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현 대한사회복지회장

지난해 1월 취임한 김석현 대한사회복지회장. 취임 1년을 맞은 김 회장은 우리나라 입양 관련 현안과 정책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특히, 최근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는 ‘정인이 사건’과 관련, 입양기관 관계자로서의 입장과 생각을 전했다.

김석현 대한사회복지회장
김석현 대한사회복지회장

취임 1년을 맞았다. 그간의 소회를 말해주신다면?

“법인 본부, 그리고 각기 다양한 일을 하는 산하시설이 20개에 이르다 보니 많이 배우며 익히고 있다. 취임 직후에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특별한 경험도 겪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장애아나 영유아 시설을 여럿 운영하고 있어 긴장도가 매우 높다.”

대한사회복지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이름에서 묻어나듯 67년 역사의 오랜 토종 아동복지기관이다. 6.25 직후인 1954년 정부에 의해 설립돼 당시 사회 이슈였던 전쟁고아와 혼혈아 입양 보내는 일을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에 민간으로 전환돼 부모 잃은 영유아들의 국내외 입양 및 시설 보호, 위탁가정 보호, 발달장애아 돌봄 치료, 학교 밖 청소년 보호 지도, 한부모가족 자립 지원, 그리고 어르신 복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왔다.”

캐치프레이즈가 ‘우리아이 우리엄마를 돕습니다’인데.

“부모 잃은 아이들이 반듯하게 자라나도록 돌보는 일,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린 엄마들을 돕는 일, 이 두 가지가 아동복지기관으로서 대한사회복지회의 주력 업무다. 많은 국제구호기관들이 저개발국 아동을 돕자며 대대적인 TV 광고 등을 통해 후원금을 모으고 있지만, 정작 우리에겐 도와야 할 궁핍하고 소외된 이 땅의 아이들과 엄마들이 있다. 그들을 지킨다는 다짐과 자긍심을 담고 있다.”

기자로 활동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거쳐 대한사회복지회장을 맡고 있다. 이력이 남다른데, 사회복지와의 인연은?

“30년 가까운 중앙일보 기자 생활중 절반 이상을 사회부에서 보냈다. 사회의 그늘진 곳을 다루고 약자를 옹호하는 게 사회부 기자의 역할이다 보니 복지 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회부장과 에디터를 거쳐 정년 무렵에는 아동복지사업인 위스타트 운동본부를 관장했고, 한국자원봉사협의회 등의 운영에 참여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은퇴 후 자연스레 사회복지에 몸담게 됐다.”

코로나19 상황의 장기화로 후원 및 기관 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텐데.

“기업도 개인도 경제적 타격이 크다보니 사회복지기관에 대한 후원도 덩달아 줄고 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후원의 손을 놓지 않는 고마운 분들이 계시기에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코로나19가 입양에도 지장을 줄 것 같은데, 어떤 상황인지?

“입양은 절차가 꽤 길고 복잡하다. 최초 입양 상담을 통해 입양대상 아기가 접수되면 위탁가정에서 보호하면서, 양부모 선정을 위한 상담 및 조사, 가정방문 및 교육, 입양 결연, 법원 허가, 지자체 보고 등의 과정을 거쳐 양부모에 인도된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단계마다 지연이 돼 반년 이상씩 늦어지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그새 아기는 낯을 가릴 만큼 쑥쑥 자라 새 가정에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난해 6월 코로나19 확산 관련 전국 산하시설장들과의 긴급회의 모습
지난해 6월 코로나19 확산 관련 전국 산하시설장들과의 긴급회의 모습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이 터졌다.

“공분하고 있다. 특히 정인이가 입양아였기에 입양업무를 수행하는 기관 입장에서 죄스러운 마음이다. 더욱 만전을 기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우려도 매우 크다. 이번 사건은 계속되는 극악한 아동학대 범죄, 그리고 그에 대한 공권력의 부실한 대응이 본질적 문제다. 그런데 마치 입양 관리상의 문제인 양 축소해 호도되는 분위기가 있다. 그로 인해 입양이 더욱 위축되거나, 지극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 절대다수의 입양부모들이 사회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달라.

“아동학대 의심 사례가 발생하면 즉각 공적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아동학대 사건 전담 인력을 갖춘 경찰이 수사에 착수해야 하고, 학대받은 아동의 보호를 책임지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역시 진상 파악과 피해 차단에 나서야 한다. 한데 정인이의 학대 의심 신고가 세 차례나 거듭됐는데도 두 기관이 제대로 조치하지 않아 기어이 비극이 일어났다. 꼭 필요한 때 시스템이 먹통이 된 것이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재발을 막을 후속 조치가 반드시 강구돼야 한다. 2019년 한 해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이 3만 건이고 그중 42명이 숨졌다.”

정인이의 경우 입양아였기에 입양기관의 사후 관리 책임도 있지 않나.

“입양기관의 사후 관리는 입양특례법에 따른 것으로, 입양 후 1년간 부모와 입양아의 적응 상태를 관찰하면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관찰 과정에서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가 있다면 당연히 신고할 의무가 있지만, 선의의 입양부모들이 마치 잠재적 아동학대 피의자라도 되는 양 권한 밖의 간섭이나 개입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역할은 수사권과 강제력을 부여받은 공적 기관의 책무다.”

이번 일로 인해 입양의 중요한 가치가 훼손돼선 안 된다는 여론이 크다.

“그렇다. 입양은 친부모와의 생이별로 가정을 잃은 아이에게 새 가정을 찾아주는 숭고한 일이다. 대부분의 입양아들은 새로운 가정의 품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똑같이 콩닥거리며 행복하게 자라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더 많은 아이들은 시설에서 살아간다. 그러하기에 입양은 버림받은 많은 아기천사들에게 우리 사회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다. 무슨 이유로든 폄훼되어선 안 된다.”

입양에 공적 책임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미 국가 책임 하에 입양업무를 관리한다는 기본 틀 위에서 재작년부터 보건복지부 주도로 본격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민간의 전문성과 정부의 공적 기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결합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입양이란 모성애를 바탕으로 세심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수십 년간 현장 경험을 축적해온 입양기관들의 노하우와 직업의식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자원이다. 따라서 입양 실무는 민간부문에 위임하고, 정부는 단계마다 정교한 일처리가 이뤄지도록 관리와 지원을 책임지는 거버넌스가 이상적이다.”

한편에는 입양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입양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과거 해외입양 장려정책에서 비롯됐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온 나라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고아와 혼혈아 보호에 역부족인 정부가 해결책을 해외입양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국내에 출생 자료가 아예 없거나 부실했기에 많은 입양아들이 성인이 된 뒤 뿌리를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숱했다. 그러한 정부차원의 입양 드라이브가 불과 30년 전까지 이어졌다. 어렵던 시절의 성장통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인권의식도 크게 높아진 요즘의 눈높이에서 보면 불편한 과거일 수 있다. 또 지난해까지 국내외 입양 건수가 25만명에 이르다보니 순탄치 못한 사례, 불행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그러한 요소들이 두루 축적돼 있다고 본다.”

입양기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 역시 적지 않다.

“입양기관을 마치 입양으로 돈벌이 하는 곳으로 잘못 인식하는 분들이 있다. 허가를 받았기에 입양기관으로 부르지만, 저희처럼 입양 외에 다양한 분야의 복지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비영리 사회복지법인들이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로부터 매년 회계 및 운영전반에 걸쳐 엄격하고 투명하게 지도점검을 받는다. 입양수입에 관한 오해도 있는 모양인데, 국내입양의 경우 정부로부터 경비의 일부를 보조금으로 지원받고 국외입양의 경우 현지 양부모로부터 수수료란 이름의 공인된 비용분담금을 받는다. 법인 운영과 각종 사업을 수행해나가기엔 많이 부족해서 후원금으로 어렵사리 충당하며 꾸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입양기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입양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언동은 자제되었으면 한다.”

지난해 9월 '의리맨' 김보성의 홍보대사 위촉식
지난해 9월 '의리맨' 김보성의 홍보대사 위촉식

입양 얘기가 길어졌다. 미혼모 지원 사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는 원가정에서, 엄마 품에서 자라는 게 최선이다. 많은 미혼모들이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양육을 포기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당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적지 않다. 그들이 안전하게 아이를 키우며 자립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돌보는 한부모가족 공동생활시설을 전국에 여섯 곳 운영 중이다. 또 시설 밖의 미혼모 지원을 위해 ‘꿈꾸는 가게’와 온라인 몰도 꾸렸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도 진행하고, 그들의 수기를 담은 책도 발간하고 있다. 다행히 한부모가족에 대한 후원이 과거에 비해 조금씩 늘어나는 분위기여서 희망적이다.”

임기 내 반드시 이루고픈 목표가 있다면? 또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은 장기 목표지만 발달장애아 치료시설을 세우려는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서울 강동구에 암사재활원을 운영하며 부모 없는 발달장애아 50명을 돌보고 있는데 수용 정원의 한계에 부닥쳐 있다. 그들은 잠깐이라도 손을 놓으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 같은 존재다. 꾸준한 특수치료·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설시설의 경우 비용 부담 때문에 발달장애아를 둔 웬만한 가정은 엄두를 못 낸다. 그분들의 안타까움을 덜어주기 위해, 한 아이라도 더 보살피기 위해 새 시설을 마련하고자 후원금 모금에 공을 들이고 있다. 뜻있는 분들의 작은 정성, 따뜻한 동행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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