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아이휴센터’, 초등 저학년 방과 후 틈새돌봄 책임져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0단지에 위치한 아이휴센터 1호점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0단지에 위치한 아이휴센터 1호점

"선생님! 제 상추 좀 보세요! 엄청 자랐어요.”

“어머! 우리 다음 주에 상추 따먹어도 되겠다.”

“상추 따면 또 자라요?”

“그럼〜 또 자라지!”

4월 23일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0단지 아파트 1층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은 계단을 오르니 3〜4명의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작은 텃밭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이름이 적힌 텃밭에 정성스레 물을 주며 한바탕 수다를 떨다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오후에도 생기 가득한 이곳은 지난해 10월 문을 연 ‘아이휴센터’다. 노원구는 지난해 초등학교 저학년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함께 돌봄센터인 ‘아이휴센터’를 개소했다. 구청에서 20평 남짓한 1층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다.

한 달 이용료 2만원…저녁 8시까지 돌봄 제공

‘아이휴센터’는 노원구의 ‘다함께 돌봄’ 브랜드다. 소득과 무관하게 맞벌이·다자녀·한부모가정의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주로 이용하고 있으며,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엄마가 취업준비 중이거나 몸이 아파 긴급돌봄이 필요한 경우에도 돌봄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방과 후 학원을 전전하거나 홀로 시간을 보내던 맞벌이가정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을 보호하고, 불필요한 사교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줄여준다.

학기 중인 지금은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운영되는데, 5분 거리에 있는 동일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각자의 일정에 맞춰 센터를 찾는다. 주로 방과 후 돌봄이 끝나는 3〜5시에 가장 많이 이용하며, 간식을 먹고 1〜2시간 쉬다 학원에 가거나 부모님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가고 있다. 한 달 이용료는 2만원으로, 주로 아이들의 간식비로 사용되고 있다.

정원이 30명인 이곳에는 현재 27명의 아이들이 이용하고 있다. 좁은 공간이지만 틈새돌봄이기에 가능하다. 센터장 1명과 돌봄교사 4명이 교대로 아이들의 돌봄을 책임지고 있는데, 아이들의 돌봄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해 보다 많은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노원구는 지난해 초등학교 저학년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함께 돌봄센터인 ‘아이휴센터’를 개소했다.
노원구는 지난해 초등학교 저학년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함께 돌봄센터인 ‘아이휴센터’를 개소했다.

안전하게 쉬고, 친구와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어

맞벌이가정의 경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종일 무상보육이 가능하지만, 당장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돌봄 공백이 생긴다. 방과 후 돌봄교실이 있지만 대부분 5시면 문을 닫고 그마저도 3학년부터는 이용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돌봄 공백에 가장 취약한 시기가 바로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작년 겨울방학 즈음부터 센터를 다니기 시작한 서율(10·여)이는 주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방과 후 센터로 와서 간식을 먹고 자유롭게 놀다가 요일별로 피아노학원, 영어학원을 갔다 집으로 간다. 센터를 다니기 전에는 태권도와 미술학원까지 다니며 부모님 퇴근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서율이는 “학원 가기 전까지 친구들과 놀 수도 있고, 돌봄에서는 활동지를 써야하는데 여기서는 자유롭게 놀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센터 프로그램은 주로 ‘놀이’와 ‘쉼’을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센터에 오면 가장 먼저 두 권의 책을 읽는다. 필요한 경우 독서지도를 받고 있지만, 책을 읽고 따로 의견을 나누는 등 의무적인 과정은 거치지 않는다. 책을 읽고부터는 자유시간이다. 간식을 먹고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하는 등 각자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낸다.

요일마다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해 요리활동, 미디어교육 등도 진행하고 있지만 이 또한 의무는 아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고, 함께 놀아주거나 안전하게 돌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금옥 센터장은 “아이들의 돌봄은 주로 정형화된 학습 프로그램이 대부분인데, 우리 센터는 말 그대로 아이들이 쉬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아이들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사무실 공간에 와 누워서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가는 아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만 읽다 가는 아이, 친구들과 삼삼오오 보드게임을 즐기는 아이 등 아이들은 매일 스스로 원하는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놀이와 쉼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다 보니 처음에는 학부모들의 반응이 우려되기도 했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노원구청 아동청소년과의 공해정 주무관은 “무엇보다 아이가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것에 목적을 뒀다”며 “학부모들이 좋아할지 우려했는데,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들어보니 ‘아이들의 감성적인 부분을 돌봐줘서 좋다’, ‘아이가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늘 표정이 밝아서 좋다’고 해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이들은 돌봄이 필요한 시간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부모는 마음 놓고 퇴근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것이 아이휴센터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이휴센터는 ‘놀이’와 ‘쉼’을 위주로, 아이들이 원하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아이휴센터는 ‘놀이’와 ‘쉼’을 위주로, 아이들이 원하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퇴근이 늦어져도 마음의 여유 생겨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은정(44)씨는 지난해 첫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돌봄 사각지대에

놓였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어린이집에 보낼 때는 퇴근시간까지 맡길 수 있었는데, 초등학교는 방과 후 돌봄이 끝나는 5시부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저녁돌봄이 있지만 참여하는 아이가 없어 선택지는 학원뿐이었다. 그나마도 정시퇴근을 하면 다행인데, 일이 늦어질 때면 학원에 부탁해 수업이 끝나도 아이가 학원에서 기다리거나, 동네 지인에게 돌봄을 부탁했다. 퇴근이 늦어지면 불안했고, 여기저기 매번 부탁하는 것도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던 작년 10월,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휴센터’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보고 설명회에 참석했다. 맞벌이가정 자녀를 돌봄이 필요한 틈새시간에 돌봐준다는 것이었다. 당장 11월부터 첫째를 아이휴센터에 보내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데리러 갈때면 오히려 더 놀다 가고 싶다고 조르기도 한다. 중간에 간식도 줘서 저녁밥을 늦게 주더라도 미안함을 조금 덜었다. 올해부터는 연년생인 둘째도 초등학교에 입학해 지금은 두 아이의 방과 후 돌봄을 아이휴센터에서 책임지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조영아(42)씨 역시 매일 일이 끝나면 센터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간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센터에 보낸 이후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집에서 가까운데다, 동네친구를 사귈 수 있어 아이가 더 좋아한다. 일 때문에 아이와 많이 놀아주지 못하는데, 센터에서는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교사들이 함께해줘서 고맙다. 무엇보다 아이가 편하게 놀고, 먹고, 쉴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만족도가 높다.

노원구, 2022년까지 36곳 확충…지역돌봄체계 구축

이처럼 학부모에게는 돌봄 공백을 메워주고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고마운 곳이지만, 처음 센터가 들어설 때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공해정 주무관은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다 보면 소음이 발생되고, 안전의 우려가 있어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다”며 “입주자 대표의 적극적인 지지로 학부모 의견을 수렴하고 동의서를 받아 지역주민을 설득해 센터 문을 열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1호점인 이곳이 좋은 모델이 돼서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단지에 활기가 돌아 지역 주민들도 따뜻한 시선으로 반겨주고 있다. 다른 단지에서도 학부모들로부터 센터 개설 요청이 많이 오고 있다. 공릉동의 한 아파트는 주민요구에 따라 관리동을 무료로 임차해주겠다는 연락이 와, 오는 7월에 센터 문을 열 예정이다.

노원구는 올해 현재 4곳인 아이휴센터를 16곳으로, 2022년까지 총 36곳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 센터가 확충되면, 2022년에는 노원구에 거주하는 맞벌이가정의 모든 초등 저학년 아동은 아이휴센터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아이휴센터를 통해 다양한 돌봄 수요에 대응하는 지역중심의 돌봄체계를 구축해 ‘한 아이도 놓치지 않고,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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