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의 시 '귀천'에 "이승은 즐거운 소풍"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은퇴를 하여 제2의 소풍 준비를 해아 되겠습니다.

황진수위덕대학교 석좌교수
황진수위덕대학교 석좌교수

황진수
위덕대학교 석좌교수불가(佛家)에서의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생로병사의 순환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사회활동하다가 병들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 거대한 과정에서 나를 대입시켜 봅니다. 어쩔 수 없이 나이는 들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만하니까 늙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날까지 살아온 한국 사회는 '폭풍의 언덕'을 지나온 것처럼 힘들고 변화무쌍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린시절에 6.25전쟁도 보았고 4.19와 5.16 등 정치변혁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배고픔의 시절도 겪었고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도 지켜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보(杜甫)의 시에 나오는 전익다사시여사(轉益多師是汝師)를 좌우명으로 삼으면서 파도를 넘어왔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표본으로 삼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소년시절의 목가적(牧歌的) 좌우명 구축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 분의 잊을 수 없는 멘토를 만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당돌한 질문을 했던 분들이 많았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생각이 나면 바로 말을 해야 하는 습성을 타고났는데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는지 모릅니다. 또 그것을 고쳐보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아직도 멀었습니다. 나는 대지약우(大智若愚)가 부럽습니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얼핏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에 나는 한없이 작은 사람이 되어 버리곤 했습니다.

대학교수로 정년퇴임을 한다고 하니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생각납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이럴 줄 알았지"라는 말입니다.

나는 평생 '노인복지정책'에 매달려 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사부능선을 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 할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힘도 부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나는 한성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여 27년 6개월 동안 봉직을 했습니다. 나 한사람이 퇴직을 했다고 해서 대학교가 변할 리 없습니다.

구우일모(九牛一毛)라고 아홉 마리 소의 털 하나가 빠진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는 우리 아버지가 작고 하셨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안 돌아가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에도 해는 또 다시 떴고 지하철도 어김없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대학교수를 그만둔다 해도 역시 해는 뜰 것이고 지하철은 달릴 것입니다.

나는 퇴임기념으로 두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 20여명과 함께 쓴 '노인복지론(공동체)'이고 하나는 칼럼집으로 '문제는 노인복지야 이 바보야'입니다.

이 책의 제목 '문제는 노인복지야 이 바보야'는 미국 클린턴(B. Clinton)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한마디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이 표현을 패러디해서 쓴 것입니다.

나는 대학의 3대 사명인 연구기능, 교육기능, 사회봉사기능을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교수 생활도 만족했고 내 생활도 행복했습니다. 또 학교생활에서 내 강의를 열심히 들어준 학생들이 고맙고, 내 곁에서 논문을 쓰고 혹독한 심사를 통과한 박사, 석사 제자들에게도 뜨거운 감사를 표합니다.

나는 여행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국내 답사여행은 물론 해외 배낭여행도 많이 했습니다. 이 지구상에 많은 나라가 있지만 그래도 나라라고 지칭하는 곳을 배낭 하나 메고 가방을 끌면서 헤매고 다녔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찾으러 다니는 일종의 만행(卍行)이었는지도 모릅다. 누가 사는지도 무엇이 있는지도 모를 미지의 세계를 터덜거리면서 걷는 여행은 사회복지에서 추구하는 이상사회(理想社會)라도 발견하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있지 않았는가 생각해봅니다. 힘든 배낭여행 과정에서도 나는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천상병의 시 '귀천'에 "이승은 즐거운 소풍"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은퇴를 하여 제2의 소풍 준비를 해아 되겠습니다.

그동안 보금자리를 제공해준 한성대학교와 사랑하는 가족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남은 인생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희사하면서 살라는 의미로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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