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도 ‘고향사랑 기부금제도’ 도입을 위한 법 제정이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의 고향사랑 기부금 제도와 유사한 일본의 ‘후루사토 납세 제도’에 대해 소개하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지역격차와 지방 소멸 위기…고향세 도입

2014년 일본 국토교통정책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에는 현재 1750여 개 기초지자체 중 896개가 소멸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중 523개 지자체는 인구가 1만명 이하로 격감해 소멸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지방의 인구감소는 특히 20~39세 여성 수의 감소와 수도권 등 대도시로의 진학·취업을 위한 젊은 층의 인구 유출이 주원인이며, 이에 따라 대도시와 지방의 경제적 격차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대도시로의 인구 쏠림과 지역격차 확대를 막고, 전국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2015년부터 일명 ‘지방창생’ 5개년 전략이 추진돼 왔지만,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은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어 지역격차 해소와 균형 발전을 위한 정부의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후루사토 납세(고향세)는 일본의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 노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고향세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제도의 전체상과 운영현황, 그리고 해결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일본의 후루사토 납세(이하, 고향세)는 지방자치단체에 납세의무자가 기부를 하면, 일정 금액의 세금을 공제해 주는 제도로 후루사토 기부금이라고도 한다. 구체적으로는 주민세 납부자가 기부하고 싶은 지자체를 임의로 선택해서 기부를 한 다음, 현재거주 중인 지자체에 기부금액을 신고하면 주민세와 재산세를 공제·환급해 주는 구조다. 더불어 세금공제 등과는 별도로, 기부금을 받은 지자체가 그 답례로 지역 특산품 등을 기부자에게 제공한다. 답례품 제공은 의무규정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가 기부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지정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서도 고향세 기부가 가능하다. 고향세 쇼핑몰에서 각 지자체가 준비한 답례품을 보고, 마음에 드는 지자체에 기부금을 결제하면 세금 신고서와 함께 답례품이 집으로 배송된다. 한편, 결제 과정에서 노인, 아동, 장애인 복지, 교육, 지역 환경 정비 등 자자체가 제시한 선택지 중에서 기부금 용도를 기부자가 선택할 수 있다.

한편, 앞서 말했듯 답례품 지급이 필수는 아니지만, 답례품이 기부행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지자체 간 답례품 경쟁이 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답례품 과열경쟁을 제재하기 위해 2019년 법 개정을 통해 ‘답례품은 기부금의 30%를 넘으면 안된다’는 규정을 신설하고, 지정 제도를 도입해 과도한 답례품 지급이나 부적절한 운영이 적발될 경우, 고향세 지정단체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운영규정을 강화했다.

고향세 운영현황 및 찬반 양론

고향세는 2006년 후쿠이현 지사가 지방의 재정 악화 개선을 위한 ‘고향기부금 공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2008년 지방세법 개정을 통해 ‘기부금 세액공제’가 신설되면서 제도화됐다. 여담이지만, 현 일본 총리인 스가 요시히데가 당시 고향세 제도화를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고향세는 도입 당시부터 많은 찬반 여론이 제기돼 왔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세금이 쓰이는 용도와 분야를 납부자가 선택·지정 가능 △고향을 떠나 살더라도 지역사회에 공헌 가능 △지역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채택해 지역 경제 활성화 △지자체 지명도를 높이고 관광산업 활성화 △지역공헌 의식과 나눔 문화 확산 등을 이점으로 들고 있다.

한편, 반대측 의견으로는 △행정서비스 수익자인 주민이 세금을 부담한다는 ‘수익자 부담원칙’에 위배 △고향세를 통해 얻는 세금보다 유출되는 세금이 많은 지자체는 공공서비스 제공에 차질 우려 △근본적인 지방 활성화와 격차 해결을 위한 대책으로는 부족 △기부자의 관심이 답례품에 집중돼 지역 균형 발전과 고향에 대한 기부로 이어지지 않음 △기부는 대가·보상을 바라지 않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답례품은 실질적으로 기부에 대한 대가·보상에 해당함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해왔다.

이러한 찬반 주장은 대도시와 지방도시의 입장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즉, 재정 자립도가 높은 대도시(특히 수도권)는 고향세로 인해 세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고향세 운영을 반대하는 입장이고, 지방은 상대적으로 세수 증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지하는 입장이다.

고향세 납부 현황을 보면, 2019년 기준 납세금액은 약 4875억 엔, 납세건수는 2333만 건에 이른다. 지역별 기부금액 순위를 기초지자체가 소속된 광역지자체별로 보면, 1위는 홋카이도로 660억 엔을 기록했고, 다음으로 가고시마 현 311억 엔, 사가현 264억 엔, 미야자키현 264억 엔, 오사카부 254억 엔 등의 순이다. 홋카이도는 해산물을 특산품으로 하는 기초지자체가 많고, 2위 가고시마현은 소고기, 돼지고기로 유명한 지역이 많다. 3위 사카현은 육류와 과일, 쌀을 답례품으로 많이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납부건수에서도 어류·해산물, 육류, 과일을 답례품으로 제공하는 지자체가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해 인기 답례품으로 평가됐다.

고향세 납부자는 2019년 기준 406만명으로, 주민세 납부의무자 약 5100만명 중 7.9%에 해당한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5년 이후 납부자가 크게 증가했는데, 이때부터 납세액 기준을 두 배로 늘리고, 세금신고를 간소화하는 등의 이용 증진을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향후, 만약 납세의무자 전원이 고향세 제도를 이용할 경우, 납부액 총액은 무려 2조598억 엔에 이른다는 점에서, 지역 활성화 재원으로써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납부자 406만명…제도 운영상 문제점은?

고향세가 지역 활성화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다음과 같은 운영상 과제들도 지적되고 있다. 우선, 고향세는 지자체 간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지적이다. A라는 자자체가 납부자를 많이 확보하면, B라는 지자체는 상대적으로 그만큼 세수입이 줄어드는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기부금을 많이 획득하는 지자체와 그렇지 못한 지자체 간에 새로운 격차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세 운영적자에 대해서는 지방교부금을 통해 약 75% 까지 정부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재정 자립도가 높은 지방교부금 불교부 단체(2019년 기준 85개 지자체)에 대해서는 지원금이 없기 때문에 기부금 전액이 세입 적자로 이어진다. 동경도, 요코하마시, 나고야시 등 대도시들의 세입 감소는 제도 설계 단계에서도 예상 혹은 의도한 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향세는 지자체 간에 경쟁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인구 유출이 심각한 지방 소도시에서도 고향세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정부 지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입 감소로 이어져, 고향세 실시가 지방재정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2019년 고향세 운영실적을 보면, 지자체 전체의 34%(604개 지자체)가 적자를 기록했고, 정부 지원금을 가미하더라도 전체 21%(373개 지자체)가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한편, 제로섬 게임에서 압승을 거둔 지자체도 보인다. 예를 들면, 2018년 기부금액 1위를 차지한 오사카부에 위치한 이즈미사노시의 경우, 전국 기부금 총액의 약 10%에 달하는 498억 엔을 달성해, 재정지표가 개선되면서 재정파탄 위험 지자체라는 오명을 벗는 쾌거를 이뤘다.게다가 거액의 기부금을 다 사용하지 못하는 바람에 기금을 만들어 적립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와는 별개로 이 시에서는 답례품으로 지역 특산품이 아닌 항공권 포인트, 쇼핑몰 할인권, 보석류를 지급하는 등 지나친 답례품 제공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2019년부터는 고향세 지정단체에서 제외됐고, 현재 정부 측과 지정 취소의 적법성을 둘러싸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고향세에 대한 답례품 제공과 관련된 문제는 지자체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계속해서 운영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고향세가 도입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향세 제도의 도입 취지는 ‘지금은 고향을 떠나서 살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기여할 수 있는 세제가 있었으면’ 하는 여론이 제도화 논의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현 제도에서는 자신의 고향이 아닌 다른 지자체에도 기부가 가능토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의 고향에 기부를 하는 경우보다 답례품이 매력적인 다른 지자체를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고향세가 ‘기부’가 아니라 지역상품 ‘소비’의 성격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다양한 지역 특산품들이 도시지역에서 유통, 소비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활성화 위한 마중물 되기를

일본의 고향세 운영현황과 과제에 대해서 살펴봤다. 고향세가 대도시에서 농어촌 지역 등으로 재정이 이동하는 파이프 역할을 하고 있고, 많은 지자체들이 기부금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 특산품을 개발하고 홍보에 나서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과도한 답례품 경쟁, 기부금의 지역 편차 심화, 제도 도입 취지의 변질 등 해결과제도 안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향세에 대한 구상과 제도운영에 있어서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도시에서 농어촌 지역으로의 자금이동에 성공하더라도, 일부 지역에 편중되거나 그로 인해 다른 지역의 상대적 손실이 발생한다면 또 다른 지역격차와 불평등 논란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 고향세가 안정적으로 도입·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노력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막연히 ‘내 고향이니까 기부한다’는 마음을 넘어서,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을 느낄 수 있도록 지역특성을 살린 특산품, 관광명소, 지역문화 등을 발굴·개발하고, 확산시키려는 일련의 지역 브랜딩 전략이 요구된다. 이와 더불어, 기부금의 사용처와 목적을 명시하고, 지출 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기부자 확보와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에야말로 고향사랑 기부금 제도의 법제화 논의가 원활히 진행돼, 지역 균형 발전의 마중물로 기능할 수 있는 고향세가 도입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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