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형평, 혁신-안정 그리고 세계화-지역화 간 균형을 찾아서

서상목 회장
서상목 회장

근대사를 살펴보면 정책이 균형을 상실할 때 위기가 발생했고, 위기 대책은 새로운 균형을 되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으로 대표되는 자유시장경제는 산업혁명이라는 인류 역사를 새로 쓰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지나친 확신은 경제대공황이라는 위기를 초래하였다. 대공황 타개책으로 제시된 미국 루즈벨트 행정부의 이른바 ‘뉴딜 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었다.

첫째로 케인즈 경제학에 근거한 재정 확대책은 시장과 정부 기능 간 균형을 모색하는 시도였고, 둘째로 금융기관의 활동을 규제하고 예금자를 보호하는 제반 조치는 금융시장의 활력과 안정 간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이었으며, 셋째로 사회보장법을 제정하고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일련의 정책은 새로운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경제적 효율과 사회적 형평 간 균형을 추구하려는 대책이었다.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2008년 세계금융 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 역시 1929년 경제대공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음 세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경제사회적 균형을 찾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는 경제적 효율과 사회적 형평 간 균형을 모색하는 것이다. 1980년 이후 세계화와 기술혁신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개인은 물론 국가간 임금격차와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술혁신 그리고 세계화의 물결을 잘 활용하는 개인 및 국가 그리고 그렇지 못한 개인 및 국가 간 임금 및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은 격차 확대에 따른 사회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응책으로 새로운 사회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기본소득제’를 그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마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둘째는 혁신과 안정 간 균형을 모색하는 것이다. 3차 산업혁명과 이를 이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슘페터는 시장경제의 특징을 지속적 혁신과정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창조적 파괴’라고 불렀다. 이는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면 지금까지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무용지물이 되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경제나 사회 전체로는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되나 파괴의 대상이 되는 기업이나 산업에는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 간 격차가 벌어지고 이로 인한 사회정치적 문제 발생이 불가피한데,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 역시 새로운 코로나19 위기를 맞은 우리 모두의 당면 과제이다.

셋째는 세계화와 지역화 간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1차 산업혁명 이후 지속된 세계화 추세는 IT혁명으로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급속한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가 크게 완화되면서 금융시장이 새로운 세계화 물결의 진원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세계화의 급진전을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2005)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위기는 세계화 추세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국가 간 인적 및 물적 교류가 어렵게 됨으로써 국제교역과 협력에 기반한 세계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에 더해, 최근 코로나19 위기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영국 존슨 수상의 ‘브렉시트(Brexit)’ 등 고립주의 추세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공동체 복원 등 지역화에 대한 수요 역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대 이후 국제사회에서 균형을 강조하는 경제복지 패러다임으로 다음 세 가지가 제시된 바 있다. 첫째는 복지국가의 위기 극복방안으로 ‘90년대 후반 영국을 중심으로 제시된 ‘일자리 복지(Welfare to Work)’ 개념이다. 이는 복지 수혜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복지증진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달성해보자는 것으로 지금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다수 선진국에서 채택되고 있는 정책대안이다. 둘째는 ‘9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되어 북유럽국가로 확산된 ‘유연안정성(flexicurity) 정책’이다.

이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로 경제활력을 유지하면서 튼튼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것으로 노동시장 경직성이 국가경쟁력 확보에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는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90년대 중반 이후 유엔과 세계은행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과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이다. 이는 2015년 반기문 UN 사무총장 주도로 채택된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 형태로 모든 UN 회원국이 목표 이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새로운 추세를 종합하여 경제와 복지의 융합을 의미하는 『웰페어노믹스(Welfarenomics)』 라는 대안을 2013년 책자(2013, 북코리아)로 출간한 바 있다. ‘웰페어노믹스’는 복지와 경제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라는 인식에 기초하면서, ① 정부의 국가전략 수립 기능을 강화하고, ② 기업 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며, ③ 시민사회 활성화로 공생 발전의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함께 성장하는 자본주의’를 구현하자는 의지이다. 동시에 ‘웰페어노믹스’는 ① 일자리가 최선의 복지라는 생각으로 일자리 복지 기반을 확고히 하고, ② 복지 분야에서도 기업가정신 함양을 통해 사회혁신을 구현하며, ③ 각종 경영 기법을 활용하여 복지경영 전통을 확립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필자가 제시한 여러 정책 제안이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 세계화 기반이 흔들리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새로운 국가 발전 패러다임을 짜는데 도움이 되기 바란다. 그로 인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우리 경제가 새로운 활력을 찾고, 우리 사회가 통합과 균형의 길을 가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필자의 최근 저서 『균형의 시대』(2020, 이담북스)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균형의 시대
균형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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