로 상호작용 하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서비스는 고립된 자원이 아닌 지역사회의 연대와 협력의 속성을 띄게 되며, 지역공동체 삶의 질 제고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 자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기업경영의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활동과 사회서비스 자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하는 푸드뱅크사업 모형을 확대 발전하여 기업자원과 사회서비스 자원의 연계 모형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푸드뱅크 모형은 민간 비영리기관이 운영하고, 정부는 사업의 법적 근거 제공과 재정 지원을 하는 민관협력 체계로 안정성과 효율성의 두 측면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푸드뱅크사업은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개발도상국 등에도 중요한 ESG 모형이 될 수 있다. 민간 영역의 사회복지 체계가 미비한 나라에서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푸드뱅크 모형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물론 해당 국가의 빈곤 문제라는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는 중장기적 발전 모형이 될 수 있다.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과 비교해 사회서비스 제공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조하는 복지권인 '권리로서의 사회서비스'에 대한 인식은 아직 우리 사회에 부족한 실정이다. 시민권 모델에 기반 하여 권리로서의 사회서비스가 한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개개인에게 '권리로서 사회서비스'가 보장된다는 인식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권리 교육 강화가 필요하며,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복지권리 교육 강화를 위한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에 대한 복지권리 교육은 향후 이용자 참여와 자기결정권에 입각한 사회서비스 이용이 안착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사회서비스의 제공은 지역사회 차원의 통합적 사례관리 체계 위에서 가능하다(이봉주, 2005).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민간기관 간 지역사회에서의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하며 상호협력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협의회는 지역사회에서 통합적 사례관리 체계의 허브가 돼야 한다.

지역사회 차원의 통합적 사례관리 체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관 위주 또는 문제 위주의 재정지원 체계에서 한층 유연한 체계인 네트워크 재정지원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이봉주 외, 2008). 네트워크 재정지원 방식은 재정지원을 서비스 네트워크에 일괄적으로 제공하고 네트워크 내의 각 기관이 공동계획 등을 통하여 재정지원을 받게 하는 혁신적인 재원 모형이다. 관 주도의 네트워크 재정지원 방식은 민간기관들의 전문성과 상호작용을 증대시키는데 일정한 제약이 있을 수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자·운용자로서의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사회서비스에서 바우처 방식은 현물의 높은 정책목표 효율성과 현금의 높은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권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급여 형태의 특징적 장점만을 결합한 제3의 급여 형태로 불린다(Gilbert & Terrell, 2005; 남찬섭, 유태균 역, 2007). 수요자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급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용이하게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용자의 욕구 충족 혹은 삶의 질의 변화를 반영하는 성과지표를 통한 평가 방식이 필수적이다(이봉주 외, 2012). 하지만, 제공기관과 전문가 중심의 기존 평가방식을 깨고, 이용자 중심의 성과지표를 개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민간기관을 대표하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이용자 중심의 성과지표 개발을 추진해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서비스는 플랫폼 경제, 네트워크, 디지털 기술, 로봇 등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전달체계가 접목된 것이어야 한다. 고도화된 행정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복지서비스의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행복e음 시스템’과 같은 범정부 사회보장시스템에 축적된 빅데이터와 민간 자료를 연계 및 활용하여 위기 상황에 부닥친 대상자를 더욱 능동적으로 발굴하고 서비스 수요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학기술을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에 접목하는 역할을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사회보장 시스템에 축적된 정보는 방대하지만, 이를 민간과 연계·공유하는 전략은 부족한 실정이다. 협의회는 공공과 민간을 연계하는 시스템 개발을 고려할 수 있으며, 협의회가 축적한 사례관리의 정보와 전문성을 기반으로 AI 심층 사례관리 모듈을 개발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실천 현장에 실버로봇이 도입되면, 기존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과 같은 사회보험과의 중복성과 모호성에서 오는 사회복지 관련 법적 정비와 입법화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협의회는 정책 환류(feed-back)와 정책 참여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

최근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사회복지시설을 중심으로 한 대면 서비스 제공은 불가능함을 경험한 바 있다. 이 상황에서 방문요양 등 공급자 방문형 서비스만이 정상적으로 작동함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장소 중심의 서비스 모형에서 ‘전달’ 중심의 모형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ICT의 발달로 점차 이용자의 직접적인 이동이 필요 없는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가상공간을 통한 사회서비스의 제공이 확대됨에 따라 사회복지 온라인 공동체를 서비스 전달체계에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탐색이 요구되고 있다. 김수영(2019)의 연구는 저소득층 주민이 수급자 카페에서 중요한 복지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넘어 새로운 인간관계와 연대를 형성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사회복지 온라인 공동체 구축을 주도하는 등 ICT를 사회서비스에 접목하는 노력을 견인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두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가져온 방역시스템의 중요성은 사회서비스에 새로운 도전과제가 되고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한국형 사회서비스 모형 개발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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