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피해자가 사건해결 과정에 참여…재통합 추구

미국에서 ‘가정폭력’은 피해자의 현재 배우자나 전 배우자 혹은 연인에 의해 발생하는 위협과 폭력을 포함하고 있다. 폭력에는 신체적인 위해, 강제 성관계, 고립감이나 위협 등의 감정적 조종, 경제적 협박, 이민 관련 협박(이민자인 경우) 등이 해당된다. 또한, 성적학대와 아동학대도 있다. 아동학대에는 과도한 체벌을 포함해 단순 사고에 기인하지 않는 상처 등의 신체 학대, 유기, 성적학대, 감정적 학대 등이 있다.

모든 경우에 있어 가정폭력, 성적학대, 아동학대는 미국 내에서 불법이며,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나이, 민족, 이민지위 및 시민권지위에 상관없이 법적으로 폭력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다.

2017년 전미가정폭력조사에 따르면 약 36%의 여성과 17%의 남성이 평생 동안 1번 이상 신체접촉 성폭력을 경험했다. 각 주마다 여성은 29.5~47.5%, 남성은 10~29%까지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약 15.8%의 여성과 5.3%의 남성이 평생 한번 이상 공포를 느끼거나 누군가 자신을 해하려한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스토킹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과 남성 모두가 겪었던 피해유형은 가해자로부터의 원치 않는 전화, 음성메시지, 문자메시지가 온 경우, 집, 학교, 직장 등에서 가해자가 예기치 않게 나타난 경우, 그리고 가해자가 자신을 지켜보거나 미행한 일 등이 포함됐다. 68%가 넘는 다수의 여성이 이들로부터 협박이나 신체적 위해를 당한 것으로 보고했고, 주로 현재의 배우자·애인이나 전 배우자·애인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피해자들은 주 가해자가 남성이라고 보고했는데 강간 및 강간시도의 경우 각 주마다 91~100%, 강제 추행은 87~100%가 남성 가해자였다. 강간 혹은 강간시도의 피해를 입은 남성피해자의 경우 86.5%가 가해자를 남성으로 지목했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남녀 모두가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여러 질병에도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천식, 과민성대장증후군, 두통, 만성 통증, 불면증이 뚜렷하게 높았으며 업무능률, 신체건강 및 정신건강 저하를 보다 많이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폭력방지법 제정과 회복적사법 프로그램

미국에서는 1994년 여성폭력방지법(VAWA: The Violence Against Women Act)을 제정해 가정폭력을 포함한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성폭력방지법 제정 이전에는 가정폭력이 발생하더라도 가정을 지키기는 것을 전제로 했고, 경찰이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를 중재하기도 했으나, 법제정 이후 가해자의 법적책임을 강화하고 피해자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경찰 등 법집행기관의 권한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체포우선주의를 채택해 가정폭력 가해자를 의무적으로 체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경우에도 경찰이 폭력이 있었다고 판단하는 경우 가해자를 체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법을 토대로 미국 법무부 내의 여성폭력방지부서에서는 성폭력 근절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 기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연방차원에서 여러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특히, STOP(Services, Training, Officers, Prosecutors) 프로그램을 통해 경찰의 의무체포, 검찰의 의무기소를 장려하는 방식의 사법 체계를 마련하고 여성폭력 범죄에 대응하는 법집행을 강화했으며 피해자 보호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초 여성방지법을 제정한 이후 다른 주로 피신한 피해자에 대한 양육권 보호, 이주민 여성과 원주민 여성 보호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를 보호하기 위해 관련 법령을 확대해왔다.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 내의 가정폭력프로그램은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하고 사회에서 격리해 피해를 복구하는 방식으로 범죄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가정폭력에 대응해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북미와 유럽에서 다양한 형태로 회복적사법에 근거한 피해회복 프로그램을 시행하려는 시도를 통해 가정폭력 범죄에 새롭게 대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회복적사법은 범죄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누가 피해를 보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사법체계이다. 일반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 지역사회 구성원 등 범죄 관련자들이 사건 해결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피해자나 지역사회의 손실을 복구하고 관련 당사자의 재통합을 추구하는 범죄대응’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처벌적 형법이 재범률을 낮추는데 효과적이지 못했고 범죄 피해자 및 사회적 피해를 회복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회복적사법에 기반한 가정폭력 프로그램은 가정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또는 지역사회구성원 등 가정폭력사건 관련자들이 사건해결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피해자 또는 지역사회 손실을 복구하고 관련당사자들의 재통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프로그램과 차이가 있다.

구성원 관계 향상 위한 ‘피스메이킹 서클스’

피스메이킹 서클스(Peacemaking Circles) 프로그램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강화하고 더 큰 공동체와 연합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구성원 한명 한명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했다. 서구적인 문화와 달리 많은 토착문화에서는 이러한 관계적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캐나다 유콘, 파푸아뉴기니, 하와이, 뉴질랜드 등에서 구성원간의 갈등에 대해 이러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이러한 원칙이 피스메이킹 서클스 운영에 영향을 주었다.

피스메이킹 서클스는 구성원 각자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관계의 향상에 힘쓴다. 또한 보다 큰 공동체와의 연합을 강화하며 담화와 공감대형성이라는 개념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를 위해 구성원 각자의 스토리 공유가 서클 운영의 힘의 원천임을 강조하고 있다.

피스메이킹 서클스는 1982년 유콘에서 시작된 양형서클에서 보다 발전된 형태로 출발했다. 이름을 변경한 이유는 첫째, 피스메이킹 서클스가 재판의 양형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며, 판결이 서클의 주요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둘째, 서클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공적, 사적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사법체계 내의 여러 갈등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서클 프로그램은 공동체 내의 다양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니토바, 유콘, 미네소타와 보스턴 등에서 운영되어 왔다. 개인의 가치 탐색, 관계형성 등의 특수한 이슈들은 페니미스트 운동과 함께 피스메이킹 서클의 또 다른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서클이 운영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프로그램 적절성 확인 | 지역사회 사법위원회에서 각 서클을 진행할 지킴이들을 선정하고 지킴이는 가해자 및 가족을 만나 사건을 파악한다. 사법위원회는 매주 서클을 열어 폭력사건 중 어느 사건이 서클 진행과정에 적절할지 평가하고 가해자와 가족에 서클 참여를 제안한다. 피해자와 가족에게도 별도의 서클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 후 가해자 피해자 모두와 관련되어 있는 인물(학교, 직장, 가정 등)을 각각의 서클에 초청할 수도 있다.

2. 준비 | 가해 및 피해 기록을 검토하고 가피해자 각자의 증언과 관련자의 증언을 수집한다. 가피해자는 각자 서클 참여를 수락하고 사법위원회는 서클의 진행을 결정한다. 지킴이들은 가피해자 및 각자의 가족에게 가피해자 이외에 서클에 참여 가능한 관련자 명단에 대해 사전에 고지한다.

3. 전체 서클 소집 | 보다 큰 서클을 형성하는 단계로 이전 단계의 참여자 이외에 직장·학교 동료나 관계자의 가족이 포함되고 사법위원회에서 선정한 자원참여자, 사건 담당 경찰, 상담자, 가피해자의 친지까지도 참여 가능하다. 원활한 서클 진행을 위해 비격식적인 라포형성 과정이 포함되기도 하며 여러 주요 이슈와 관련된 복잡하고 종합적인 담화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가피해자 회복을 위한 의견이 공유되고 이들을 지지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수립한다.

4. 후속조치 | 이후 수 개월간 정기적인 자조집단을 통해 가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지원·지지해준다. 그리고 이전의 직장·학교 복귀 과정을 돕는다.

피스메이킹 서클스에는 여러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서클이 단지 이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프로그램 적절성 확인, 준비, 전체 서클 소집, 후속조치 각각의 운영 단계가 잘 조직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서클이 잘 운영될 수 있다.

두 번째로 각각의 단계에서는 서로 다른 서클들이 운용된다. 피스메이킹 서클 전 과정을 거쳐 치유, 대화, 문제해결, 소집단 서클과 공공서클 등이 활용된다.

셋째로 서클은 아주 유연하게 운용될 수 있다. 서클의 중심 가치와 원칙, 기본 구조를 제외하고는 서클은 어떤 형태로든 변형될 수 있으며 개별 사건의 특수한 환경에 맞추어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서클 진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중재자는 바로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있다.

참여자들은 서클 활동을 촉진하는데 있어서 지킴이들만큼 중요하다. 지킴이들의 존재 자체는 중요하지만 크게 부각되어서는 안 되며 서클 진행을 위해 모든 참여자들이 이야기할 준비를 만드는 독특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가정폭력 예방을 위하여

가정폭력 발생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과 근거에 기반을 둔 전략수립이 중요하다. 성폭력, 스토킹 등을 예방하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에는 사회복지, 공공보건 외에도 여러 부처와 유관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각각 다른 수준의 사회체계(개인, 관계, 지역사회 및 사회 환경)에의 접근을 필요로 하며 직접적으로 성폭력이 이루어지는 1차적 장소에서의 가피해자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에는 향후 가해 행동이 줄어들 수 있도록 처벌, 치료가 병행되어야 하고 피해자에게 즉각적이고 적절한 서비스와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해 2차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의 가해자 처벌 위주의 사법체계에서 벗어나 가정폭력사건 자체를 이슈화했던 관점을 바꾸어 가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와 변화의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교정 실패에 따른 2차적 피해와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피해자에게는 지역사회 및 공동체와의 유대를지속하고 자신을 둘러싼 가족 및 이웃과의 관계를 강화해 나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사회적 자원을 지원해주어야 할 것이다.

성폭력의 여러 유형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에 근거할 때 성폭력 예방에는 여러 부처 및 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사회복지기관, 사법기관, 지역사회서비스 기관과의 긴밀한 협조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다수의 피해자가 인종·민족 소수 등 취약계층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예방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각각의 인종·민족에 개입할 수 있도록 문화적 연관성을 고려해야 한다. 각 주와 지역사회를 돕기 위해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효율적인 전략, 구체적인 접근방안을 포함한 문서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최초 성폭력피해, 스토킹피해 등이 어린나이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성폭력 예방을 위한 노력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조기 개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아동기에 중점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청소년기, 성인기에 발생하는 다양한 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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