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연륜과 지혜 배우며 스스로 질문하고 해답 찾아

최선희 서울노인복지센터 사회복지사(사진 가운데)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변화하고 성장할 때 사회복지사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선희 서울노인복지센터 사회복지사(사진 가운데)

나의 사회복지사, 또는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첫 출발은 엄청난 소명 의식이나 직업 정신에 기인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한 것도 ‘21세기 유망직종이니 취업이 잘 될 거’라는 고3 담임의 권유에서였고, 사회복지사로서의 시작도 ‘그 많은 수업료를 내며 4년 동안 배운 것을 써먹어봐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얼마나 현실적인 이유들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다 마음 한편 ‘그랬던 내가 16년이라는 기간동안 사회복지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한 명의 사회복지현장 실천가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적어도 지금의 내 모습은 16년간 다양한 현장의 경험들, 많은 슈퍼바이저들의 슈퍼비전, 나와 함께 한 많은 내담자 또는 클라이언트라고도 불리는 분들과의 관계와 함께 성장과 변화를 거쳤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노인복지 실천현장의 실천가이다. 다양한 사회복지 분야 중 노인분야를 선택한 것은 전문가의 전문성과는 또 다른, 연륜과 경험적 지혜를 갖는 어르신과 함께 하는 노인복지 실천현장에 대한 관심과 기대에서였다.

지금 기관에서의 첫 출근, 어르신들과 함께 했던 첫 사업,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위해 어르신들 앞에 섰던 그 첫 경험의 시간들이 기억난다.

클라이언트 만큼이나 사회복지사도 변화 경험

우리 기관은 서울에서도 일평균 이용인원 3000명 이상이라는 규모와 지역 복지관에서 감히 엄두도 내지 않는 미술관, 영화제 등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많은 프로그램들에 참여하는 다양한 배움과 경험치를 가진 어르신들 앞에서, 이 치기어린 젊은 사회복지사는 “당신보다 나이는 어려도, 저! 사회복지사라는 전문가거든요”라며 누구보다 전문가인척 거드름을 부렸었다.

왜 그랬었는지, 그 일천한 전문성과 얕은 사회복지 철학을 가지고서 어르신들 앞에서 선생질을 하려 했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기관에서 가장 유명한 터줏대감 어르신께 오히려 집중 케어를 받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최 선생, 그거 우리 노인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 아니야?”, “노인은 그것도 못할 거라 생각해?”, “당신,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따져 묻기도 하고, 나의 슈퍼바이저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내가 한 만행(?)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이래도 되는 거냐? 우리는 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아?”라는 공식적인 대답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 동안 그 어르신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클라이언트였다. 그러나 도망 다녀서 피해지는 어르신과는 달리, 그 분이 던진 그 원론적인 질문들은 도망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머릿속에 늘 맴돌았다가 다른 사업을 기획할 때도,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다른 어르신과 상담을 할 때도 불현듯 떠올라 그 질문을 통해 답을 얻곤 했다.

사회복지사는 모든 걸 알아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노인복지 현장에 대한 나의 관심과 기대가 어르신들의 연륜과 지혜였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일하며 망각했었다.

일을 하면서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회복지 실천현장에 일하면서 클라이언트의 변화만큼이나 사회복지사들의 여러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클라이언트들과 사업을 함께 하면서 사회복지라는 일을 더욱 좋아하게 되고, 사회복지사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무겁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지금의 내가 그런 것처럼.

신임 사회복지사 시절, 기관의 터줏대감 어르신께서 내게 던진 그 질문은 지금 내가 우리 지역 사회에, 그리고 노인이 아닌, 노인을 모르는 다른 세대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었다.

‘왜 노인이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당사자의 질문에서처럼 우리 사회복지사는 우리의 클라이언트가 충분히 변화할 수 있고, 또 우리와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있으면서 만나는 젊은 세대들이 노인이라고 하는 세대를 하나로 통칭해서 정의하고, 비하하며, 소외시키는 것을 종종 본다. 심지어 노인 스스로도 자신이 노인이라고 불리기를 꺼려한다. 그러한 사회문제와 노인에 대한 다른 세대들의 인식을 개선 또는 제고하는데 있어서 노인복지실천가들의 역할과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겁게 다가온다.

‘사회복지사’라는 것이 너무 감사해

우리 기관은 서울노인영화제라는 사업을 통해 노인 인식개선은 물론, 영화를 통해 세대가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어르신들이 영화감독이 되어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노인이 만든 영화를 노인의 눈높이로 해설해주는 영화 도슨트 활동도 있는데, 지난해 어르신들과 함께 서울 소재 대학생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도슨트 어르신이 담담히 풀어주는 얘기들로 20대 학생들은 지금의 노인 세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고, 성별과 나이,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누구누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노인도 다르지 않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나로서는 영화 도슨트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어르신들과의 시간이 떠올랐다. 내가 노인복지를 선택했던 그 이유, 인생 선배로서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그 경험과 연륜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보람과 의미를 느끼는 건, 클라이언트들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 지점이다.

클라이언트의 삶에 작은 파장을 일으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며 고마워하는 어르신들이 있어, 나까지도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특별한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내가 사회복지사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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