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들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아동정책, 이번이 끝이길 바란다."

정익중 교수
정익중 교수

또 한 명의 아이가 학대로 사망했다. 부모가 아니라 악마를 만나고, 집이 아니라 지옥을 살다간 정인이 사건은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정인이는 학대로 후두부와 좌측 쇄골 등 전신에 골절상을 입었고, 대장과 췌장 등 장기들이 손상되어 처참한 상태로 사망했다. 정인이의 초기 환한 얼굴과 사망 직전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의 극명한 대조는 살려달라는 아이의 절규보다 간절했고, 뼈가 부러지고 내부 장기가 파열된 상황에서도 양부에게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넘어 죄책감까지 갖게 했다.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한다. 이 아이의 처참한 죽음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 달에 평균 2~3명의 아이들이 학대로 사망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달라진 것 없이 넘어간다면 또 다른 정인이 사건이 다시 일어날 것이고, 우리 역시 방조자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정인이 사건을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되짚어보면서 개선방안을 고민하고자 한다.

◇ 입양, 공공 아동보호체계로 편입해야

만약 입양절차에 스크리닝 과정을 강화한다면 악마를 걸러낼 수 있을까? 아이를 대신하여 입양부모를 선별하는 스크리닝 과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든 스크리닝 잣대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고의로 속이고자 하는 악마를 걸러낼 방법은 없다. 그나마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입양이 공공 아동보호체계 내로 편입되어야 하고, 스크리닝 과정에 전문성 높은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스크리닝 과정이 중요하긴 하지만 입양을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입양의 사후관리로 학대 정황을 찾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입양 후 일정 기간 사후관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은 입양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지 입양가정의 학대를 의심하여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출산과 마찬가지로 입양도 새로운 아이가 가정에 들어오는 것이므로, 쉽지 않은 적응과정이 필요하다. 출산과 입양을 동일한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며, 지금처럼 지나치게 구분해서는 안 된다. 출산과 입양 모두 지원이 필요하며, 이런 의미에서 사후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파양이라는 제도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입양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면 파양을 통해 친자관계를 종료할 것이 아니라, 친부모처럼 친권 박탈을 통해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

이번에 가장 많이 비난을 받았던 경찰 수사 부분은 만약 다른 경찰이 맡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정인이 사건의 경우 3번 신고가 있었다. 신고마다 수사팀이 바뀌었는데 이러한 수사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아동의 학대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이 몇 개월 사이에 수시로 변했다는 건 아동학대 전담 수사인력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혹은 아동학대 사건의 심각성이나 시급성에 대한 수사체계의 인식도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이라 판단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 아동의 학대 사건이 여러 차례 신고된다면, 이전 신고내용이 포함되어 집중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최초 아동학대 신고 시, 해당 아동을 담당하는 경찰 또는 수사팀이 지정되어 지속적인 사건 관리가 되어야 정인이 사건과 같이 3번이나 놓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 아동학대 전문성 갖춘 수사인력 필요하다

또한, 경찰이 아동학대 현장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원인으로 ‘아동 분리조치에 따른 민원·소송 우려’가 있었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가 수사 결과를 순순히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사한 경찰을 괴롭힐 수도 있다. 수사 결과에 따른 조치라 하더라도, 학대가해자로부터 쏟아지는 민원에 시달리는 동시에 직권남용, 독직폭행 등 온갖 죄목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경찰은 합리적인 사유로 학대아동에 대해 응급조치 등을 시행할 경우 정당행위로 간주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 면책 규정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아동학대 수사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수사 인력이 아동학대 분야에 장기근속할 수 있는 전담 체계를 갖추길 바란다.

만약 학대부모의 형량을 높인다면 달라질까? 처벌 강화는 국민의 법감정에 부응하고 경종을 울릴 수는 있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세계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에도 형량을 높여서 범죄를 해결한 적은 없다. 예를 들어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범죄율 차이는 거의 없다. 게다가 아동학대는 일반 범죄와 달리 학대부모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아동의 보호자이다. 만약 가해자의 성격만을 강조한다면 가해부모의 형량을 강화하는 것이 더 낫고, 아동학대 범죄에 관한 특례법을 따로 둘 필요 없이 형법으로 아동학대 범죄를 가중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보호자의 성격을 강조한다면 형량보다는 이 가해부모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교육, 훈련, 상담, 치료를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가해부모 상담, 치료,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하고, 이들을 법원의 판결과 상관없이 강제로 교육시키고 사례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왜 아이들은 학대부모와 제대로 분리되지 않을까? 분리하면 달라졌을까? 많은 사람은 피해아동을 학대가정에서 분리하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리조치는 아동 입장에서 해결의 시작에 불과하다. 원가정 보호의 원칙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대안이 마땅치 않아 문제가 많은 원가정에 피해아동을 남길 수밖에 없거나, 원가정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피해아동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는 점이 잘못된 것이다. 지금은 학대가정에서 즉시 분리해도 피해 아동을 보호할 시설과 인력이 충분치 않다. 특히 피해아동을 보호하고 숙식 등을 제공하는 아동 쉼터가 전국 76개소이며, 쉼터 한 곳당 평균 정원은 5~7명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최대 수용인원이 500여 명 정도인데, 아동학대 건수는 3만 건이 넘는다. 이미 전국 대부분의 아동 쉼터가 가득 차 있어 피해 아동을 더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 분리는 학대부모로부터는 구제되었지만 철저하게 준비되지 않은 사회로 내던져지는 셈이다. 이처럼 대안이 없으니 제대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분리하더라도 원가정에 빨리 복귀시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인이 사건도 신고시 사건화되었더라도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져 원가정에 남겨지거나 정인이법의 ‘2회 신고시 즉시 분리’가 도입되어 분리되었더라도 원가정으로 금세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 아동학대 관련 예산 285억원…복지부 총 예산의 0.03%수준

정치권이 분노하면 달라질까? 국민의 공분을 제대로 읽은 정치권은 같이 분노하며, 정인이법을 제정하였다. 지금이라도 제정되어 다행이다. 하지만 정인이법의 내용은 오래전부터 주장해오던 것인데 정치권에서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어 당황스럽다. 한편으로 정부나 정치권의 현재 대응을 보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보여주기식 정책이나 졸속 입법은 실효성이 없다. 그리고 법만 만들어서는 변화가 없다. 피해 아동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시스템만이 아니라 예산과 인력 부족이다. 따라서 법안에 걸맞은 예산과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아동학대 방지와 관련한 2020년 중앙정부 예산은 약 285억 원으로, 보건복지부 총예산인 82조 5,269억 원 대비 0.03% 수준이다. 이는 선진국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한 명의 사회복지사가 너무 많은 아동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도 문제이다. 한 명의 사회복지사가 수십 건의 학대가정을 모니터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학대부모에게 욕먹고, 잘못하면 국민에게 욕먹으면서 근무하는데, 처우까지 열악하다. 버티지 못하고 이직이 잦은 탓에 근속연수도 낮고 전문성 축적도 어렵다. 아동정책은 아동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아동이 학대로 사망할 때마다 법안을 추가하지만, 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할 때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정치권의 분노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정부 예산 중에서 아동학대 예산이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지금처럼 예산과 인력이 확보되지 않은 채 법으로 절차만 강화하는 것은 현장을 더 힘들게 하고 그나마 있던 전문가를 떠나게 할 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정인이 사건 진상조사 통해 아동학대 문제 개선”

이번 정인이 사건에서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도 존재한다.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했던 어린이집 교사, 소아과 의사, 일반 시민이 있었기에 정인이는 살아날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현 시스템이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을 뿐이다. 정인이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고 가해부모는 살인죄로 단죄될 것이다. 하지만 정인이 같은 아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공 진상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클림비 보고서, 이서현보고서 등과 같은 진상조사 보고서에 드러난 제도와 시스템의 취약점을 다시 점검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이러한 진상조사를 민간이 진행해서는 예산과 인력 문제에 대한 정확한 대책을 내놓을 수 없고, 개선 여부를 환류 절차를 통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공 진상조사로 진행되어야 한다.

아동학대 문제는 원래 쉽지 않다. 부모를 처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아동을 부모로부터 분리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법이나 시스템 자체가 이상하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개선점이 없는 정책은 없듯이 아무리 잘 되어 있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분명히 허점은 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문제에 실제 경험과 당사자의 어려움에 대해 경청하고 많이 고민하며 충분히 논의함으로써 정책이나 제도가 더 나아지도록 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진지하게 진상조사하고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제대로 준비한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분노조차 잊은 사회는 더 개선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분노하는 마음에 변화의 씨앗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직도 학대로 아동이 죽어가고 분노만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면 이는 우리의 실천이 부족한 것 아닌가. 종전에 해온 방식을 반복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고 잘못된 것을 보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비겁하다. 변화를 만들 힘이 있음에도 외면하는 것은 진정한 악이다.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일어난 일에 대해 반성하고 교훈을 얻는다면 분명히 개선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는 꿈꾸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번엔 아동학대 문제를 근절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지고 제대로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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