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충경 전 호서대학교 교수
강충경 전 호서대학교 교수

코로나19로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의료 및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별개로 나눠져 있어 이들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복지국가로 유명한 핀란드에서 추진 중인 ‘eWelfare’ 사례를 살펴보고 시사점을 제시한다.

다보스포럼으로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창립자이며 주최자인 클라우스 슈밥 교수는 작년 7월 ‘코로나19: 거대한 재설정(Covid19: The Great Reset)’이란 제목의 책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많은 변화들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특히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또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를 집중 거론하며 많은 것들 앞에 ‘e’가 접두사처럼 붙는 ‘e-things’ 즉, e-회의(디지털 회의), e-학습(디지털 원격 학습), e-commerce(전자상거래) 등을 나열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진정이 되어도 디지털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들 역시 대면회의가 화상회의로 바뀌고,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디지털화는 우리나라 역시 ICT(정보통신기술) 강국답게 의료 및 사회복지분야 등 활발히 진행되어왔다. 우리가 병원에 가면 환자등록부터 건강보험 관련 처리까지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료기록) 등 정보통신기술의 혜택을 받고 있다. 사회복지 분야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이 앞장서서 디지털 기술 활용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현재 의료와 사회복지 등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별개로 나눠져 진행되고 있다. 이들을 통합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eWelfare’란 혁신적인 새로운 시도를 복지국가로 유명한 핀란드에서 실시하고 있다. 구체적 사례 중심으로 ‘eWelfare’를 살펴본다.

핀란드는 UN 산하기관인 SDSN에서 156개국을 대상으로 매년 발표하는 ‘행복지수’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나라이며 보편적 복지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디지털화 사회로도 주목받고 있다. 유럽연합이 최근 발표한 ‘디지털 경제와 사회지표 2020(Digital Economy and Society Index 2020)’에서 핀란드가 1위를 차지했다.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던 노키아는 정보통신기업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하여 5G 최첨단 통신 기술을 완성, 우리나라 SK텔레콤 등과 함께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또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유명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핀란드에 둘 만큼 유럽의 ICT 허브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의료정보 디지털화해 국민 누구나 건강기록 열람 가능

핀란드 디지털화의 국가 차원 정책은 1995년에 시작했고, 2007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활용 의무법안을 통과시켜 본격화했는데 ‘칸타 서비스(Kanta Service)’가 그중 하나이다.

칸타 서비스는 1950년대부터 축적된 의료정보를 전부 디지털화하여 핀란드 국민 누구나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휴대폰 등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면 언제든지 접속해서 자신의 건강기록 등을 살펴볼 수 있고 처방전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2011년부터 본격적 실증을 거쳐 2017년 이후 핀란드 국민 전체가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걱정할 수 있는 개인정보 누출은 전무하다. 온라인 은행거래하듯이 보안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칸타 서비스는 2019년 현재 10억건 이상의 의료기록이 통합건강시스템(Integrated Healthcare System, IHS)에 축적되었고, 1억8700만개의 전자처방전이 발행되었으며, 핀란드 국민 80% 이상이 한 번 이상 경험했다. 디지털 기술이 보편적 의료복지로 연결되면서 효율성과 비용 측면 모두 성과를 이룬 사례이다.

사회복지와 의료복지 결합한 통합시스템 ‘아포티’

두 번째 사례로 ‘아포티(Apotti)’가 있다. 사회복지와 의료복지를 결합한 통합시스템으로 세계 최초의 시도이다. 핀란드 역시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비용이 늘어 이를 통합,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으로 시작됐다. 현재 수도인 헬싱키를 중심으로 160만 인구의 수도권, 즉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시를 대상으로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형병원을 포함한 30개 병원과 40개 공공의료기관, 그리고 50개 사회복지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2011년 기획·검토 후 2012년 5월에 시작했다. 서비스 구축과 전문가 네트워킹 등 6년간 준비 끝에 2018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아포티는 시민 누구나 서비스 종류와 시간, 장소에 관계없이 전문가와 실시간 소통하고 즉시 데이터에 접근해 조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담당의사가 환자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주는 임대료 등 거주환경, 식료품 구입 등 음식 섭취, 그리고 교통수단까지 즉각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복지서비스 기관에 의뢰하는 식이다. 의사와 복지전문가가 함께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돌보고 치료 효과를 높이는 등 서비스 품질 개선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핸드폰에 ‘마이사(Maisa)’라는 앱을 설치 후 접속하여 실시간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시작한 지 1년만인 2019년 현재 약 12만명이 서비스를 이용했고, 3만명 이상 시민이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2021년 실증사업이 완료되면 종합평가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디지털 기술과 보편적 복지가 결합한 대표적 ‘eWelfare’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협업을 통한 신약과 진단기술 개발 프로젝트 ‘핀젠’

세 번째, ‘핀젠(FinnGen)’ 프로젝트다. 이는 정부, 의료계와 대학 그리고 기업이 협업하는데 유전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치료약, 즉 신약과 진단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17년 시작해 2023년까지 핀란드 국민 약 10%에 해당하는 50만명의 혈액을 기증받아 유전자와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연구하여 특히 개인 맞춤형 신약개발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2021년 1월 현재 벌써 44만명이 혈액을 기증하여 조기 달성할 것이 확실하다.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핀란드 정부는 2019년 ‘국민의료 사회보장 데이터 2차 활용법안’을 통과시켜 핀란드 내 민간기업과 연구소가 연구목적으로 이들 혈액의 유전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 발표가 공개되자 세계 Top3를 포함한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등 유명 대형제약사 12개 기업이 핀란드 정부와 컨소시엄을 구성, 총 예산 2/3를 투자했다.

투자뿐만 아니다. 세계 최고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제약사들이 핀란드에 연구소를 짓고 연구원을 파견하여 그들 지식을 핀란드 과학계와 공유하고 최첨단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핀젠 프로젝트는 과감한 제도혁신으로 세계 최고 기업들이 자기 발로 핀란드를 찾아오게 만든 사례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원격진료서비스 ‘해피 빌리지’

네 번째, 원격진료서비스인 ‘해피 빌리지(Happy Village)’이다. 원격진료는 핀란드 국민 누구나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해서 전문가와 건강관리를 상담하고 진단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이다. 생활습관을 모니터링하면서 치료 전후 특히 만성질환에 유용하다. 앞서 말한 10억건 축적되어 있는 통합건강시스템, 칸타 서비스와도 연계되어 빅데이터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핀란드 원격진료 서비스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7개 대형병원, 170개 의료기관, 7000명의 의료전문가와 연결되어 있어 매년 핀란드 인구의 약 80%인 400만명이 이용하고 있다. 접속시간은 몇 초 이내 가능하고, 평균 진료시간은 12분이다. 의사가 환자를 화상 등을 통해 대화하는 문진 형식으로 진료하여 결론을 내리면, 실험실 검사와 추가적인 치료 및 약을 처방해 가까운 약국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사회복지사와 연결해 병가 등의 후속조치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원격진료는 거주지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핀란드인이 이용하는 평등성, 즉 보편적 복지를 향상시키는 도구로 활용된다. 핀란드뿐만 아니다. 원격진료는 이미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프랑스 등 대부분 나라에서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대면진료가 어렵게 되면서 사용빈도가 10배 이상씩 늘고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 시스템 구축해야

우리나라도 원격진료 시작은 늦은 것이 아니다. 오래전인 1988년부터 시작했으니 핀란드보다 빠른 셈이다. 그런데 아직 실시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10번의 시범사업을 했고, 지난 19년간 원격진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을 5번이나 시도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이유는 이해관계자인 의사협회와 시민단체 등에서 반대를 한 것이고 정치권 역시 풀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원격의료가 재벌들 배불리게 하고 의료민영화로 가는 전단계”라며 반대한다. 의사협회는 1차 의료기관, 즉 동네의원들이 다 문을 닫을 것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코로나19로 대면진료가 어려운 작금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작년 9월 의정협의회가 구성되어 4대 의제에는 포함되었으나 최근인 올해 1월 7일 4차 회의에서는 아예 의제에서 빠져버렸다. 4차 산업혁명 핵심인 디지털 기술이 의료 등 시민의 건강권과 보편적 복지를 위해 활용되지 못하고 이해관계자 간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해결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안을 한다면,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핀란드 ‘핀젠 프로젝트’처럼 과감한 법제도로 실시하면 된다. 한시적인, 다시 말해 일정기간 동안 시민단체가 우려하는 의료민영화와 대기업, 대형병원의 진입을 막고 스타트업 육성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의사협회가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1차 의료기관과 지방 공공의료기관만을 대상으로 하면 된다. 또한 이미 안전성·유효성이 검증된 진료과목만을 원격진료로 시작하고, 이후 기술개발에 따라 의학적 검증을 완료한 후에 하나씩 추가하면 된다. 국민의 건강권과 보편적 복지를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어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하고, 법제도로 충분히 실시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eWelfare’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간을 끌 사안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끝으로 핀란드 정부의 ‘9개 디지털 원칙’을 언급하면서 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2016년 2월에 공표된 9개 원칙은 지면 관계상 다 실을 수는 없지만 첫 번째 ‘고객의 요구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한다’를 시작으로 ‘사용이 간편하고 안전한 서비스’, ‘문제 발생 시에도 서비스를 제공’ 등 공급자가 아닌 철저한 수요자 중심이다.

특히 6번째인 ‘새로운 정보는 한 번만 요청한다’는 사소하게 보이겠지만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수요자 입장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디지털 기술이 들어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사용할 때마다 같은 정보를 계속 입력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데 핀란드의 경우, 그렇지 않고 단 한 번의 입력으로 끝난다. 이렇게 세심하면서도 철저하게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즉 시민의 입장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철학과 정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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