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식 한양대학교 교수
이삼식 한양대학교 교수

우리나라 인구정책은 크게 인구증가억제정책기(19 62~19 95), 인구자질향상정책기(1996~2003), 저출산고령사회정책기(2004~)의 세 시기로 구분된다. 저출산고령사회정책기는 지난 15년 간 4대 정권을 거치면서 전개됐다. 그러나 출산율은 회복되지 못했고 오히려 최근에 올수록 더욱 낮아졌다. 게다가 가까운 미래에 출산율이 반등할 기미마저 보이지 않고 있다. 저출산 대책과 출산율 간의 관계가 유의미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구정책은 ‘국가와 사회에 유리하도록 인구가 변화하기를 직·간접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인구정책은 통상적으로 인구총량의 증감이나 인구구조의 변경 및 인구자질의 향상을 일차적인 목표로 하는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노력을 총괄하는 것이지만, 인구총량의 증감을 가져오는 인구과정의 3가지 요소인 출생, 사망, 이동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는 행동계획과 실천이 수반되는 것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인구과정의 요소 중 ‘사망’은 직접적인 인구정책의 대상으로 설정되지 않았고 ‘이민’은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또한 ‘고령화 대응’은 인구규모나 인구구조를 변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글은 ‘출산’ 요소와 관련한 인구정책에 초점을 두었다.

우리나라 인구정책은 크게 인구증가억제정책기(1962~1995), 인구자질향상정책기(1996~2003), 저출산고령사회정책기(2004~)의 세 시기로 구분된다. 인구증가억제정책기에서 정책기조는 가족계획사업을 통한 출산억제와 외국으로의 한국인 이민 장려였다. 인구자질향상정책기에서 정책기조는 보건사업과 복지사업을 통한 인구의 질적 문제 해소였다. 저출산고령사회정책기에서 정책기조는 다양한 지원 및 시스템 개선을 통한 출산장려와 고령사회 대응기반 구축이다.

인구증가억제정책기와 저출산고령사회정책기는 인구의 양적인 목표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인구의 질적인 목표를 추구했던 인구자질향상정책기와 구별된다. 인구자질향상정책기에도 당시 낮은 출산율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암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양적인 목표를 추구했다는 시각이 존재하기도 한다(인구정책 50년사 편찬위원회, 2015).

저출산고령사회정책기는 5년마다 수립되고 있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의 회차에 따라 현재 총 4차로 세분화된다(이하에서는 저출산 부문에만 한정하여 저출산기본계획 또는 저출산대책으로 칭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수립한 제1차 저출산기본계획(2006~2010)은 저소득 가정에 보육 기회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둠으로써 복지정책의 성격이 강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수립한 제2차 저출산기본계획(2011~2015)은 보육서비스 이용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고 맞벌이 가정에 일·가정 양립서비스를 확대·제공함으로써 보편적인 가족정책의 변모를 보였다. 또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주거 지원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면서 종래 기혼인구에 한정했던 정책대상을 미혼인구까지 확대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수립한 제3차 저출산기본계획(2016~2020)은 제2차 저출산기본계획과 맥락을 같이했다. 주된 차이점으로 일·가정양립제도의 실천과 사각지대 해소에 중점을 두었고 신혼부부를 위한 타운 건설을 계획했다.

제1차부터 제3차까지 저출산기본계획 각각은 출산율 목표를 제시했다. 제1차와 제2차 저출산기본계획은 출산율 회복을 명시적으로 밝혔고, 제3차 저출산기본계획은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 1.5명 회복’으로 구체적인 목표수치까지 정했다.

이와 달리, 제4차 저출산기본계획(2021~2025)은 출산율에 대한 국가 개입을 거부하여 출산율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정책 기조를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정책가나 전문가 등 인구정책 관계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인구정책적’ 접근이라기보다 ‘사회정책적’ 접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저출산대책의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존립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사실 저출산고령사회정책기에서 정책 기조의 변화는 인구감소 위기에 휩싸였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랑스의 정책 상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인구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에 대해 다양한 입장들이 대립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구감소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면, 급진공화주의자들은 영유아 사망을 줄이기 위한 의무교육, 빈곤 퇴치, 복지 증대, 정의와 연대 등 분배적 정의와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입장을 취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다자녀가정 지원, 감세, 독신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 등 적극적인 출산장려를 촉구했다. 이러한 다양한 입장들이 반영되면서 프랑스의 인구정책은 백화점식 특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출산고령사회정책기는 지난 15년 간 4대 정권을 거치면서 전개됐다. 그러나 출산율은 회복되지 못했고 오히려 최근에 올수록 더욱 낮아졌다. 게다가 가까운 미래에 출산율이 반등할 기미마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저출산대책과 출산율 간의 관계가 유의미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 두 가지를 의심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현행 저출산기본계획의 기조와 그 기조를 실천하기 위한 세부 대책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으로 의심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복합적인 현대사회에서 저출산대책 자체로는 더 이상 출산율에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선 현행 출산대책의 기조와 세부 정책들이 출산율 회복을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앞서 제시했듯이, 제1차~제3차 저출산기본계획의 기조는 출산율 회복이고 제4차 저출산기본계획의 기조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세부 대책들은 시기에 관계없이 보육·돌봄, 일가정양립, 임신출산의료지원, 신혼부부주거지원 등으로 동일하되 대상 확대, 지원수준 상향 조정 등이 이루어졌다. 물론 일부 새로운 대책들이 도입되었고 이미 타 부문에서 수행되고 있는 정책들을 저출산대책의 범주에 새로이 포함시킨 것도 있다. 무엇보다도 제4차 저출산기본계획은 금년에 시작된 만큼 실제 출산에 미치는 영향 여부를 바로 판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저출산기본계획이 출산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한 검토이다. 일부 의견으로 그간 저출산기본계획의 시행이 출산율의 감소폭을 둔화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2018~2020년 기간에 합계출산율이 0명대까지 낮아졌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현실적으로 그동안 저출산대책의 이행 기간이 늘어났고, 대책 범주가 확장됐으며, 급여 등의 수준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합계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결국 현행 저출산대책의 프레임은 출산행태에 영향을 미쳐 인구를 국가와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경시키고자 하는 인구정책으로서는 미흡하다는 판단이 든다.

물론 현행 저출산대책에 포함되어 있는 건강한 임신·출산, 보육·돌봄, 일가정 양립, 경제적 부담 경감 등을 위한 각종 지원책들이 이미 출산을 선택한 기혼부부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거나 출산을 선택할 수 있어도 희망하는 자녀수를 낳을 수 없는 계층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증가하는 만큼 출산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자유롭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가족생활에 필수적인 것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 학력과 학벌 및 젠더에 의한 고용기회의 차별이 철폐되어야 하며, 직장생활과 가족생활에서 실질적인 양성평등이 실현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 고질적인 자녀 양육 고비용구조가 개선되고, 경력단절이 방지되며, 일가정양립이 보편적이면서도 일상화될 수 있다. 또한 원활한 주택 공급을 통해 주택가격과 전세가가 안정되어야 한다.

희망하는 자녀수를 낳아도 경제적인 부담 없이 양육할 수 있도록 자녀양육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현재 저출산대책에도 고용, 주거, 양성평등 등의 대책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피상적이고 부분적이며 수준이 낮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결국 우리나라가 초저출산 현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인구정책이 고용, 교육, 주택, 자녀양육사회보장, 문화, 양성평등 등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개혁을 추구하고, 이를 보조해 줄 수 있는 현행 미시적인 접근들을 향상시키는 이른바 거시-미시 연계적 프레임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구정책의 개혁을 위해서는 현행 거버넌스(governance)체계도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저출산대책들은 여러 부처 정책들의 합이라는 관점에서 총괄 및 조정을 위해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같은 범정부 조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행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정책기획이나 예산 편성 등에 관한 법적 권한이 없어 반드시 필요한 저출산대책을 발굴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즉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인구정책의 개혁 주체로서 동력을 가지지 못하여, 각 부처에서 기존부터 실행되어 온 저출산대책 관련 정책을 취합하여 심의하는데 그 역할을 한정시키고 있다. 이제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저출산대책을 총괄적으로 기획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등의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여 우리나라 인구정책이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기획되고 추진되게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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