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사회복지사로…소외계층의 옹호자 되고파

유경진 대구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
유경진 대구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시기. 내가 살고 있는 대구시에서는 경험이 필요한 청년들과 청년의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채용 여력이 부족한 시민사회단체 사이에 인턴사업을 지원하는 ‘대구시 청년NGO활동 지원사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대학 생활 중 인문학 활동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시민사회단체 선배의 권유로 꼭 사회복지 현장이 아니더라도 여러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시민사회단체 인턴을 지원하게 됐다. 그렇게 대구쪽방상담소와 첫 인연을 맺었다.

대구쪽방상담소는 기존의 사회복지영역과 시민사회단체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지역빈곤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단체 연대회의도 참여하고, 홈리스 인권 문제에 대해 지자체·정부를 상대로 정책적 각성과 개선을 촉구하는 투쟁의 모습도 보였다.

쪽방, 그 현장

사회복지사로서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종합복지관이나 다른 사회복지현장과 다른 쪽방이라는 특수성에 대해 설명하겠다. 쪽방의 사전적 의미는 ‘월세 형태로 한 평 남짓한 공간으로 개별취사, 세면, 용변 등의 기초적인 부대시설이 없고, 대부분 독신으로 건설일용직, 행상 등과 같이 이동성이 강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저렴한 거주 공간’이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상상을 해보겠다. 월세형태이니 일단 내 집은 아니다. 가로 세로 3.3m의한 평 남짓한 공간은 몸을 뉘고 1m의 여유 공간이 더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 공간에서 먹고, 자고, 입고, 하는 것들을 해결해야 한다. 텔레비전, 냉장고, 밥솥 등 온갖 가전제품이 그곳을 채우고 있다.

기초적인 생활을 위한 개인화장실, 샤워실이 없다.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지 못해 일거리가 끊기거나 수입이 없어지면 다시 노숙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노숙의 경계에서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주거 공간이 쪽방인 것이다.

대학시절 노인이나 장애인관련 실습당시 ‘저 사람이 왜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아야 되는 사람일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쪽방이라는 현장을 접하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쪽방상담소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하면서 사무실의 막내로 물품지원, 관리, 무료급식 등 생계지원사업을 맡아 진행했다. 상담소의 물품 후원은 주기도 다르고, 양도 적은데 물품 지원을 요청하는 주민들의 욕구는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고, 간혹 어떤 사람은 만취가 되어 찾아와 쌀도 없고 라면도 떨어졌다며 하소연하는 모습을 볼 때 너무 안타까웠다.

이럴 때마다 ‘저 사람들은 우리 말고 도움 받을 때가 진짜 없나?’하고 생각을 했었다. 선임복지사들은 세 모녀 사건처럼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에 포함되지 않는 이상 정부의 도움을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해주었다.

활동에 대한 단상들

사회복지사로서 일 년 정도 지나면서 느낀 점은 쪽방이라는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생활하는 모습도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다양해보였다.

대부분은 오래된 건물로 단열이 잘 되지 않아 건물 내부온도가 40도를 넘을 때도 많았다. 폭염기간에는 봉사자들과 함께 매주 안부인사와 폭염나기 물품을 제공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또 대부분 40대에서 80대까지의 독거남성들이 주로 거주해 술과 담배 찌든 냄새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경험은 2016년 광주로 쪽방실태조사를 나갔던 경험이었다. 현재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인천 등 5개 지역에 쪽방상담소가 존재하지만 광주지역에는 쪽방상담소가 없다. 그래서 대구와 대전쪽방상담소가 함께 광주 쪽방지역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노숙인들이 찾아갈만한 주택, 여관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상담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광주에선 아직 쪽방이 무슨 말인지 몰라 문전박대 당하고, 쪽방건물을 찾기 위해 역 주변, 시장주변 등 곳곳을 발품을 팔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인턴생활이 끝나고 정식으로 대구쪽방상담소에서 일하게 됐다. 상담소장은 지난 광주에서의 활동적인 내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고 했다.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홈리스 추모제다. 쪽방은 매년 폭염이나 한파, 노환이나 질병으로 운명을 달리하는 분들이 많다. 가족관계가 단절되어 시신 인계가 불가능해 무연고 사망처리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매년 밤이 가장 긴 동짓날에 이들을 위한 추모제를 진행한다. 그날 밤 쪽방주민들과 함께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며 나의 역할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잡곤 했다. 추모제 행사로 인해 라디오 인터뷰도 했다.

28살 사회복지사로서 느끼는 사회복지

사회복지사로서 봉사자, 후원자, 쪽방주민을 만나면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땐 “그냥할 일을 할 뿐인걸요”라는 말로 감사의 마음을 대신한다.

사회복지사에게 희생과 봉사는 숭고한 가치지만 직업으로서는 장애요소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사라고 해서 봉사와 헌신, 과도한 노동을 강요한다면 직업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찾기 힘들다. 사회복지사가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 당당한 직업으로서 권리와 책임이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의 변화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구조속의 사람

가난은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복지사라면 한번쯤 해보는 고민이며, 대다수의 사람이 ‘NO’라고 생각할 것이다. 산업사회가 고도화됨에 따라 사회구조적인 탈락자가 생기고 이들에 대해 국가는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선 아직도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국가가 개인의 삶의 질을 모두 책임지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사회복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이들의 옹호자가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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