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택시 잡기가 쉬워졌다. 언젠가 승차거부란 말이 사라진 것 같다고 기사에게 말을 걸었더니 경제사정이 나빠져 손님이 없으니 승차거부란 언감생심이 되어버렸다고 허허롭게 웃는다. 택시를 타면 기사들로부터 현실경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며칠 전에는 기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새롭게 택시기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 10명을 회사로 영입하면 그 중 7명이 신용불량자이며, 그 중 80%가 이혼을 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파산과 가족해체가 동반되는 양상을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소득불평등 OECD 최고

언젠가 "수표를 가지고 장난감을 사는 아이들"이란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는 소득분배의 불평등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는 신용불량자를 양산하였고, 빈부격차 심화는 상대적 박탈감과 한탕주의를 촉발시켜 경마장과 같은 도박문화로 사람들을 내몰고 있다. 경제적 파산은 가족해체를 동반하고 극단적인 경우 가족동반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

갤럽조사 등 각종 조사결과들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80% 이상이 빈부격차가 이전보다 심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최근 한국개발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소득분배가 크게 악화되었는데 지니계수로 나타낸 소득불평등 정도는 OECD 국가 중 최고를 나타냈으며 절대 빈곤층도 거의 2배가 증가해 전체 가구의 11.6%에 이르렀고, 잘 알려진 대로 신용불량자도 400만여 명에 이른다.

문제는 이러한 빈부격차가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소득분배 구조의 향후 추이' 보고서에 의하면 소득격차가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3배 수준이었다가 은퇴할 시점에 이르면 6배로 벌어져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즉 고소득층은 나이를 먹을수록 평균보다 더 잘 살게 되는 반면 저소득층은 그 반대로 점점 더 못살게 된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전국 3만 3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계층이동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일생동안 노력할 경우 자기 세대에서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고 답한 이들은 29.3%에 그쳤다. 국민 대다수는 현재의 생활도 어렵고 빈곤에서 탈출도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경제가 성장하고 부가 증가하면 할수록 빈부격차도 커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말까지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의 격차는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1970년대 말 이후 이러한 추세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부자들의 소득은 증가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실질소득은 감소되고 있다. 울프슨 세계은행 총재는 "많은 국가에서 유례없는 부가 쌓여가고 있는데 인구의 46%인 28억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시민사회의 도움 절실

세계은행은 "세계발전 2000/2001, 빈곤과의 전쟁"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 힘을 실어 주는 것, 사회복지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 등 세 가지 대응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은행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인류사회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또한 국가의 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지평도 재임기간에 머물러 있으니 저항을 무릅쓰고 정치·경제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시민사회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리 빈곤과의 싸움에 비상한 재능을 가진 세계은행이나 선진 국가 정부도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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