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끝없이 먼 길 걸어야 하는 것임에 끝내 닿을 수 없는 그날이 와도 마지막 날까지 쉼 없이 걸어야 합니다. 때로 걷는 일이 힘들어서 아린 걸음 감싸 안고 길모퉁이에 서기도 합니다. 때로는 또 서있는 것이 힘들어서 길 가 아무데나 털썩

인생이란 끝없이 먼 길 걸어야 하는 것임에 끝내 닿을 수 없는 그날이 와도 마지막 날까지 쉼 없이 걸어야 합니다. 때로 걷는 일이 힘들어서 아린 걸음 감싸 안고 길모퉁이에 서기도 합니다. 때로는 또 서있는 것이 힘들어서 길 가 아무데나 털썩 지친 세월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사는 게 숨차서 매무새 고칠 사이도 없이 세상의 어디쯤 개울을 건너고 고개를 넘습니다. 평생 닿아질 것 같지 않던 세월이 저만치 뒤로 쳐져 갑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업어 기르고 아버지가 나를 안고 오르던 언덕을 내 새끼의 손을 잡고 지금 내가 걷고 있습니다. 아득한 세월, 그리움조차 빛이 바랜 고개 마루 황톳길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내가 걸어갑니다. 언제나 낯선 산 너머의 역사, 이따금 마른 바람이 지나면 횅한 가슴 가득 사랑이 시립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낳고 아버지가 나를 낳고 내가 또 아비가 되었습니다. 내 새끼가 제 아비와 제 아비의 아비와 제 아비의 아비의 아비를 궁금해 합니다. 역사 속에서 제 가계의 아비들은 어찌 살았느냐고 묻습니다. 아들의 아들이 낳은 그 아들은 아비의 아비를 낳은 그 아비의 역사적 전력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내 아들의 가계는 전혀 역사적이지 못합니다. 내가 그러하였듯이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새끼 낳아 먹이고 키우고 가르치고 그리고 그 새끼가 또 제 새끼를 낳아 열심히 먹여 기르고 가르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눈감은 일생들이었습니다. 감옥에 간 적도 없고 애시당초 감옥이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기 무서워하며 살던 평생이었습니다. 항일독립군이 조국광복을 위해 만주벌판 해란강 천릿길을 말달리며 싸울 때 내 할아버지는 먹고 살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고 일본 동경에서 고물장사를 해서 아들을 대학공부까지 시켰습니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내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평생 공직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내 어린시절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다보면 자유당정권 시절 팔에 완장 차고 다니던 아버지의 난감해 하던 얼굴과 5.16군사정권이 세상을 점령한 후 재건복 입은 아버지의 당황스런 모습이 떠오릅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를 넘어온 역사는 아비의 아들을 세상의 가운데로 내몰아 세웁니다. 10월유신과 5.18 그리고 6월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투쟁의 시절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습니다. 내 아들이 이번에는 제 아비의 역사적 전력을 궁금해 합니다. 그 시절을 어찌 살았느냐고 묻습니다. 대답이 궁합니다. 그저 열심히 살았노라고 말하기가 이렇게 부끄러운지 몰랐습니다. 그 시절 남들 다 가던 감옥 한 번 다녀오지 못한 것이 자식 앞에 큰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의 지난함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하여 난감할 때 가끔 선친의 산소를 찾아가서 그 해답을 구하고는 합니다. 상석 위에 담배 한 대를 피워 올리고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그동안 균형을 잃고 휘청대던 세상 속의 평정심이 조금씩 조율되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해답의 실마리는 언제나 같은 곳에서 풀려 나오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만약 아버지였다면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하였을까?'하는 자문으로부터입니다. 이제 지천명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요량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이고 선친은 매번 어른의 큰 몸으로 나를 보고 계십니다. 부끄럽게도, 나는 단 한 번도 선친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그와 동년배의 나이대를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전혀 정리되지 않은 좌충우돌로 유신의 뒷골목에서 장발이나 휘날렸던 내 이십대의 폐허보다는 해방 후의 혼란과 전쟁의 격랑 속에서도 스스로의 중심만은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그의 이십대가 확실히 찬란하였으며, 아이를 낳아 기르던 삼십대에도 그는 내가 따를 수 없을만치 자상하고 사려 깊은 아버지였습니다. 세상에 제 몫의 기둥나무를 져 나르던 사십대에 이르면 그는 이미 내가 따를 수 없는 거리 밖에 서 있습니다. 내 기억 속의 선친은 언제나 나보다 넓고 높으며 그리고 깊습니다. 지금도 선친은 여전히 나를 키우고 가르치십니다. 그는 늘 변함없이 그의 자리에 있습니다. 아무 때고 내가 불쑥 한 보퉁이 두서없는 우문을 짊어지고 가도 그는 짜증내지 않고 차근차근히 나를 깨우치며 토닥거려 주십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간들이 그의 세월이었듯이 그가 아들의 손을 잡고 오르던 언덕마루도 그 시대의 당위가 퇴적된 봉우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할아버지가 일송정 한 그루 소나무 아래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지 않았다 하여 그를 부끄러워할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를 낳아 주신 것만으로도 나는 그가 자랑스럽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낳고 아버지가 나를 낳고 내가 또 아비가 되었습니다. 내 아들이 제 아비와 제 아비의 아비와 제 아비의 아비의 아비가 어찌 살았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모두들 그저 열심히 살았노라고 대답해줍니다. 역사는 생성과 소멸의 흐름입니다. 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놓아두는 것이 지혜라 믿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업어 기르고 아버지가 나를 안고 오르던 언덕을 내 새끼의 손을 잡고 지금 내가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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