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사회복지 쟁점과 나아갈 길

구인회 서울대학교 교수
구인회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새해를 맞이하여 사회복지의 과제, 쟁점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과제나 쟁점은 사람마다 다르기가 십상인데, 그 이유는 각자 자신들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시민 개개인이 행복한 사회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경제적으로는 평등한 기회와 보상이, 문화적으로는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현재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문화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는 성과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이나 신체적 특성 등을 가지고 구분 짓고 서로를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습성이 많이 남아있다. 아니 때로는 더욱 심해지는 모습도 보인다. 불과 몇 달전, 서울 강서구에서는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주민공청회가 파행을 겪은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장애인 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고성을 지르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장애인 학부모들의 모습이 영상에 그대로 담겨 전해졌다. 이제 고령사회를 맞이하여 누구나 평생에 크고 작은 장애를 안고 가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밀어내는 것에 익숙하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걱정되는 경우에는 말할 바도 없다.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우리는 자신의 몫에 합당한 책임을 지거나 남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보상을 배려하는 것에 아주 인색하다. 가진 자들은 한 푼의 세금이라도 부담을 피하는 데 급급하였고, 없는 이들의 기본권적 요구는 빈번하게 묵살되었다. 이제 우리사회는 계층 간의 격차와 불평등이 끝간데 없이 벌어지고, 자신과 다른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별천지의 이방인으로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었다고 알려진 치약을 경비원에게 선물하였다는 연전의 사건은 잊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단면이 아닌가?

폐기해야 할 유독성 제품을 이웃에게 버젓이 넘겨주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제 우리 사회에서 계층 간의 거리감은 너무 커서 서로가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평등한 인간들이라는 것을 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다소 비약을 한다면, 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병리적 현상이 1960년대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뿌리 내린 국가 성장주의의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는 국가의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미덕으로 강요되었다. 정부는 재벌대기업 등에 대해서는 몰아주기 식 지원을 하였고, 무언가의 이유로 성장 대열에서 탈락한 이들은 냉혹하게 버림받았다. 그나마 대열에 합류하여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많았던 시대에는 우리 사회의 상처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그러한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소수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차별과 불평등의 희생양이 되어 우리 사회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취업난에 빠진 청년층, 경력단절 여성, 자살 위험에 놓인 빈곤노인들, 사회로부터 격리된 장애인, 주변화된 이주민과 외국인 노동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적 삶에서 배제되고 있다.

소득불평등, OECD 중 여전히 심각한 수준

지난 20여 년 사이 일어난 변화는 계층 간의 소득격차 확대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적인 기준에서 볼 때 우리 사회는 비교적 평등한 나라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빈곤층은 늘어났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평등하여 언론에 등장하는 양극화 주장은 다소 과장되었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통계자료의 문제점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었음이 최근의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새로운 소득조사 자료가 등장하고 조세 자료를 이용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김낙년·김종일, 2013; 홍민기, 2015).

참고로 <그림>에서는 OECD 회원국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소득불평등을 비교하고 있다.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 여기에 이자, 배당, 임대료 수입을 더한 시장소득, 그리고 여기에 다시 세금과 복지급여를 포함한 가처분소득의 세 가지 소득을 기준으로 지니계수(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수치로 0.3 아래면 평등한 사회이고 0.3 이상이면 불평등한 사회로 볼 수 있음)를 보여준다. 소득불평등 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인데 흔히들 불평등한 나라의 대명사로 꼽히는 미국이 0.37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0.35에 근접하여 미국 다음 가는 높은 불평등 수준을 보이고 있다(구인회,2017).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를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는 근로소득과 시장소득의 불평등도는 높지만, 정부 복지급여가 큰 영향을 미쳐 가처분소득의 불평등은 크게 낮아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의 복지급여가 소득재분배 기능을 하지 못하여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소득과 시장소득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에서의 소득분배에는 문제가 없고 정부가 복지확장을 통해서 제 역할을 하면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과연 맞는 것일까?

근로소득과 시장소득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근로자 임금소득 분배에 관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불평등도가 높고 저임금층 비율이 높은 나라임이 쉽게 확인된다. 우리나라의 임금불평등도는 1990년대 전반 이후 빠르게 악화되어 현재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반된 사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비밀은 우리가 소득불평등을 얘기할 때에는 가족을 단위로 하지만, 임금불평등을 검토할 때에는 개인을 단위로 한다는 데에 있다. 결국 이러한 모순된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는 개인 단위의 근로소득은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지만 가족 관계가 서구에 비해 강하여 가족소득의 분배는 평등하게 된다는 점에 의해 설명된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에서는 잘 버는 사람과 못 버는 사람이 한 가족으로 합쳐 사는 경우가 많아서 가족이 재분배 기능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서구 국가들에 비해 혼인과 혈연을 통한 가족적 유대가 강하고 가족관계 안에서 상호원조 기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는 간단한 국제비교를 통해서 확인된다.

<표>에서는 우리나라와 서구 5개국에서 근로연령층이 부부와 한부모, 1인가구의 인구분포를 비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족주의가 강한 스페인과 함께 단연 부부가구의 비율이 높은 점을 알 수 있다(구인회, 2017). 이렇게 가족적 유대가 강하면 가족구성원 사이의 소득공유를 통해 소득분배가 평등화되는 결과가나타난다.

그런데 이미 우리의 가족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결혼율은 낮아지고 이혼은 빈번해지며 출산도 줄어들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또 노인의 대다수가 독립가구를 이루고 있어 3대가 어울려 사는 전통적 확대가족은 멸종단계에 들어선 듯하다.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1995년에는 노인 중 3분의 2 정도가 자녀와 같이 살고 있었으나 2010년에는 그 비율이 3분의 1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가족적 유대가 만들어 낸 평등한 사회로 얘기하는 것은 곧 시대에 뒤쳐진 추억담이 될 듯하다. 아니, 사실은 우리사회에서 가족은 이제 불평등을 강화하는 제도로 되어가는 느낌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면 결혼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끼리 결혼하는 계층 내 동종혼 현상도 점점 주목되고 있다. 더욱이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녀 양육에서는 매우 일찍부터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니 가족이 불평등을 세대 간에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여 년 간 노동시장과 가족에서 일어난 확대된 불평등으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장래에 계층상승할 가능성이 낮다는 시민의 응답 비율이 지난 20년간 크게 늘어 2015년에 50%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신의 자녀가 계층상승할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은 더욱 크게 늘어 60%를 넘어서게 되었다. 또 연령별로 나누어진 조사결과를 보면, 이제 사회로 진출하여 독립된 삶을 시작해야 할 청년층이 느끼는 좌절감이 다른 세대에 비해 더욱 크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민관협력으로 사회서비스 공공화 추진해야

이제 다시 이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이어 나가자면, 나는 우리 사회가 시민 개개인이 행복한 평등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사회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제 현재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큰 과제는 시민의 삶의 질을 최우선에 두는 차별 없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큰 전환을 이루는 것이라고 본다.

다행히도 새 정부 들어서 일자리 확대, 최저임금인상, 고소득자 누진세제를 통한 공평조세 실현, 교육기회 평등과 의료보장성 강화를 위한 개혁 등 많은 과제들이 진지하게 검토되고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과제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것이고 그만큼 논란도 분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제도가 자리 잡고 나면 이 제도에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다른 제도와 사람들도 여기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제도를 바꿀 때에는 기득권층의 저항이 일어나고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도 나타나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기도 하고 이유 없이 불이익을 겪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수십 년 고착된 제도가 감내하기 어려운 계층 격차와 사회적 분열을 낳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개혁의 대의를 대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회복지분야로 시야를 좁히더라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진행된 가족의 변화에 대응하여 복지 분야에서 할 일이 참 많다. 연금 혜택도 없이 가족 부양도 받기 어려워진 노인을 위해서는 낡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손보고 기초연금 급여를 인상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동양육 환경의 최저선을 보장하는 일환으로 아동수당도 실시된다.

이렇게 소득보장이 확대되는 한편,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영유아 보육서비스에 대한 정부지원이 늘고 노인 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는 등 사회서비스가 크게 확충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사회서비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여전하다. 지금까지 사회서비스 분야에서는 정부는 재정지원을 하고 민간은 서비스 제공자로서 정부 역할을 대행하는 방식의 민관협력을 통해서 시민의 욕구에 대응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지원 수준이 미흡한 상황에서 이러한 민관협력방식은 영세한 서비스 제공자에 의존한 전달체계로 귀결되었다.

특히 급격한 서비스 확장 과정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자들이 과도하게 늘어나서, 시민부담은 증가해도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실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시장의존적인 전달체계가 낳는 폐해에 대해서는 우려가 컸다. 이제라도 공공에서의 직접적인 서비스 제공을 대폭 늘리고 민간에서는 비영리 제공자의 역할을 확장하여 서비스 질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회복지서비스 영역에서도 공공성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복지서비스 공공성 확대는 민간복지기관에게는 위기로 다가오기가 쉽다. 서비스 전달에서 공공성 확대가 기존에 민간에 위탁된 업무를 정부가 회수하고 자발적이고 혁신적인 민간기관의 노력에 대해서는 정부의 미흡한 재정지원마저 줄어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정부와 민간의 협의를 통해 새로운 민관협력의 원칙을 마련하고 그러한 원칙에 따라 서비스 공공화가 추진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은 서비스가 표준화되어 있거나 공적 권한의 행사가 필수적인 영역에서는 정부의 직접적인 관여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협력이 중요하고 민간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접근이 유리한 영역에서는 비영리 기관을 중심으로 민간의 역할을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민간복지기관의 역할이 정부의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소극적인 서비스 제공자로 치우친 면이 있었다. 이제 민간기관은 사회복지서비스의 새로운 영역과 실천모델을 개발하고 새로운 민관 협력을 만들어 나가는 혁신주체로서 거듭나야 할 때가 되었다. 사회서비스에서 시민의 평등한 기본권을 보장하고 계층 간 격차를 줄이는 주체로 민간복지기관이 일어서는 2018년을 기대한다.

* 이 기사는 월간 복지저널 2018년 2월호(통권 11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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