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선배, 제주도에 그 본부를 두고 있는 '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를 아시는지요. 몇 년 전부터 매년 정례적으로 제주 감귤을 북한에 보내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한해의 감귤농사가 마무리되면 제주의 감귤농민들이

A선배, 제주도에 그 본부를 두고 있는 '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를 아시는지요. 몇 년 전부터 매년 정례적으로 제주 감귤을 북한에 보내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한해의 감귤농사가 마무리되면 제주의 감귤농민들이 그들의 소출을 가득 싣고 직접 평양을 방문해 전달합니다. 물론 무상이지요. 남에서는 지천으로 흔하고 어차피 생산과잉인 감귤 얼마쯤 북한에 공짜로 주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금전적 부담을 따로 또 감수하면서까지 자신들의 감귤을 전세 낸 비행기에 실어 북으로 보내는 제주도민의 마음은 꼭 감귤의 과잉수확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남에서 난 감귤이 북으로 가면 생명수의 과실일 수 있음에 제주도민들은 흔연히 그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이왕 귤 이야기로 서두를 떼었으니 내친김에 고전의 한 토막도 마저 끌어다 붙이겠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말기 회남(淮南)의 제(齊)나라에 안영(晏嬰)이란 재상이 있었습니다. 중원에 회자될 만큼 크게 이름을 얻자 회북(淮北)의 초(楚)나라에서 그를 초청했습니다. 평소 안영의 인물됨을 궁금해 하던 초의 영왕(靈王)이 따로 자리를 마련해 안영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문득 밖이 소란하더니 죄인 하나가 포박 당한 채 초나라의 포리들에게 끌려가고 있는 광경이 목도되었습니다. 죄인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고 초왕이 묻자 제 나라 사람으로 죄목이 절도라고 포리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초의 영왕이 안영에게 물었습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는가?" 안영을 폄훼하기 위해 미리 장치해둔 마당이요 의도된 질문이었으나 안영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초연하게 답하였습니다. "회남의 귤(橘)을 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枳)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국(齊國)의 사람이 원래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자랐는데 그가 초(楚)에 와서 도둑이 된 것을 보면 이는 바로 초나라의 풍토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남귤북지(南橘北枳)의 출전인 안자춘추(晏子春秋)의 한 대목입니다.

존경하는 A선배, 중언부언 서두가 너무 장황했습니다. 생뚱맞게 왠 귤타령이냐구요. 해량하십시오. 일전의 한 송년모임에서 선배의 근황을 전해 들었습니다. 모임의 참석자 가운데 하나가 선배의 얼굴이 표지사진으로 나온 잡지 한 권을 들고 왔더군요. 머리기사를 포함해서 잡지에는 선배의 특별인터뷰기사가 파격적인 지면배정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선거철이면 반짝특수를 누리는 그런 류의 잡지에 표지인물로 실리려면 당월호 잡지 몇 천부쯤 구입하는 조건이라야 가능하다고 주위에서 수군거렸지만 불민하고 과문한 탓에 그 깊은 사정이야 가늠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 채로 다만 선배께서 내년의 지자체 단체장선거를 염두에 두고 계신다는 것만 헤아려 들었습니다.

전언의 진위야 차치하고라도 우선 걱정이 앞섭니다. 선거판이 어떤 곳입니까. 한마디로 아생살타(我生殺他)의 난장 아닙니까. 그 험한 판에 뛰어드신다니 당과 낙의 결과에 상관없이 혹여 고명하신 선배의 일신에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이 남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선배가 누구입니까. 평생 올곧은 몸으로 공직자의 외길을 걸으신 분 아닙니까. 선배의 평생은 이미 선배의 일생이 아닙니다. 선배의 한 살이는 같은 길을 가는 우리 후배들에게는 하나의 이정표이며 삶의 표상입니다. 우리는 선배가 앞서 걸어간 궤적을 뒤따르는 것만으로도 흠절없는 공직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무시로 흐트러지는 보폭을 추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선배야말로 우리의 본이었습니다.

A선배, 몸을 일으키시겠다구요. 고향을 위해서 인생의 마지막 봉사를 하시겠다했습니까. 무릇 크건 작건 선거에 나서는 인사들이 언제 제 스스로 몸을 일으키던가요. 향리의 이름 없는 촌로가 원하고 지역주민이 원하고 나아가 국민이 원한다며 저들은 제 뜻이 아니란 듯 몸을 일으킵니다. 과연 그랬습니까. 진정 우리가 원해서 저들의 몸을 일으켰습니까.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저들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들은 향리의 촌로를, 지역의 주민을 그리고 말없는 국민의 뜻을 도용했을 뿐입니다.

선배, 속지 마십시오. 누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고향이 선배를 부른다고 속삭이면 거개가 거짓입니다. 십중팔구 선배를 충동질해서 제 잇속을 챙기려는 사악한 부류임에 틀림없습니다. 언제 고향이 우리를 불러 도와달라고 손 내민 적이 있던가요. 걸핏하면 우리가 제 소용에 따라 고향을 불렀을 뿐입니다. 언제 떠나온 고향입니까. 고향을 떠나온 지 사십여 년의 세월입니다. 그 세월 동안 우리가 고향을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러니 이제부터 하시겠다구요. 아닙니다. 고향에서 우리는 이미 잊혀진 존재들입니다. 고향은 우리의 때늦은 봉사를 원하지 않습니다. 고향은 그냥 고향의 손에 맡기십시오. 선배, 진정 고향을 위하고 싶다면 차라리 조용한 은퇴를 택하십시오. 명예로운 은퇴는 새로운 시작보다 더 값진 것입니다.

만년에 자서전 쓰기를 권하는 후학들에게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그 거절의 변으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한 주간동안에도 그의 전 인생을 몰락시키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A선배, 남에서 난 귤이 북으로 가면 생명의 과즙이 될 수 도 있고 탱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오로지 선배의 몫입니다. 선배, 언제 시간 내시어 제 우거에 한 번 다녀가십시오. 제주도의 지인으로부터 감귤 한 상자가 선물로 왔습니다. 함께 드시면서 정담이나 나누시지요. 귤은 역시 겨울이 제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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