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절차상의 수사과정에서 위의 박모씨 예처럼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이들이 많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화재 참사에서 숨진 정신지체(29세·3급) 여성장애인인

◆장애인이라 못 믿겠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절차상의 수사과정에서 위의 박모씨 예처럼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이들이 많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화재 참사에서 숨진 정신지체(29세·3급) 여성장애인인 송모씨가 이미 화재 전에 경찰에 업주가 성매매 강요를 한다고 구조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지체장애 특징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사건이라든가, 40대 청각장애인이 법원이 발부한 '피고인 소환'장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도 위의 박모씨 사례처럼 적절한 법률적 서비스의 부재와 현장의 장애인에 대한 무지한 편견이 빚어낸 참사라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지난 6일 한나라당 장애인복지특별위원회(위원장 나경원 의원)가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마련한 '형사절차상 여성장애인 인권개선방안' 세미나는 이처럼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절차상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와 그 개선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된 자리.

지난 200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인권보호 수사준칙' 제8조(장애인, 청소년의 보호)는 '검사는 심신 장애인 또는 청소년을 조사하는 경우에 특히 그 보호에 유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16조(조사과정에서 지켜야 할 사항)에서는 '진술인이 연소자이거나 심신장애 등의 사정으로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때에는 본인이나 친족 등에게 보조인을 선정하도록 권유한다.'고 하여 수사절차상에 있어서 장애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는 '수사준칙'일 뿐이다. 정신지체 등으로 군면제판정을 받은 사실을 알고서도 경찰이 밤샘조사를 하면서 발바닥과 뺨 등을 때리는 등 피의자를 압박해 허위자백을 받아낸다든가, 정식 수화통역사가 없어서 의사전달을 못해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리는 사례, 혹은 정신지체인이라는 이유로 아예 문맹인으로 취급하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임의로 답변을 기술해 엉뚱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놓는 등 그간 상담센터에 신고된 내용만 놓고 보더라도 얼마나 광범위하게 현장에서 장애인에 대한 형사절차상 인권침해가 심각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성장애인은 더 심해= 특히 여성장애인의 경우, 대부분 교육수준이 낮고 낮은 경제활동참여율과 높은 실업률로 경제적 약자라는 점을 악용, 그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정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은 "'너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네가 하는 말은 들을 필요도 없고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경찰들의 태도가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특히 여성장애인의 경우, 성폭행과 같은 수사에 있어서 증거가 없으니까 무조건 가해자 편에 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즉 합의금을 뜯어내기 위한 상습범으로 치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의 특성에 따른 적절한 조치와 배려를 하지 않아 육체적으로 힘든 나머지,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실제 지난해 6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의뢰한 '형사절차상 여성장애인 인권증진방안'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여성장애인은 체포 및 구속단계뿐만 아니라 경찰·검찰수사단계에 이르기까지 폭언, 신체폭력, 성적 모욕감 등 언어적·비언어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의료보조기 및 편의시설 지원도 태부족한 것으로 드러나 정상적인 조사가 원천 봉쇄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토론자로 나선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우리의 수사기관은 여성장애인과 만날 준비가 '전혀'에 가깝도록 '거의' 되어 있지 않다."면서 "수사 담당자들의 감수성은 물론이고, 수사기법이나 강제수사를 집행할 구금시설도, 다른 어떤 것도 거의 대부분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개탄했다.

◆교육 제도화해야=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특히 여성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 및 의식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정열 소장은 "수사기관이 법원의 의식전환을 위한 교육의 제도화와 함께 임의동행 금지 등 형사절차법령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여성장애인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새로운 제도, 즉 수사기관 및 법원에 특별한 주의의무(specific attention)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열 소장은 이어 여성장애인이 피해자일 경우, "여성장애인 전담 수사관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피고인과의 대질신문을 피하는 등 증인신문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 소장이 근본적인 대안으로 꼽은 것은 바로 '성년후견인' 제도의 도입.

김 소장은 "초동수사상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즉시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의 동석을 의무화해야 한다."면서 "특히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성년후견인제도를 통해 신상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판단능력이 미약하거나 상실한 성년에 대한 후견제로 한정치산, 금치산제도를 두고 있지만 보호제도기능을 상실한 유명무실한 제로로 전락된 지 오래다. 오히려 재산권, 계약권 등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정지시켜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이에 판단 능력에 장애를 갖고 있는 성인을 위한 성년후견인제도를 도입할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등의 억울한 피해를 예방함은 물론,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의 지적처럼 한국 사회에서 수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도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다. 하물며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해 사회로부터 고통과 차별을 겪는 장애인에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진리가 한낱 구호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이 촉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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