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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사회복지’
  • 승인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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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상처받고 지치지만 결국 사람에게 치유 받아

진로가 명확하지 않던 고3 가을, 남들이 다 진학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성적에 맞춰 사회복지과를 선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사회복지사=좋은 일 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봉사 정신이 투철해야만 할 것 같고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던 사회복지를 거부감 없이 택했던 것은 어릴 적 동네복지관과 공부방을 이용했던 익숙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 전공과목을 배우면서 사회복지가 사람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배우고 다루는 학문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도대체 이 이론들은 다 써먹는 날이 올 것인지, 프로그램 개발은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전공을 옮길까 수많은 고민을 하며 대학 생활을 하던 나는 결국 ‘사회복지사가 뭐 하는 사람인데?’라는 질문의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졸업했고, 나름 전공을 살리겠다고 마음먹고는 얼마 후 좋은 기회를 통해 복지관에 입사하게 됐다. 대학에서 수없이 많은 이론 공부와 프로그램 개발 과제와 실습을 거쳤지만 입사하니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내게 주어지는 업무는 이제 ‘실전’이었다.

사회복지사는 만능이어야 한다

입사 후 청소년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프로그램만 잘 운영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학생들을 알아가기 위해 상담은 필수였고, 부모님과의 관계 유지도 필수였다. 좋은 프로그램과 강사를 연계하기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하며 발로 뛰어야 했고, 강사를 구하지 못하면 직접 프로그램 강사가 되어야 했다.

더 많은 청각장애인에게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눈에 띄는 홍보물을 만들어야 하고 통역 봉사원을 구하지 못하면 사회복지사와 통역사의 일을 동시에 담당하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수제 선물을 준비하고, 후원을 받고자 을의 입장이 되어 비굴해지던 순간도 있었다.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우리 아이들이 차별받는 상황에 놓이면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함께 힘을 실어줬고, 장애에 대해 아직도 성숙하지 않은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는 일도 많이 있었다.

‘참 별일을 다 한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동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들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결국 ‘사회복지사는 만능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사회복지사는 그저 좋은일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사회복지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로 정의되고 비친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면 “아, 그런 일도 해?”하며 놀라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할 말은 없다. 내가 기억하던 어린 시절 복지관 선생님들의 모습은 그저 우리랑 잘 놀아주던 선생님의 모습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을 만나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사회복지사의 지극히 작은한 부분이다.

일보다 사람을 마주하는 감정노동자

최근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이슈가 되면서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서도 이 단어가 많은 공감을 얻었다. 나 또한 그 말에 많이 공감하는 바이다. 사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 울리는 전화 중 복지관에 항의하는 전화를 심심치 않게 받을 수 있다.

오죽하면 사회복지계에도 블랙컨슈머라는 말이 생겼을까. 뿐만 아니다. 퇴근 시간 이후 개인번호로 오는 전화들도 한몫한다. 사전 공지된 사항에 대한 문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해달라는 무리한 요구, 약속된 시간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내용 등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업무와 마주하게 된다.

일도 중요하고 나의 삶도 중요한데 어김없이 퇴근시간, 회식 도중, 휴가 중, 친구를 만나는 중에도 적지 않은 전화가 걸려온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내용이면 다행이다. 갑작스러운 항의와 무례한 언행은 나의 감정마저도 지치게 한다.

개인과 관련된 일이었다면 쉽게 거절할 수 있는 일도 기관과 이용인의 입장이 되거나 기관과 후원처의 입장이 되면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고 나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도 일이지만 결국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 사회복지사에게 감정노동이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에서 사람으로’

사회복지 현장에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사람 때문에 울고 웃게 되는 일도 참 많다. 그렇게 사람에게 상처받고 때론 사람 때문에 지치지만 그럼에도 내가 아직 이 길을 가고 있는 이유 역시 사람 때문이다.

학생들과 한바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낸 것처럼 몸에서 기운이 빠져 나간다.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이 떠난 교실을 정리하고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정적을 가득 채우며 시끄럽게 울린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죠? 근처 지나가고 있는데 저희 애가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다고 해서요. 혹시 복지관에 계실까 해서 연락드렸어요.”

잠시 후 복지관을 방문한 아이의 얼굴에는 반가운 미소가 가득하다. 그동안의 안부를 전하며 보고 싶었다는 말을 되뇌는 아이를 보면 나 또한 자연스레 미소 짓게 된다. 정말이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방금까지만 해도 지쳐서 힘들어 쓰러질 것 같았는데 아이의 미소에, 보고 싶었다는 말에 다시 충전되고 있다.

담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가 “항상 감사하고 복지관이 있어 너무 든든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라는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 나의 일이 가치 있음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