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지혜’는 늘 위기의 순간 배움보다 큰 힘을 발휘해

한송이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
한송이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들도 자신에게 맞는 분야가 있다. 아동복지현장에서 쭉 종사하다가 10년 만에 우연한 기회에 장애인복지로 전향했는데, 드디어 적성을 찾았다며 기뻐하던 선생님도 본적 있다. 남들이 보기엔 다 똑같이 ‘착한 일하는 사람’ 같겠지만, 사회복지사에게도 선호하고 적성에 맞는 ‘현장’이 있다. 그리고 나는 햇수로 8년째, 나에게 (아직까지는) 너무 잘 맞는 노인복지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봉사활동이나 후원을 아동, 장애인 분야에서만 해봤던 내가 노인복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 현장실습이었다. 취미·여가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위해 복지관 강당에 어색하게 앉아있는데, 어린 학생들이 노인들만 있는 곳에 어쩐 일이냐며 한두 마디씩 말을 걸어주는 할머니 모습이 너무 친근하고 좋아서, 그 이후로 어르신들과 함께 현장에 가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운 좋게도 노인복지관에서 쭉 근무 해오고 있다.

오고 가는 ‘정’과 ‘공동체’의 힘을 잘 아는 분들

어르신들과 일하다 보면 소소한 재미가 있다. 악수하는 척 다가와 남몰래 손에 쥐여주는 사탕 몇 개, 여름 때마다 직접 써서 주시는 붓글씨 빼곡한 한지 부채…. 아마 노인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라면 어르신들이 주신 간식이 책상 한쪽에 수북할 것이라 장담한다. 누구는 오지랖이라 할 테지만, 어떤 세대보다도 사람 사이 오고 가는 ‘정’과 그에서 비롯하는 ‘공동체’의 힘을 잘 아는 분들이 어르신들이라고 생각한다.

몇 해 전 이맘때 즈음 있었던 일이다. 350여 명의 어르신을 모시고 야유회를 간 적이 있었다. 그날은 지역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타 관람객의 방문도 예상이 되기에 직원들이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자유 관람 시간이 주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치 눈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폭우가 갑작스레 쏟아졌다. 사회복지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어르신들을 찾으러 다녔지만 흐린 시야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어르신이 입은 단체복마저 알아보기 힘들었다.

45인승 버스만 열 세대, 당장 주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명단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머릿수만 채워 버스를 한 대씩 내보내기 시작했다. 한분의 어르신이라도 탑승하지 못하거나, 혹여나 폭우에 안전사고가 발생할까 봐 초조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넓은 곳을 비 쫄딱 맞으며 우리와 함께 뛰어다닌 어르신들이 친구들을 한두 분씩 모셔오기 시작했다. 이미 안전하게 버스에 탑승해 선발대로 출발한 어르신들이 옆 사람 붙잡고 친구의 친구까지 추적하며 버스에 탑승하지 못한 어르신을 찾아냈고, 동선까지 신속하게 파악하여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어르신들에게 연락한 결과였다.

어르신들은 ‘배운 것도 없는데’라는 말을 종종 하시곤 한다. 특히 배움이 짧은 고령의 어르신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하지만 학력을 떠나, 어르신들이 그 세월 자체로만 쌓아 온 인생의 지혜는 늘 위기의 순간에 배움보다 큰 힘을 발휘했다.

노인복지현장에 있다 보면, 사회복지사들끼리 머리를 맞대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어르신의 몇 마디가 실마리가 되어 술술 풀리는 순간도 경험하게 된다. 나는 이런 순간에, 내가 아직 걸어가 보지 못한 나의 노년에 희망을 가지게 된다.

한송이 사회복지사는 “누구나 어르신과 자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애틋하고 짠하며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송이 사회복지사는 “누구나 어르신과 자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애틋하고 짠하며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르신들이 짠하고 애틋하고 좋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다. 길고 긴 인생에서 지는 싸움을 반복한 끝에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타인에게 폭언이나 폭력 같은 잘못된 방법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어르신들도 있다. 1년 차 시절, 그런 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슈퍼바이저가 했던 말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어르신들이어서 힘든 게 아냐. 그런 사람들은 어느 집단에나 있어. 어르신들은 왜 저럴까 하지만, 사실 우리도 그 상황에 놓이면 똑같거든. 1%의 힘든 사람들 때문에 99%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

또, 몇 년간 복지관에서 동고동락하던 어르신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자주 마주해야 하는 것도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사탕을 보면 ‘복지관 가서 송이 복지사 줘야지’하며 주머니에 꾹 눌러 담아 챙겨 오시는 어르신의 마음을 알아서 더 그렇다.

그럼에도 “어르신하고 일하는 거힘들지 않아?”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여전히 “그래도 재밌어”하고 대답한다. 꼭 복지관 안이 아니어도 그렇다. 인적 드문 공터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 나누실 때, 버스나 엘리베이터에서 증손주 같은 어린아이들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으실 때, 스마트폰을 들고 서툴고 떨리는 손짓이나마 아내의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려고 한참을 서 계실 때, 나는 어르신들이 짠하고 애틋하고 좋다.

비단 내가 사회복지사이거나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어르신의 매력을 알아갈 기회가 많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어르신과 자주 만날 수 있다면 같은 생각을 하게될 거라고 확신한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취약계층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끼고, 또 뉴스로 접한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하지만 격변의 시대를 강건하게 지켜온 우리 어르신들은 다음, 또 다음의 시대도 지금까지처럼 잘해내시리라 믿는다. 또 이러한 믿음은 오늘 하루도 나를 사회복지현장에서 힘 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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