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먼 여정 속에서 우리는 여러 유형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죽고 못 사는 남녀간의 사랑이든 부모자식 간의 내리사랑이든, 잔잔한 미풍처럼 언뜻 스쳐지나가는 가벼운 떨림이든 아니면 오랜 세월의 길벗 같은 두터운 우정이든

삶의 먼 여정 속에서 우리는 여러 유형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죽고 못 사는 남녀간의 사랑이든 부모자식 간의 내리사랑이든, 잔잔한 미풍처럼 언뜻 스쳐지나가는 가벼운 떨림이든 아니면 오랜 세월의 길벗 같은 두터운 우정이든, 살아가는 날들 동안 사랑의 이름으로 찾아오는 지독한 열병을 겪으며 우리들 마음은 각각의 사연을 문신처럼 새긴 채 겹겹의 꽃잎을 달아간다.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나희덕의 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부분)

우리들 사랑은 어쩌면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일은 늘외로운 것일 수밖에 없고 그 외로움 걷어내기 위해 사랑이 나에게 와서 앉을 수 있는 그늘 한 자락 깔아보지만 수천의 빛깔 속에서 사랑은 언제나 한 뼘만큼 갈급하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랑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박형진의 시 '사랑' 부분)

사랑이 풀여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단 한번이라도 온전히 자신을 버리고 한 포기 풀잎이 되어 그 사랑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내어준 적이 있었던가 자문하여보면 대다수의 우리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때문일까, 매번 사랑은 우리에게 벅차고 끝내 우리는 사랑을 잃고 만다. 잃어버린 사랑의 대부분은 나를 버림으로써 온전히 그 사랑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았던 우리들의 헛된 이기심과 아집으로 인한 결과이며 어리석게도 우리는 사랑이 돌이킬 수 없이 멀리 떠나간 다음에야 깊은 회한 속에서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때늦은 뉘우침으로 돌려세울 수 있는 사랑은 없다.

우리는 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위선을 행하는지 모른다. 입술로는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고난은 인간을 보다 완전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라는 신학자 폴 홀티의 어법(語法)을 빌리면 사랑이란 십자가의 나눔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나를 눕혀 그늘이 되고 나를 태워 수천의 꽃빛으로 날리며 오롯이 나를 거두어 한 포기 풀잎이 되는 고난의 길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 범인(凡人)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시인 모정희는 그의 시 '순간'에서 매번 어리석을 따름인 우리들의 사랑을 이렇게 안타까워하고 있다.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 나는 그에게 이름을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모정희의 시 '순간' 부분)

사랑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 위의 햇살이며 들풀이고 꽃잎이다. 길 위에서 사랑은 저마다의 몸짓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다만 사랑이 거기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함이지 사랑은 원래 우리가 알던 길을 버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곳에 있지도 않은 사랑을 찾아서 새로 다리를 놓고 산을 뚫는다. 사랑은 새로 길을 내지 않는다. 사랑은 늘 그 자리에 그의 모습으로 있다. 우리가 한 포기 풀잎의 경이를 깨닫고 이름 없는 들꽃의 눈부신 마음 읽어내어 수천의 찬란한 꽃빛에 가 닿을 수 있을 때 마침내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그의 곁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복지사업은 사랑의 실천이다. 복지사업이란 중장비를 동원하여 온 나라의 산천을 파헤치는 토목공사가 아니다. 국민의 '등 돌린 사랑'을 다시 돌려 세우려는 노력으로부터 복지정책은 그 틀을 새롭게 세워나가야 한다. 사랑은 말의 유희가 아니라 몸짓의 느낌이며 길 위의 깨달음이다. 한 포기 풀잎의 소망으로 스스로의 몸을 낮출 때 비로소 '참여복지'는 그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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