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화의 내용 중에서 백인들의 버팔로 사냥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백인들은 버팔로를 닥치는 대로 살상한 후 아까운 고기를 내버리고 가죽만을 챙겨 사라진다. 이 처참한 장면을 지켜보는 인디언들은 허탈해 하며, '저들은 소유를 위한 전쟁을 자행하고, 우리는 생존을 위한 전쟁만을 허용할 뿐이다'라고 독백한다. 인디언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버팔로를 사냥한다는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 즉 생존을 위하여 긴요할 때 최소한의 버팔로를 사냥하여 고기와 가죽 모두 요긴하게 사용한다.

경쟁의 계곡을 내달리는 시대

칼라하리사막 주변에 사는 부시맨은 많은 동물을 사냥하는 사람보다 최소한의 동물을 사냥하는 사람을 더 존경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이다. 많이 사냥한 사람을 존경하면 필요 이상으로 사냥을 하게 되고, 따라서 제한된 자원을 과소비 하게 되어 결국 부족 전체의 생산력은 떨어져 생존 위기를 야기하게 되므로, 많은 사냥으로 풍족하기보다 오히려 적은 사냥으로 공존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디언의 풍속이고 부시맨의 삶의 양식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런 삶의 양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비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경제를 빼고서는 성립되지 못하는, 전쟁도 경제 전쟁인, 경제의 전성시대이다. 경제 앞에서는 국가의 개념조차도 희미해지고 있다. 경제 제일주의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이다. 사회주의와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승리를 거둔 시장자본주의는 복지국가라는 거추장스러운 브레이크마저 떼어버리고 무한경쟁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 정글의 법칙, 제로섬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이 경쟁의 계곡을 내달리고 있다.

그런데 인간사회의 위기와 비극은 오직 경제행위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경제행위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시장지향성(market mentality)에서 출발된다. 물론 인간의 교환관계는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하나의 기술적 관계이며 희소성이라는 사실에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희소성은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의 희소성이 인간행동의 보편적 조건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인간의 궁극적 지향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인간사회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물질적 풍요 속의 인간성 상실이라는 기형적 현상에 매몰되고 있다.

인간성과 자연 손상마저 감수

우리 속담에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목표와 수단 간에 합리적인 관계가 설정되는 것을 일컫는 비유이다. 빈대를 잡는 것은 목표이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은 수단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매우 다양한 수단이 선택된다. 선택의 원칙은 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의 합리성이다. 따라서 편익이 비용보다 더 크다면 초가삼간도 태워버리고, 욕구충족과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생존의 터전도 파괴한다. 여기에는 인간적 배려나, 가치와 윤리적 판단은 고려되지 않는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줄곧 시장지향성에 지배되고 합리성을 신봉해 왔다. 칼 맑스는 인간을 이타적인 존재로 이해하였고, 아담 스미스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이해하였다. 결국은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스미스의 시장경제 논리가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자연을 중시하는 유물사관을 갖고 있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자연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유인사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기적인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해서 초가삼간, 곧 인간성과 자연을 기꺼이 손상시킨다. 이것이 이 시대를 지배하는 경제이데올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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