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롯데백화점이 폐점하는 저녁 8시. 그로부터 약 15분 뒤면 영등포역 광장에는 어김없이 임시 천막이 펼쳐지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든 노숙인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지난 2002년부터 영등포역에서 노숙인 무료급식 사업을 펼치고 있는 박희돈 목사. 그는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은 옷 몇 가지가 아니라 '정'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2002년부터 영등포역에서 노숙인 무료급식 사업을 펼치고 있는 박희돈 목사. 그는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은 옷 몇 가지가 아니라 '정'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2002년부터 영등포역에서 노숙인 무료급식 사업을 펼치고 있는 박희돈 목사. 그는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은 옷 몇 가지가 아니라 '정'이라고 강조한다. 영등포역 롯데백화점이 폐점하는 저녁 8시. 그로부터 약 15분 뒤면 영등포역 광장에는 어김없이 임시 천막이 펼쳐지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든 노숙인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곳에서 매주 일요일, 수요일, 목요일, 토요일마다 노숙인들을 상대로 무료급식 사역을 펼치는 밥사랑열린공동체 박희돈 목사(섬김과나눔의교회)는 지난 1일에도 새해 첫날을 맞아 노숙인들에게 떡국을 대접했다.

모여든 노숙인은 350여명쯤 되지만 '한 사람에 한 그릇'이라는 규칙이 없어 이날 나간 떡국은 460그릇에 달했다. 여름엔 보통 550여 그릇 가량이 비워진다. 영등포역에서 주는 급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곳을 찾는 노숙인은 최근 더 늘었다. 천안까지 연결되는 전철이 개통된 뒤로는 그곳 노숙인까지 찾아올 정도다.

"어느 날 빨간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휴지통을 뒤져 먹다 버린 사발면의 국물을 마시는걸 목격했습니다. 노숙인이었죠."

이날 받은 충격은 신학을 거쳐 사회복지 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까지 따내 이른바 사회복지 전문가로 자부하던 박희돈 목사의 삶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그가 원장으로 있는 기독교사회연구원 4기 졸업식 때 노숙인을 위한 선한 일을 하자는 선포와 함께 헌금으로 모인 74만원으로 김밥을 싸서 나선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이웃 교회들이 후원과 자원봉사로 나선 것은 물론 미8군 국제결혼여성들의 모임 '임마누엘 비욘드'에서 정기적으로 쌀을 후원했다. 고향 사람들로 구성된 '경북 군위사랑카페' 회원들은 매월 둘째주 일요일이면 자원봉사로 함께 한다.

박희돈 목사가 무료급식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옷, 세면도구, 신발 등 기초적인 생필품지원은 물론 기초의약품 지원 및 응급보호서비스, 임산부 노숙인 출산 지원, 이미용 서비스 제공 등 노숙인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행여 노숙인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서에라도 유치될라치면 어김없이 달려가 선처를 호소하고 꺼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매일 저녁이면 펼쳐지는 영등포역 앞 노숙인 무료급식소. 일용할 양식을 해결할 수 있는 이곳은 노숙인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다.
매일 저녁이면 펼쳐지는 영등포역 앞 노숙인 무료급식소. 일용할 양식을 해결할 수 있는 이곳은 노숙인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다.

매일 저녁이면 펼쳐지는 영등포역 앞 노숙인 무료급식소. 일용할 양식을 해결할 수 있는 이곳은 노숙인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다. "조폭 출신의 주먹깨나 쓰는 노숙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자기 애인이 아기를 낳게 됐으니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뱃속의 아기도 자기처럼 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차마 도망치지도 못했다는 겁니다. 168만원을 들여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도록 도왔죠. 그 뒤로 그 친구의 삶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중국집 배달을 하면서 새 삶을 꾸려가고 있지요"

단순히 돈 몇 푼 때문이 아니라 그간 박희돈 목사가 쏟은 '정'이 통한 것이다. 이제 노숙인들은 수요일과 토요일 급식에는 그들이 직접 급식 봉사에 나선다. 밥도 지어 나르고, 줄을 서도록 질서유지도 담당한다.

"노숙인들도 밥을 정성껏 지어 대접하니 모이더군요. 그들에겐 정을 줘야 해요. 그리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노숙인에게 비타민이 아니라 구충제가 필요한거죠"

실제 지난 성탄절 때는 광운대 총장 등 임직원들이 선물을 전달하겠다고 하기에 구충제를 달라고 해서 모든 노숙인들에게 한 알씩 먹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최근 박희돈 목사는 심한 과로로 인해 청각을 잃고 장애3등급 판정을 받았다. 오른쪽 귀로만 겨우 듣고 1대 1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박희돈 목사는 올해도 군대 내무반을 응용한 '신개념 쪽방' 마련 등 노숙인들을 위한 일을 잔뜩 계획하고 있다. 3월부터는 울산에 있는 동료 목사가 밥사랑열린공동체 울산지부를 내겠다고 했다며 짐짓 들떠 있었다.

지난 1일에는 새해를 맞아 떡국 잔치가 펼쳐졌다. 모락모락 나는 하얀 김 사이로 떡국을 퍼담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지난 1일에는 새해를 맞아 떡국 잔치가 펼쳐졌다. 모락모락 나는 하얀 김 사이로 떡국을 퍼담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지난 1일에는 새해를 맞아 떡국 잔치가 펼쳐졌다. 모락모락 나는 하얀 김 사이로 떡국을 퍼담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 사회복지라는 박희돈 목사.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그는 영등포역 앞을 화려한 전구로 장식하고 있는 성탄트리의 불빛보다 더 환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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