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정치적 불안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회적 양극화, 가슴 아픈 여객기 사고 참사 등 나라 곳곳이 고통과 슬픔, 낙심으로 힘겨워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한 우리 사회는 희망은커녕 실망과 절망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암울한 현장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실망과 절망의 끝에서 사망을 선택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망이란 단지 생명의 끝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살아갈 이유와 소망을 잃어버린 채, 살아있으나 죽은 거나 매한가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한국 사회복지의 재구조화를 요구하는 현실
제3차 사회보장기본계획에 따라 한국의 사회복지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복지가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면서도 시급히 복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최우선적으로 복지 급여를 확대하는 기조를 병행한다. 노인 인구 증가와 중증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장애현상 지원에 따른 돌봄 서비스 확대, 취약 아동·청소년 및 취약 위기가정에 대한 안전망 강화 등이 추진되고 있다. 사회적 고립과 정신건강 문제 대응 등 위기개입 접근이 필요한 영역에도 정책적 관심이 집중된다. 더욱이 공급자 중심이 아닌 이용자 중심으로의 복지패러다임의 전환이 사회복지 실천현장에 상당히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역부족인 한국 사회복지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공공과 민간의 협력과 연계는 아직도 내실화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지역과 민간의 사회복지적인 역할은 구호적인 차원에 머물러 구체성이 모호해 보인다. 또한 사회서비스의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혁신을 향한 현실성 있는 접근은 미흡하기만 하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생활수급 및 사회적 지원과 여러 형태의 사회복지시설들을 운영하는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복지 현실에서 정부보조금을 통한 관 주도적인 사회복지서비스 관리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아니라고 공공에서 많이들 주장하지만, 현실세계에서 보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민관협력적인 지역사회복지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관이 이끄는 대로 민이 움직이거나 관을 뒷받침하는 형태를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복지수요는 크게 늘어나는데 국민의 ‘체감도’는 기대만큼 높아 보이지 않는다. 급속한 고령화로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노인 관련 재정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실질적인 지원에 대한 만족도는 낮은 상태다. 문제는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세수는 늘지 않는데 들어가야 할 복지지출은 증가하고, 복지비용의 증가가 직접적으로 국민의 삶에 체감되는 만족감이 커지는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핵심은 실행에 있다. 설정되고 계획된 정책을 정확하면서도 내실 있게 실천하면 된다. 여기에서 모든 한국의 사회복지 정책과 제도가 실제 국민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게끔 변화해야 한다. 한국의 사회복지가 정치, 사회, 경제 등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복지국가로서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수행할 수 있는 체제로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재구조화의 초점은 두 개의 정책 목표로 모아져야 한다.
첫째, ‘사회적 안전망’ 구축, 둘째, ‘삶의 질’ 향상이다. 즉, 확실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기능’과 더불어 ‘실제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사회제도적인 접근으로서의 ‘사회복지’가 이뤄지는 복지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 사회복지의 재구조화 전략과 과제는 무엇인가?
공공·민간 어우러진 복지융합체계 구축해야
첫째, 공공과 민간의 복지융합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내실 있는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국 사회복지의 재구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현행 한국의 사회복지는 ‘성장-고용-분배’의 선순환과 고용보장체계와 사회보장체계의 상호보완적 연계를 전제하여 실행되어 왔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순조롭게 작동하지 못한다. 성장이 예상보다 더디거나 거의 없이 현상 유지가 지속되는 현실이 펼쳐진다. 고용이 늘지 않고 형평성 있는 분배도 국가가 개입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여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형태의 기존 사회복지실천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치세력으로부터 조정권과 관리권을 위임받은 관료기구와 전문가들에 의해 주어진 답을 지역 조건에 맞게 변형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복지 접근방법은 이미 시효를 다해가고 있다.
고도의 경영 능력과 리더십이 전제되지 않은 채, 인간의 존엄성 실현과 이를 위한 사회복지의 공공성만을 강조한다고 해서 복지국가가 저절로 될 수 없음을 목도하게 된다. 국가 역할 확대가 자동적으로 공공성을 확대할 것이라는 생각도 착각이다. 공공성의 핵심은 가치와 규범에 있지, 서비스의 속성이나 제공주체에 있지 않다. 정부가 직접 소유·운영하는 사회복지 조직, 또는 민간 위탁 형태라도 과도한 지도점검과 평가에 의해 지배력을 늘린다고 사회복지의 공공성이 확대되고, 사회복지가 당연히 발전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공공과 민간이 연계하고 협력하는 차원을 뛰어 넘어야 한다. 서비스 이용당사자의 권리에 부합하는 서비스 방향을 설정함과 동시에 민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극대화해서 궁극적으로 서비스 투입에 따른 성과를 효과적으로 산출해 내는 사회복지정책과 서비스 실천을 국가적 과제의 하나로 설정해야 한다. 공공 사회복지 시스템을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민간 사회복지 조직이 효과적이며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는 공공 영역의 사회복지사들의 인적자원개발과 관리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즉, 한국의 사회복지정책과 서비스전달체계 ‘경영’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사회복지정책과 전달체계, 실제적인 서비스들의 총체적이며 전문적인 관리운영을 국가 및 지자체가 전부 감당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공공과 민간이 화학적 통합과 융합을 통해 ‘공공과 민간의 복지융합체계’를 획기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은 새로운 ‘복지융합체계’가 한국의 사회복지를 경영해가자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이 사회안전망 되도록 지원해야
둘째, ‘필요의 엮음’에서 ‘사람의 엮음’으로 확장하는 사회적 지지체계 형성을 지향하는 사회복지로의 재구조화를 모색해야 한다.
한국의 사회복지가 국민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함께 연결되는 실질적인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그 결과 사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행복한 지역사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복지가 국민 한 사람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모두의 행복한 삶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나를 위한 우리의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회복지가 그래왔던 것처럼, 단지 사회적 자원을 서비스 이용당사자에게 제공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적 지지체계까지 형성해줄 수 있는 접근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때, 사회적 지지의 실례가 ‘좋은 이웃’이다. 좋은 이웃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큰 힘이 된다. 지지는 위기의 순간에 커다란 자산이 된다. 힘들고 어려울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지역사회복지 실천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유용한 지지체계를 지역주민들에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편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1인가구 지원 방안을 내실화하는 것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연령별 특성과 욕구에 부합하는 1인가구 지원 방안을 구체화하여 실행할 필요가 있다. 공적자원과 사적 자원을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 및 지원 시스템 구축도 이뤄져야 한다. 또한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대해 사회복지시설 및 다양한 지역사회복지 지원체계들과의 유기적인 소통을 통해 사회적 돌봄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장애인의 일상생활 지원서비스도 내실화되어야 한다.
더욱이 발달장애 및 정신장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상생활지원서비스의 획기적인 고도화를 추진해가야 한다. 특히 사회안전망으로서 ‘사람중심 관계망’ 확대의 초석이 되는 혁신적인 사례관리 실천을 수행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위기개입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중심 관계망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관계망이 사회안전망으로서 충실하게 기능하도록 보다 전문화된 혁신적인 사례관리 실천이 개발·실행되어야 한다.
헬스케어·복지기술 인프라 기반 스마트 복지국가로
셋째, 디지털 과학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복지국가를 향한 사회복지의 재구조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복지기술을 활용한 장애인 재활과 노인 건강 증진 사업의 획기적 개발과 확대를 이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헬스케어와 복지기술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강국인 우리나라는 이미 디지털 과학기술을 적용한 모범사례들을 다수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모범 사례들을 토대로 하여 이제는 국민 건강을 관리하고 예방을 지원하기 위해 AI와 로봇 등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 케어 영역을 사회복지와 융합하여 크게 확장해야 한다.
다음으로 디지털 복지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복지기술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시설뿐만 아니라 서비스 이용당사자와 디지털 취약 계층에 대한 디지털 복지 환경 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당연히 스마트 기반 디지털 복지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 있는 기존의 체육시설과 복지관 내의 체육활동 공간 등을 적극 활용하여 디지털 복지기술이 적용된 헬스 케어 서비스를 대폭 확대하고, 이를 상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한편 사회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복지기술 적용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저소득 노인 1인가구가 거주하는 주택에 디지털 복지기술을 적용하여 안전한 삶이 가능하도록 지원 체계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긴급 대응, 24시간 상시 돌봄 시스템에 복지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구체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
더욱이 사회복지시설들 간의 헬스케어 및 복지기술의 연계와 적용의 고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여러 형태의 사회복지시설들과 유관 기관들을 활용하여 디지털 복지기술이 적용된 헬스케어 서비스를 상호 연계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산출하고 이를 통해 복지기술의 고도화를 이뤄내야 한다. 특히 복지기술 거점 플랫폼 기관을 선정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거점기관이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회복지시설들과 유관 기관들을 디지털기술로 연결하여 다양한 사회복지 정보와 자료들이 디지털 기술에 의해 가공, 축적, 공유되게끔 하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복지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세상이 급변해서, 세상이 혼란스러워서, 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열심히 하는데, 더디고, 막상 그 성과는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도 해야 한다. 새해가 되었는데도 날씨가 무척 춥다. 봄이 얼른 왔으면 좋겠는데 아직 겨울이니 당연히 춥다. 그래도 추우니 훈훈하고 따스한 인정이 그립다. 이럴 때, 격의 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며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항상 곁에서 지켜 주고, 사심 없이 호의를 베풀며, 다만 행복하기를 기원해 주는 친구 말이다.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정말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그런 친구를 찾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한국의 사회복지가 국민의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 국민을 배반해도, 경제가 국민을 이용해도, 사회복지만큼은 국민의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완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든든한 친구가 되면 참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