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의 도움과 기관의 지지에 힘입어 끊임없이 도전

최계명 창동종합사회복지관 대리
최계명 창동종합사회복지관 대리

2014년부터 노인복지관 3년, 종합복지관 3년을 근무하다 보니 어느새 6년 차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14년 전…. 수능이 끝나고 대학 전공을 정하는 날, 모든 학과가 적혀있는 안내 책자를 폈다. 전공과 그에 대한 설명을 읽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헌신적인 마음으로 한다’는 내용에 마음이 이끌려 사회복지를 선택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는 어려운 이웃을 직접 도울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재미있게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인연의 시작은 전공 안내 책자였지만, 그때 사회복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고민도 되면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며 방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경에 보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려운 이웃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예수님처럼 나도 ‘친구가 필요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5~6년 차가 된 지금은 실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할지 고민이 되는 시점이 되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왜 사회복지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목적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주민들과 소통하며 ‘게릴라 바자회’ 성공 이끌어

노인복지관에서 평생교육만 3년 동안 담당하다 종합복지관 이직 후 문해교육과 후원사업을 맡았다. 문해교육은 평생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해봤기에 문제없었지만 후원사업은 처음 맡는 것이어서 자신이 없고 두려움이 있었다.

후원사업을 하면서 사회복지 분야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됐다. 어르신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상담자 역할만 해왔던 나에게는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분야였다. 대부분 당사자는 무엇인가 도움을 필요로 하여 복지관에 찾아왔다. 다양한 문제와 고민이 있었지만 상당수가 물질적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것이 바로 후원사업이었기에 자원 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노력했다.

그래서 시도한 건 ‘바자회’였다. 그것도 일명 ‘게릴라 바자회’다. 게릴라는 소규모 전투를 뜻하기도 하는데, ‘소규모 바자회’란 뜻으로 직접 이름을 붙였다. 대부분의 일반 주민들은 ‘복지관 후원사업’으로 바자회를 떠올리곤 한다. 일반적으로 바자회는 전 직원이 투입돼 몇 달을 준비해 진행하고 그만큼 큰 후원금을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인력 투입과 일회성으로 끝나는 사업이기에 고민도 많다. 이에 따라 매주 진행하는 ‘게릴라 바자회’를 기획하게 됐다.

2019년 한여름을 제외하고 거의 매주 목요일 창동역으로 나가 주민들을 만나며 바자회를 진행했다. 천막 1~2개를 펴고 부스 운영을 시작했다. 매주 나오다 보니 어느덧 ‘단골주민’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이번 바자회에는 어떤 물건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크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카카오 플러스’ 친구를 맺게 한 후 바자회 하루 전날 어떤 물건을 얼마에 팔지, 사진과 가격을 표시한 이미지를 전송했다. 주민들과의 소통으로 바자회 성과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아쉽게 바자회 진행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단골 주민’을 만날 때면 반갑게 인사하곤 한다.

최계명 사회복지사는 2019년 후원사업으로 '게릴라 바자회'를 기획해 진행했다. 올해는 동료들과 함께 '온라인 바자회'를 운영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최계명 사회복지사는 2019년 후원사업으로 '게릴라 바자회'를 기획해 진행했다. 올해는 동료들과 함께 '온라인 바자회'를 운영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3년간 13편의 ‘온라인 모금’ 진행

후원사업을 맡은 지 한 달, “새 학기 프로젝트 있다던데 한글 교실 어르신 대상으로 온라인 모금해보실래요?”라는 동료의 권유로 2018년 온라인 모금을 시작했다. 해를 거듭하며 성과를 냈고, 카카오그룹에서 2020년 올해의 모금함 ‘폭풍 성장상’까지 받게 됐다. 3년간 총 13편의 온라인 모금을 진행하며 금액적인 부분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이들에게 복지관과 사업을 알리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온라인 모금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는 모두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런데 온라인의 파급효과를 경험하면서 ‘온라인 모금’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상황이 겹치면서 2020년 한 해는 ‘온라인 모금’에 박차를 가했다. 어떻게 사진을 찍고 사연을 작성해야 하는지 막막한 상황에서 동료들의 도움과 끊임없는 도전이 가능하도록 모든 상황을 믿고 맡겨준 기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금은 뇌출혈로 쓰러진 여동생의 병원비를 위한 한 오빠의 사연이었다. 오빠는 온라인 모금을 위한 사진 촬영에 직접 나서고 편지도 쓰면서 앞으로 동생과의 행복한 시간을 기대했다. 그러나 모금이 완료된 상태에서 동생이 급성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당사자는 너무 상심한 나머지 몇 달간 연락도 잘되지 않았다. 결국엔 일부 병원비와 장례 관련 비용, 그리고 유가족들의 주거 및 생계비로 성금을 지급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마음 아프다. 동생을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았던 당사자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생각하니 나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안타까웠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대면 바자회가 어려워져 ‘온라인 바자회’에 도전했다. 의류 같은 경우 직접 입어보고 살 수가 없으니 동료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 비대면으로 판매했다. ‘랜덤 박스’ 상품을 만들어 1만원을 내면 다양한 상품을 무작위로 보내주기도 했다.

그중 ‘생활지원사’ 후원자가 기억에 남는다. 장애인인 자신의 대상자에게 후원해 주고 싶다며 10만원 상당의 옷을 사갔다. 바자회에서 10만원은 꽤 큰 액수로, 후원품의 부피도 상당했다. 큰 대봉투 1개 분량을 택시에 실어 드린 기억이 있다.

2021년에는 동료들과 연합해 ‘온라인 모금’이나 ‘온라인 바자회’를 진행해보고 싶다. 또한 ‘온라인 모금’을 하는 기관들과 네트워킹하며 서로의 프로젝트를 홍보해 주는 브리지 역할을 해보고 싶다.

실제로 기관마다 홍보할 수 있는 대상이 일정하다. 복지관들이 ‘품앗이’처럼 서로의 프로젝트를 홍보해 주고 도울 수만 있다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카카오 같이 가치’ 프로젝트의 경우 댓글만 달아도 카카오그룹에서 대신 후원을 해주기 때문에 홍보만 서로 해줘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료’라는 보석을 만나다

후원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가격을 모르는 물건을 후원받았을 때 얼마로 환산가를 잡아야 하는지, 중고품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물건까지 받을 수 있는 건지 등 어려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같은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돕기 위해 주변 기관 담당자들과 이야기하고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이 ‘동아리’가 되고 ‘네트워크’가 됐다. 현재는 ‘도봉구 후원 동아리’에서 확장해 ‘자원 개발 네트워크’로 이름을 바꾸고 함께 후원 관련 고민을 나누고 있다. 토요일 새벽에는 동료들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강사를 초대해 강의를 듣는 ‘연대북스’도 함께하고 있다.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복지와 관련된 인사이트를 얻는 등 좋은 동료들과 함께하며 서로에게 힘을 받고 있다.

6년간 사회복지 업무를 하며 좋은 상사와 동료를 많이 만났다. 각자의 색깔로 맡은 분야에서 사명을 다해 사회복지를 하는 분들을 볼 수 있었고,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사회복지’라는 생각이 든다. 당사자를 만나든 동료를 만나든, 아니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 대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